런던에서의 넷째날(2024.09.19)
여행코스
옥스포드 투어(보들리안도서관-크라이스트 처치투어) - 라이언킹 뮤지컬 관람
오늘은 옥스포드로 가는 날. 옥스포드에는 해리포터의 모티브가 된 장소들이 있고, 캡틴이 곧 중딩이가 될 1호에게 자극이나 영감(?)을 주고 싶어서 꼭 가고 싶었다고 했던 곳이기도 하다.
옥스포드로 가기 위해서는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그 패딩턴 곰의 패딩턴역에서 기차를 탄다.(이 역에는 패딩턴 곰 동상도 있다.)
2호와 나는 기차에서 홍삼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면 전의를 다졌다. 오늘도 만보 이상의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기차에서는 좌석이 배정되어 있어서우리 넷이 마주볼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옥스포드 역에 도착해 내렸는데, 확실히 작은 소도시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역에서 버스를 타고 대학가에 내리자, 각종 기념품 샵과 관광객, 학생들이 어우러져 활기찬 기운이 느껴졌다.
도시마다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는 유럽 투어의 매력이 참 좋다. 물론, 그 매력을 느끼기 무섭게 우리는 미리 예약된 캡틴과 1호의 보들리안 도서관 투어를 위해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옥스포드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학처럼 하나의 대학교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옥스포드라는 도시 자체에 44개의 컬리지가 분포해 있고 이 컬리지들을 모두 옥스포드 대학이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처음알았다. 캡틴이 설명해 줘서 알았다.)
우리는 이 44개 중에 투어가 가능한 보들리안 도서관이란 곳과 크라이스트처치 투어를 하기로 했다.
보들리안 도서관은 옥스포드 중앙도서관이라고 볼수 있는 곳이고, 실로 몇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실제 학생들이 공부 하는 곳을 투어 하는 터라, 각별히 조용히 해야 한다고 했으며 투어 설명을 영어로 하고 있어서 아윤이와 나는 투어는 하지 않기로 했고 캡틴과 1호만 투어에 참여했다.
건물 외관 자체만으로도 몇백년의 세월동안 이곳을 스쳐간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했다.
현대적인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둘째날 타워브릿지를 본 여의도 뷰의 차가우리만치모던한 건물들도 매력적이지만, 부스러질것 같지만 세월의 향기가 묻어나는 빈티지함은 훨씬 더 고상한 매력을 품고 있다.
캡틴이 찾은 정보에 의하면 도서관앞의 보들리경 동상의 발을 만지면 이곳에 다시 돌아온다고 하여 1호와 2호에게 만지라고 종용한뒤 사진을 남겼다. ㅎㅎ
1호와 캡틴이 투어를 하는 동안 2호와 나는 바로 옆건물에 위치한 보들리안 도서관 기념품샵으로 향했다.
도서관이라서 테마가 reader 였는데, 아기자기한 소품과 삽화가 담긴 책들은 정말 다 사고 싶었다.
이것 저것 신나게 구경을 하는데 캡틴이 어디냐며 다급하게 톡을 보냈다.
어디긴, 2호랑 놀고있지, 하는데 아니 무슨 소릴 하는 거냐며 우리 지금 크라이스트처치 투어 가야 된다며.
몰랐다..그저 1시간 정도 2호랑 놀면 되는건줄 알았다. 동상이몽 우리의 여행.
우린 서둘러 크라이스트 처치로 향했다. 생각보다 거리가 있었는데, 예약한 투어시간이 있어서 빠른 걸음으로헉헉 거리며 캡틴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도착! 보들리안과는 또다른 느낌의 입구.
한때, 플로리스트에 관심이 있어 영국의 가드닝 다큐를 본적이 있었는데, 그때 본 그 가든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전원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보들리안 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큰 규모의 성당이자 대학인 이곳은 건물 옆으로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고 심지어 그 초원에 소도 두어마리 거닐고 있었다.
살랑 살랑 부는 바람에 움직이는 나뭇잎이 너무 예뻐서 영상으로 남겼다.
많은 관람객들이 있었고, 갑자기 이탈리안 가이드 분이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나를 보더니, "어 너 찍어줄까?"라며 말을 거신다. 캡틴, 1,2호와 떨어져 있으니 이런 영광이. 완전 땡큐지 찍어줘! 라고 하고, 뜻밖의 인생샷을 남겼다.
여기서의 투어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1시간 반 가량을 도는 것이었는데, 한국말도 지원된다!
각자 오디오 투어를 들으면서 다니다 보니 혼자 오롯이감상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해리포터 기숙사의 다이닝룸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Great hall인데, 이곳에서는
실제 학생들의 점심식사를 현재까지도 제공하고 있다. 그 전에만 투어가 가능해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실제 대학 내 투어다 보니, 관광객이 들어갈 수 있는 곳과 아닌곳이 나뉘어져 있다.)
식당 내에는 옥스포드를 거쳐간 유명인들의 초상화와 최근 인물 중에는 사진도 걸려있다.
살아 숨쉬는 듯한 수많은 초상화 앞에서 또 한번 감탄했다. 물론, 여자가 별로 없는건 아쉬웠지만
앞으로 많은 더 많은 훌륭한 분들이 벽면을 채워 가겠지. (1980년부터 여학생을 받았다고 한다;;)
보들리안 도서관도 그렇고, 크라이스트처치 식당도 그렇고 특유의 천장 문양이 아름다웠다. 이 시대
건축물의 특징인가보다. 나오자 마자 보이는 노필도어(no peel)는 1800년대에 학생들이 당시 내무장관이던 로버트필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남긴 낙서라는데,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그대로 담고 있는 것 자체가 옥스포드의 큰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방형으로 만들어진 톰쿼드 광장을 지나 학내에 있는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이 주는 성스러운 분위기를 참 좋아하는데, 이곳도 그랬다. 몇백년의 시간동안 이 성당과 함께 시간을 지나온 스테인드 글라스, 숱한 전쟁을 거치며 목숨을 다한 자들을 기리기 위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 그 시대의 깃발과 의자 하나하나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작게 마련된 공간에 일부 돈을 기부하고 초를 켜 기도를 해보라고 했다.
나름 우리 1호는 유아세례를 받아 세례명까지 있으니.
그런데 돈은 2호가 내고 1호가 더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를 했다. 무슨 기도를 했을까? 너무나 궁금했다.
무슨기도를 했느냐고 물었지만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크라이스트 처치 투어는 옥스포드에 방문했다면 꼭 해봐야할 투어다. 캡틴과 내가 이번 여행을 하면서
가졌던 생각은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비록 우리가 느낀것과 아이들이 느낀것은 다를 수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우리 아이들의 시야가 넓어졌다면 그것으로 된것이라고 생각하자고 했다.
너무 좋았던, 옥스포드 투어. 여기서는 공부 아니면 할것도 없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투어를 마치고, 캡틴은 옥스포드 후드티를 꼭 사고싶어 했는데 밖에 있는 기프트샵이 훨씬 쌀것 같은 생각에 우리는 크라이스트처치 내에 있는 기념품 샵에서는 특별히 구입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는데, 왠걸.
오히려 크라이스트처치의 기프트샵이 훨씬 퀄리티가 좋고 가격도 좋아서 우리는 또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그 안에서 문 닫기 직전에 티셔츠를 사고 패딩턴 곰도 거기가 제일 싸서 그것도 사가지고 나왔다. 오늘의 교훈.
여행지에서는 그냥 첫번에 느낌이 왔으면 거기서 사는게 정답이다.
아, 이번 여행을 하면서 좋았던 점 중에 하나는 인종차별이 생각보다 심하다는 유럽에서 특별히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아 아이들에게 나쁜 기억이 없어서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곳에서 어이없는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점심을 먹기위해 들어간 스시집에서 창가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무리의 초등학생 녀석들이
식당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는데 갑자기 한녀석이 우리를 보더니 눈을 찢고 메롱 하면서 장난을 친다.
와, 그런데 정말 1,2학년밖에 안된 어린애였는데 나도 모르게 화가났다. 그래서 내가 엄청 무서운 표정으로
그 아이를 쳐다봤는데 처음엔 웃더니 갑자기 당황해서인지 버스에 올라타고 사라졌다.
영어를 굉장히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면, 난 아마 바로 나가서 그 아이들을 인솔하는 교사에게 얘기헀을 것이다. 그 아이의 행동에 대해. 그리고 잘못된 행동을 지도해야 한다고.
INFP인 나는 못내 그말을 못한 내가 너무 답답해서 이불킥을 날렸다.-_ -;;
아무튼, 우리는 즐겁게 옥스포드 여행을 마치고 다시 런던으로 향했다. 패딩턴역에 옥스포드에서 산 패딩턴 곰인형과 함께 도착해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햄버거로 점심을 떼우기로 했다.
내가 잠깐 햄버거를 사러 간 새 우리집 1호는 자신이 파리에서 다 쓰지 못한 유로화를 역내 환전소에 가서 파운드화로 다 바꿔버렸다. 작은 의사결정이지만, 누구의도움없이 본인 스스로 그 작은 결정들을 해내는 1호가 대견했다. 2호는 환전소에서 바꾸면 환율이 더 불리하다는 캡틴의 말에 조금의 손해도 용납할 수 없었는지 바꾸지 않았다. 이런 2호도 대견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
대망의 라이온킹을 보기위해 우리는 런던의 뮤지컬의 성지로 향했다. 지하철역에서 나왔는데 눈앞에 펼쳐진건 트라팔가 광장! 한정된 시간에서 움직이다 보니 여긴 못올 줄 알았는데 뜻밖의 광경에 네잎클로버라도 찾은 것처럼 신이 났다. 아마 캡틴도 이건 몰랐던것 같다. 석양이 질 무렵이어서 그 시간의 런던을 사진에 담았고, 캡틴은, 아빠가 20살에 유럽에 와서 저 사자 위에 올라갔다며 부끄러운 과거를 자랑스레 늘어놓았다.;;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트럭을 발견해 아이들이 직접 주문해서 아이스크림도 사먹으면서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 주변에 다다르자 런더너들이 펍에서 퇴근 후 시간을 즐기느라 복작복작하다. 저기 섞여 캡틴이랑 시원한 맥주 한잔 쫙!!들이키면 너무 좋겠네라는 생각을 잠시 하고, 우리는 극장으로 들어가 앉았다.
아이들이 5~6살 무렵 홍콩 디즈니랜드에서 아주 작게 라이언킹 공연을 했었는데 그 때 감상했던 Circle of Life 가 떠올랐다. 그 작은 공연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졌는데, 뮤지컬의 양대산맥 런던에서의 라이언킹이라니!!! 감개가 무량하다. 그렇게 설레이는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꺅!!!!!!!
첫 넘버 Circle of Life를 듣고, 암전이 되자마자 거의 눈물이 날 만큼 감격에 빠져 있는데 옆자리의 2호가
나를 부른다.
2호: "엄마, 엄마"
나: "어, 왜"
2호: "엄마, 나 이상한 콧물이 나"
나: "?!"
헐, 2호의 코에서 콧물이 아니라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가방에서 휴지를 더듬더듬 찾아 코를 틀어 막았다.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너무 피곤했나. 역시 3학년 2호에겐 이 일정이 무리였나보다.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나저나 이 코피는 멈춰야 할텐데 안멈추면 나가야 되나 하면서 두번째 넘버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코피는 멎었고 우리는 공연을 계속 볼 수 있었지만,
2호는 넘버가 지날때마다 조금씩 졸기 시작했다.
인터미션때 보니 여기저기 가족단위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보였는데,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우리 2호처럼 시차와의 사투 끝에 굴복당하고 말았다. 2호는 인터미션이 지나고 나서 거의 그냥 떡실신을 해버렸다.
1호도 막바지에 가서는 졸고 있었는데, 어찌저찌하여 공연을 끝까지 보긴 했다. 그리고 라이언킹 에코백까지 야무지게 구입했다. 좋은 공연이었지만, 2호의 코피 이벤트로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일 일정은 그냥 모두 취소하고 호텔에서 쉬고 근처나 구경다니자고 캡틴에게 이야기 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만보 넘는 일주일의 강행군은 2호에게 아무래도 무리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마무리한 런던에서의 넷째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