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국의 바닷가, 브라이튼 비치

런던에서의 다섯째 날(2024.09.19)

by 이지영

여행코스

브라이튼 비치 - 런던아이 - 수영장 - 딜리에서의 마지막 밤


어젯밤에 일정을 마치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어제 2호의 코피로 약간 멘붕이 온 상태라 내일 오전일정인 브라이튼 해변가기를 취소하고싶었다.

브라이튼 까지 가려면 또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기에무리한 일정보다는 조금 쉬어가며 런던 시내 공원을 둘러봐도 좋고, 가보지 못한 숙소 주변을 둘러봐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1호는 이미 예매한 기차표값이 얼마인지 물었다. 캡틴은 10만원이라고 했다.

1호는 아까우니까 가야겠다고 했다.

2호는 자기는 브라이튼 해변의 놀이공원을 꼭 가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가서 오전 일정만 간단하게 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마지막 일정이라 아쉽기도 했고,

오전만 있다 오면 괜찮지 않을까, 라고 다시금 생각을 고쳐먹었다.


다들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지라 그런지 늦잠을 자지 않았다. 우리는 오늘도 8시즈음 조식을 먹으러 갔다. 한국의 이상고온 탓에 반팔 위주로 챙겨왔는데, 오늘은 제법 런던의 날씨도 따뜻하게 느껴져 가벼운 차림으로 출발했다. 딜리에서의 마지막날인게 아쉬웠고, 런던의 빨간 이층버스도 아쉬워 모든것을 남기고 싶었다. 오늘의 기차역은 Victoria Station 이다. 런던에서 머무는 동안 온갖 기차역은 다 간본듯 하다.

꽤 큰 역이었다.

기차역에 들어서서 갑자기 캡틴이 기차역 일정표를 보더니 뭐가 잘못됐단다. 그래서 안내원에게 물어보는데,이게 참.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건데, 영어가 짧다.

많이 짧다. 몇십년 영어를 배웠는데도 일상에서의 간단한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더 큰 난관은, 어찌어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겠는데 상대방이 설명하는 것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어 물어 결국 우리가 탈 기차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소품가게 구경을 했다.


런던을 다니며 느낀 특징 중 하나는, 서점이 많고 어디에서나 카드를 판다는 것이었다. 이 기차역 안 작은 소품 가게에도 각양각색의 카드가 반짝였다.


너 옥스포드에서도 많이 못사서 후회했잖아. 지금이라구. 빨리 사. 라며 내게 손을 흔든다. 그래서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런던 일정에서 카드를 막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가지 소품도 구매했다. 내가 또 언제 런던에 오겠어? 하며.



그렇게 1시간 15분 정도 걸려서 브라이튼에 도착했다. Victoria Station 과 달리 바닷가 마을의 기차역은

소박했다. 여긴 영국 왕실에서 휴가를 오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조금 더 들어가면 있는 녹차 절벽 "세븐스프링스"도 하나의 코스던데, 우리는 일정상 브라이튼에만 머물기로 했다.


내리자 마자 바다 냄새가 나는 것 같이 느껴졌다. 햇살 역시 런던보다 훨씬 더 따뜻했다.

아이들은 역시, 약간 지쳐보였다. 아이들을 북돋아 바닷가 마을로 향했다.

사실 여긴 너무 내 취향의 장소였다. 이탈리아 여행할 때 작은 소도시에서 느꼈던 행복감이 거리를 걷자마자 재현되는 듯 했다. 소도시의 상점, 까페, 식당. 작고 아담하고 소박하지만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센스와 버무려진 감성은 대도시와는 또 다른 영감을 준다.


이 작은 마을에도 영화관이 있고, 소품샵이 있고, 서점이 있다. 인생네컷도 있어서 지나칠수가 있어야지. 오전만 여유롭게 보내고 오자는 말은 뒤로 한채 나는 그만 이것저것 다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발을 내딛자마자 브라이튼의 그 감성에 지배당해 홀린듯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어 댔지만,

우리 지친 아이들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그저 바다와바다 옆 놀이공원을 찾기 바빴다.

허기진 탓도 있겠거니 싶어 나와 캡틴은 서둘러 캡틴이찾아둔 맛집으로 향했다.

드디어 피쉬앤칩스를 먹는다. 바닷가 마을에서.

맥주 한잔과 함께 피치앤칩스가 나왔다. 와오! 누가 영국을 미맹의 나라라고 했던가?!

갓 튀겨낸 흰살생선과 마요네즈와 레몬향이 풍부한 소스, 두껍게 썰어낸 짭조름한 감자튀김까지 어느 하나 놓칠수 없이 맛있었다.


배를 채우고 기분 좋게 춤까지 덩실덩실 추면서 우리는바닷가로 향했다.

조금 걸으니 드디어 바다다! 몽돌해변처럼 모래가 아니라 자갈로 이루어진 해변이었다.

따뜻한 햇살에 맥주 한잔짜기 달큰하게 하고 난 다음이라 나는 한껏 기분이 좋았다.

바다를 본 아이들도 신이 났다.

한참을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앉아있다가, 2호는 바다 가까이로 가 홍합을 찾아냈다. "엄마! 나 그 짬뽕에 많이 들어있는거(홍합) 그거 살아있는 걸 찾았어!" 라며

보물이라도 찾은냥 자랑을 했다.



고딩이들 같아 보이는 영국 아이들은 바지를 입고 해변에 뛰어들었다. 그런 자유로운 아이들을 2호는 신기한 눈으로 마냥 쳐다보았다.

조심성이 많은 1호는 자갈에 발바닥이 아프다고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참을 물가의 2호와 캡틴을 바라보던 1호는 드디어 자리를 박차고 물 가까이로 향했다.

그리고는 이내 1호와 2호는 해변을 따라 끝도 없이 무언가를 찾으며 거닐었다.

런던의 공원에서 느꼈던 평화로움과 행복한 순간이 이곳 브라이튼에서도 찾아왔다.

오전만 보내려던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을 만끽하다 기차 시간에 임박해서야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해변가를 따라 걷던 1호와 2호가 보이질 않는다. 저 멀리 1호는 보이는데 혼자 뿐이다.

달려가 2호는 어디있느냐고 물었는데, 모른단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한 나는 자갈밭을 마구 뛰었다. 저어 멀리 해변의 끝에 가서야

2호가 보인다. 대체 무엇을 보고 저기까지 갔을까. 호기심이 겁을 누르곤 하는 2호는

해변 끝에 가서야 찾아낼 수 있었고, 이제 집에 갈 시간이라고 하자 나는 아직 놀이 동산은

가지 못했다며 울상이다. 겨우 아이들을 달래 음료수 하나를 시켜주고 기차역으로 돌아가려는데

그놈의 음료수는 왜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젊은이에게 "나 있잖아 지금 기차 시간이 곧이거든. 빨리 해줄수는 없겠니?"라고

다급한 표정으로 말하고 나니 조금 서두른다. 부러운 유럽인들.


우리는 달렸다. 기차를 놓치기 직전이었다. 이 기차를 놓치면 우리의 다음 일정인

런던아이를 놓친다. 캡틴은 또 한번 파리 루브르 갈때의 똥씹은 표정을 하고 있다.

안놓친다고 아이들을 채근하며 미친듯이 달려 우리는 기차를 진짜 아슬아슬하게 탑승했다.


올까말까 망설였던 브라이튼은 런던 여행에서 최애 코스가 되었다. 단 몇시간만 보내기엔 너무나 아쉬웠고

1박 일정으로 해도 될정도로 너무나 좋은 휴양지였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우리는 다시 Victoria Station에 도착했다. 런던아이로 향하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탈 수 있었는데, 2호의 컨디션으로 볼때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 보다는

버스를 타고 한번에 가는게 낫겠다 싶어 버스를 택했다.

이거슨 나의 오판. 지금까지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우린 트래픽잼에 갇혀버렸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내린 시간은 마감 시간 5분전.

미친듯이 런던아이를 향해 뛰었지만, 짤없이 마감이라 안되고, 티켓 바꾸면 3주안에 와서 탈 수 있단다.

너무 아쉬워서 나는 내일 오전에 우리 탈수 없을까? 라며 캡틴에게 묻고 또 물었지만, 우리에게 그럴만한

시간은 없다고 캡틴은 현실을 제대로 깨닫게 해주었다. ㅎㅎ

런던아이는 그렇게 눈앞에서만 보고, 빈벤을 볼 수 있는 강변으로 가 사진도 많이 찍고웃고 떠들며

런던의 저녁을 즐겼다. 강변 앞쪽에 템즈강과 국회의사당(?)을 쭉 볼수 있는데, 비싼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던 아저씨가 갑자기 fuck! fuck! 거린다. 보니까 붐비는 관광객들 사이로 런던 템즈강변의 석양을 즐기는 동안 자기 가방을 소매치기 당했나 보다. 눈앞에서 그 광경을 보니 별 훔쳐갈것 없는 가방을

나도 모르게 움켜 쥐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소매치기 많다더니 안전하네 라고 생각했는데,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었나보다. 이 또한 감사할 일.

런던아이를 놓쳐 아쉬웠지만 우리는 거기서 웃고 떠들며 런던아이를 탄 것보다 더 재밋게 시간을

보냈다..(고 하고싶다.)

덕분에 숙소에 일찍 돌아가 아이들은 마지막날 밤을 딜리의 수영장에서 보냈고,

나는 저녁을 살겸 숙소 근처 런던 시내를 돌며 쇼핑도 해보기로 했다. 이미 너무 지쳐있어서 가족들,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햄버거를 주문해서 돌아왔다.


아이들은 신나게 잘 놀고 나서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 도중에 투닥거렸나 보다.

갑자기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짜증이 밀려와 화를 내고 말았다. 햄버거도 맛없다 하고,

대충 저녁을 떼우고 그렇게 아이들은 잠들었다.


잠든 아이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마지막날이니 짐을 싸기 시작했다. 우리가 들고 갈 짐. 하루 뒤에 캡틴이 들고올 짐을 분리하여 빠르게 짐을 쌌고,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이 피로감이 밀려와 잘자라는 인사도 없이

잠든 것 같다. 캡틴은 하루 일과를 항상 우리가 찍은 그날의 사진을 아이패드로 보며 하루를 마무리 했는데,

그날 역시 혼자 사진을 감상하며 잠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런던에서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keyword
이전 13화옥스포드와 라이언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