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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의 마지막날. 대영박물관

런던에서의 여섯째날(2024.09.20)

by 이지영

여행코스

대영박물관 - Hatchards Piccadilly - 그리고, 히드로 공항.


여행의 막바지까지 P인 나는 사실 어제 오후까지도 마지막날의 오전 일정은 없는 줄 알았다.

캡틴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런던을 떠나기 전, 런던의 상징 "대영박물관" 투어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일정. 어제 런던아이를 놓치고, 아쉬운 마음에 그래도 공항가기 전 런던아이 탈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나의 생각은 헛된 바램일 뿐이었다. 어림없는 소리였던 것이다. 그렇게 눈을 뜨고 어제의 아쉬움은 내다 버렸다. 대영박물관 만으로도 우리의 일정은 충분하다.

역시, 대영박물관도 투어 가이드분을 찾아 예약을 했다.

오늘 가이드를 담당해 주신 분은 영국에서 오랜시간 유학생활을 하신 분이었다.

전공하신 분야 역시 고고학? 미술사학? 이런 쪽이라 자부심 혹은 본인이 연구하는 분야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셨다. 나는 저렇게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애정어린 눈으로 대해본 적이 있었던가?

타국에서 가족도 없이 보내는 시간들을 견디어 낼 수 있을 정도로 한 분야를 연구하는 가이드님의 인생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최근의 나는 보여지는 것, 비싸고 좋은것을 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었는데, 그와 달리 너무나 소박하고 꾸밈없이 열정 가득한 그분의 모습이

낯설지만 아름답게(?) 느껴졌다.


우린 가이드님 덕분에 오픈 시간인 9시에 맞춰 단체 관람 예약이 되어있어 거의 첫번째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박물관 안의 유리천장이 정말 멋졌다.


이 큰 박물관이 전체 무료 관람으로 입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주인가 싶다가, 가만. 그래, 니네 이거 다 훔쳐온 거라며.

돈받으면 안되지 싶었다. 대영박물관에는 800백만 점이 넘는 유물이 있다고 했다.

대영박물관의 이집트 관에는 이집트 문명의 다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물이 전시 되어 있는데, 정작 이집트 카이로박물관에는 대부분 모조품이 전시되어있고, 진품은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세계사의 약탈의 시대에 빼앗은 쪽보다 빼앗긴 쪽이었던 우리나라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인지

사대주의로 점철되어 유럽이 너무 좋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는 괜한 반발심을 불러 일으키곤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가이드 선생님이 이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얘기해 주셨다.


대영박물관에 훔쳐온 유물들이 대부분이라고 알고 있을텐데 물론 약탈한 것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를테면 기증받은?)도 있고, 본인이 이집트 쪽에서 온 관광객 투어 가이드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너희나라의 유물들이 많은데 어때? 라고 하니,

우리는 이런게 너무 많아. 여기에도 전시하고 보존도 잘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훌륭한 유물을 볼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라고 했다고.


물론, 자신들의 유물을 영국이라는 나라가 가져다가 전시하고 있는 것에 분노할 사람도 있겠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신선한 시각을 말씀해 주시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일이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때가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때로는 내가 A 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들이 내 뜻과 달리 B로 흘러가기도 하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서 일까?

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구나. 새로운 시각에 대해 조금 더 너그럽게 수용하게 된다.



프랑스의 루브르가 유물, 예술작품, 시대가 고루 섞인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라면, 대영박물관은 고대로 떠나는 시간여행 같은 느낌이다.

우리가 그런 주제를 담은 곳 위주로 관람을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대영박물관 하면 떠오르는 유물을 중심으로 살펴 봤을때, 이집트의 유물, 미이라 등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그렇다. 대체 그리스 신전, 람세스 석상 같은 커다란 돌덩이들은 어떻게 가져왔을까. 인간의 욕망이란.


우리가 처음 본 건 로제타스톤이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강조하셨던 가이드 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사람들이 붐비기 전에 로제타스톤 앞으로 갔다. 로제타스톤은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시발점으로 꼽히는 발굴품이기에 그 의미가 대단하다고 한다. 사실 난 그렇게 큰 감흥이 오지 않았는데, 살짝 살펴보니

나의 초딩이 둘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가이드 선생님은 잘 보이지도 않는 꼬부랑 글씨를 열심히 해독

하시면서 두눈을 반짝이셨다. 그런데 이게 설명이라기 보다, '너무 아름답고 신기하지 않나요~?여러분' 하는 느낌을 가득 담은 시를 읽는 듣한 느낌? ㅎㅎ 순간 난 직감했다. 이 투어. 쉽지 않겠는데.

선생님이 우리보다 더 신이 나셨다. ㅎㅎ

로제타스톤과 이집트의 상형문자

우리는 투어 시간인 3시간 동안 다양한 고대 작품을 관람했다. 가이드 선생님의 알아들을수 없는 지식의 향연속에서 간혹 터져 나오는 하품을 감추려 애쓰며 표류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명색이 대영박물관인데 그 지루함 속에서도 몇가지 기억에 나는 인상적인 것들이 있었다.


첫번째는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유물이었다. 파리의 루브르에서 맛본 문지기 석상이 여기에도 있었다.

라마수 석상이라는 것인데,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몸은 황소의 모습이다. 이 석상이 특이한 것은

옆에서 보면 다리가 4개, 앞에서 보면 다리가 2개이다. 앞면과 옆면을 모두 고려해서 조각해 냈다는 것에

그 시대 사람들의 지성에 감탄하며 루브르에서 관람했던 기억이 있어서 인지, 반가움과 친근감에 관람했다.

사실 나에게는 인류의 4대문명 하면 툭 튀어 나오는 문명 중 하나에 불과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다지 큰 관심도 없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명의 특징에 대해 알아본적 없었는데, 우리가 방문했던 시기에 대영박물관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도록 특별전시를 하고있었다.


벽에다 새긴 사자 사냥을 하는 모습의 부조는 섬세함과 웅장함에 전율이 느껴졌다. 근육의 움직임, 머리카락 한올 한올을 돌위에 새긴 섬세함은 가히 예술 작품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특히 특별전을 하고 있어

그 조각 위에 레이저 효과를 넣어 실제 전차를 타고 사자 사냥을 하는 모습을 상상케 하는 퍼포먼스를 보고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매료되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부조가 많았는데 대부분은 전쟁장면과 권력의 신격화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먼나라이웃나라 프랑스와 영국편을 보았는데, 사실상 유럽의 역사는 결국 권력에 대한 욕망을 위한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싶었는데, 고대 문명도 다를 바 없구었다. 권력에 대한 욕망이야 말로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것일까? 소시민인 나로서는 절로 전쟁이 없는 세상에 살아 가고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두번째는 대영박물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 문명의 전시품과 미이라. 첫 관람을 시작한건 그리스와 이집트 문명이었는데, 그리스 문명은 사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밀로의 비너스와 니케의 승리의 여신이 나에게 너무나 강렬했기에 큰 감흥은 없었다. 다만, 그리스 신전의 기둥을 다 뜯어 와 그것들을 다시 박물관에 박제해 놓은 그 옛날 영국인의 이기심과 노력이 가상하다고 느껴졌을 뿐.

이집트 문명관에서는 책에서만 보던 이집트의 사자의 서를 직접 보며 어떻게 이렇게 고스란히 보존해 둘 수 있었을까 감탄했던 것 외에 이집트 왕의 계보를 이어가며 장황하게 설명해주신 가이드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에 가장 인상깊게 새겨진 것은 다양한 종류의 미라였다.

루브르에서 미이라를 맛보기로 보았다면 대영박물관은 한 종류가 아닌 다양한 종류의 미라와 실제냐고 묻기가 무색할 정도로 리얼한 미이라가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충격적이었던건 이집트 사막의 환경으로 자연건조 되어 붕대도 안감긴채 엎드려 있는 미이라였다. 리얼한 미이라를 보니 어딘가에 그의 영혼이 숨쉬고 있을 것만 같아서 오싹하게 느껴졌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몇천년전의 사람들이 남긴 정교하고 상징적인 그림, 조각을 보고 있자니

'예술'만이 시기를 관통해 남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권력과 야망은 존재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그들이 남겨 놓은 예술 작품만이 세상에 남는다. 이런 면에서 예술가들은 선택받은 자들이 아닐까?

세번째는 "THE HOLY THORN RELIQUARY" 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때 쓰신 면류관의 가시 중 하나를 번쩍이는 황금 성물 보존함에 보관하고 있다. 이 유물은 음모론의 주인공으로 항상 거론되는 엄청난 갑부

로스차일드 가문이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진짜 예수님의 면류관의 가시인지 알길은 없지만, 그저 신기했다. 값으로는 매길 수 없는 가치라고.

예수님의 삶과 황금과 보석으로 뒤덮힌 성물함이 뭔가 아이러니 했지만, 이런 것까지 있다니. 굉장해. 라는 생각은 들었다.

가느다란 나무 가시가 그것.


가이드 님과 함께한 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메인로비로 나갔다. 역사를 품고 있는 전시품도 전시품이지만

대영박물관의 유리 천장은 또 하나의 매력이었다. 나는 결국 그 유리천장을 찍은 사진을 기념으로 하나

사왔다. (안방 화장대에 놓고 두고두고 보면서 우리의 여행을 매일 아침 추억한다. ㅎ)

가이드님의 열정으로 정식적인 투어 시간은 끝났지만 마지막으로 대영박물관의 도서관까지 들어가 기념사진을 남기고 빠이빠이를 했다.

가이드님은 꼭 별 5개를 남겨달라고 하셨다. 이 시장도 너무 치열해 별 하나만 줄어도 경쟁력에서 밀리고 만다는 슬픈 설명을 덧붙이신채..1,2호는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돈을 탈탈 털어 기념품을 사고 대영박물관을 빠져나왔다.



이렇게 캡틴 임의 모든 투어가 끝이 났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런던 거리를 여유롭게 누볐다.

곳곳에 공원이 참 많은 매력있는 도시 런던. 삼삼오오 공원에 모여 도시락도 먹고, 모임도 하는

런더너 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마지막 점심을 먹으러 골목의 작은 쌀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살인적인 물가의 영국에서 대부분의 식사를 PRET 과 M&S FOOD 에서 해결했는데, 마지막은

화려하게 쌀국수로 마무리! 시간이 여유로워 호텔 앞 유명 서점 "Hatchards Piccadilly"에도 들어가봤다. 영국 왕실에서 지정한 유명 서점이라는데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들어가보게 되었다.

1호는 런던 시내가 그려진 에코백을 사고 싶어 했지만 돈이 모자랐는지 그냥 내려두었다. 결국 별다른 수확 없이 나왔다. 우리는 정들었던 딜리호텔과 바이바이를 하며 로비에 맡겨둔 짐을 찾아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캡틴은 이제 우리를 공항까지 바래다 주고 짧은 하루 동안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히드로 공항에서 캡틴과 나는 두손을 꼭 잡은채 아쉬운 짧은 이별을 한다.

사실 캡틴도 혼자 있는게 약간은 두렵다고 해서 혼자 남겨 두고 우리끼리 떠나는게 사실은

약간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이별의 허그를 하며 찍힌 사진에 그의 표정은 왠일인지 지나칠정도로 밝다.

어쩌면 그는 고도의 연기를 펼친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는 그 짧은 하루의 계획을 이미 알차게 세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항에서 마지막 PRET 만찬을 즐기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긴 비행을 마치고 다시, 한국이다. 떠나기 전, 여름의 습한 기운이 남아있었는데

한국에도, 가을이 성큼 다가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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