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의 셋째날. 추석.
여행코스
해리포터스튜디오 - 하이드파크 -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더로즈베리 애프터눈 티 -
THE Dilly hotel 수영장
오늘은 대망의 해리포터스튜디오 가는날!
나에게는 큰 감흥은 없는 곳이지만, 캡틴과 1,2호에게는 대망의 여행코스이다. 1,2호는 마법 지팡이를 꼭 사올거라며 결의를 다졌다.
해리포터스튜디오는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30분정도 소요되는 Watford Junction역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오늘도 든든히 조식을 먹고 호텔 앞 피카딜리역이 아닌 그린파크 역으로 향했다. P인 나로서는 왜인지는 알수 없으나, 이것이 왓포드정션으로 가는최단거리이리라.
우리는 왓포드정션으로 갈 기차를 타기 위해 유스턴역에 도착했다. 어느나라든 기차역 특유의 어수선함, 설레임이 뒤섞인 분위기는 비슷한가보다. 우리가 타야할 기차를 찾느라 약간은 긴장한 채 왓포드정션행 기차에 탑승했다.
생각보다 기차 이용객이 별로 없어 여유로이 창밖 풍경도 즐기며 캡틴과 셀카도 찍으며
아이들과 떨어져 앉아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이들은 인터넷도 안되는 조악한 화질의 키즈폰에
한국에서 유튜브 영상을 카메라로 찍어와 그걸 보며 시간을 즐겼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대신하는
MZ와 젠지를 넘어선 너희 세대! 존경한다.
이번 유럽여행을 하며 우리는 아이들에게 30만원 정도의 유로와 파운드화를 주고, 각자 알아서 기념품을
사라고 했는데, 영국에 넘어오면서 아직 파운드화를 넘겨주지 못했다. 대망의 해리포터스튜디오에 가면서도
오픈런에 맞추기 위해 서두르느라 아직 파운드화를 인출하지 못한 상황에서 지하철-기차-셔틀버스를 탔다.
1호는 특히 이런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아이인데, 조심스레 셔틀버스를 타면서 나에게 이야기 한다.
1호: "엄마, 근데 파운드 뽑아 주는거지? 나 여기서 정말로 살거 많은데"
나: "있어 있어. 거기다도 ATM 있어. 없을리가 없잖아. 그리고 없으면 엄마 카드로 사고 정산하면 되잖아."
1호: "아니 나는 그거 싫다고!!!"
순식간에 1호의 얼굴이 180도 변한다. 세상 불만과 절망에 마주한 듯한 얼굴로 셔틀버스를 탔다.
셔틀버스로 가는 동안에 영상으로 해리포터의 주인공들이 나와, 스튜디오 안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소개를 해주는데, 사실 그 영상을 온전히 즐길수가 없었다. 진.짜.로 ATM기가 없을까봐. 이것이 바로
P-MOMMY의 여행의 위기다.
내리자마자 스튜디오로 향하는 거리에 해리포터 사진도 있고, 마법의 지팡이들도 있어서 사진 좀 찔을라 했는데 세상 불만 섞인 표정임에도 우리 착한 1호는 사진을 찍어준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ATM기를 찾아냈다!
그치그치, 없을리가. 휴, 살았다.
아직 기분은 덜 풀렸지만 드디어 파운드화를 나눠주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호도 드디어
얼굴에 미소가 띈다. 입장하자마자 있는 기념품숍이 가장 크다고 해서 여기서 구경을 조금 하고 지팡이를
사가지고 들어가서 관람을 하면 좋다고 해서 살펴봤다.
친절한 할아버지 직원분이 여기서 파는 마법지팡이는 나무가 익스클루시브하게 여기서만 파는 영국의 어느 숲의 나무라나 뭐라나 열심히 홍보를 해주셨고, 모든 캐릭터의 지팡이를 다 볼수 있고 만져볼수 있었는데 이 아이들, 정말 진지하게그 지팡이 하나하나를 살펴보는데 쉽사리 결정하지 못해서 나중에 사기로 했다.
첫번째 기숙사의 식사장소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기 전 워너브라더스(?)로 추정되는 캐릭터가 여러가지 설명을 해주는 영상을 관람해야하는데, 슬프게도 짧은 영어때문에 남들은 다 웃는데 난 좀처럼 그 유머를 즐길수가 없었다. 영어 공부 제대로 하자. ㅠㅠ AI가 아닌 내가 듣고 내가 이해하고 싶다!
무튼, 입장하는 문을 열때는 지원자가 있으면 직접 열게 해주지만, 우리의 소심이들이 손을 들리 만무하고 다른집 아이가 문 여는 것만 지켜본채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관통하는 세트장과 의상, 가발 등 소품을 정말 리얼하게 잘 꾸며 놓아서 보는 내내
1,2호와 캡틴은 서로 신나하며 관람을 했다. 그런 그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여기 되게 신기하네, 좋네
하면서 구경을 했던것 같다. 테마에 맞춰 공연 같은 것도 하고 있었고,
크로마키 기법으로 영화 속 한장면 주인공처럼 해주는 체험도 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을 하고 나면
사진을 진짜 사악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언제 또 오겠어 하면서 사진 여러장을 구매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게 제일 돈이 아깝다.
여기에 방문할 수많은 사람들, 세대를 아우르며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이 공간을 다니면서
문학과 예술이 주는 힘은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이 오고, AI가 예술의 영역까지
침범한다지만, 그래도 인간 고유의 영역이 있다면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는 힘이 아닐까?
있는 것을 통해 파생 되는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창작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식당에서 버터비어도 먹고, 야무지게 버터비어 컵도 챙기고(이 컵은 기념품이란다. 식당 바깥쪽에 컵을 씻을 수 있는 수도도 마련되어있다.) 론의 자동차도 타고 탐욕스러운 해리 고모의 집도 들어가 보고,
정말 알차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 곳 중 하나였다. 디즈니와는 비교가 안된다고 할까?
디즈니는 5살~7살 정도가 타겟이라면, 해리포터는 소설과 영화를 접한 사람들이 타겟이라고 할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오랜시간 해리포터를 읽으며 관심을 가졌던 1호가 소설과 영화에서 본 세트를
직접 실감하며 연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 또 부모인 캡틴과 나는 아주 그냥 뿌듯함에 어깨가 뿜뿜했다.
대망의 기념품숍에서 원하는 지팡이도 아주 신중하게 고르고, 여러가지 기념품을 획득한 뒤 스튜디오를 나왔다. 오늘도 여전히 날씨요정이 우리를 돕는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아까와 다르게 신이난 아이들은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워대면서 셔틀버스로 향했다.
다시 런던, 유스턴역에 도착했다. 난 해리포터 기념품 대신에 유스턴 역에서 출발 전에 봤던 예쁜소품샵 "OLIVER BONAS"에 들렀다. 정말 다 쓸어오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가격이 극악해서 신중에 신중을 더해 "QUEEN"이라고 적힌 머그컵과 카드 몇장을 들고 나왔다. 이렇게 모두가 만족한 상태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오늘은 사실 영국 여행의 하이라이트인데, 오전엔 해리포터스튜디오, 오후엔 애프터눈티 체험이 계획되어 있다. 애프터눈티는 실로 우리 여행의 식대 중 가장 높은 단가를 자랑하는 플랜이었다.
게다가 고오급 호텔(만다린 오리엔탈 하이드파크)로 캡틴이 예약을 해둬서 나름 기대치가 높았던 곳이었다.
5시 예약이었기에 시간이 좀 남아 우리는 호텔 앞 하이드파크를 들르기로 했다. 하이드파크는 영국에 2년간 연수로 머물렀던 그 동기가 꼭 가보라고 했던 공원이었다. 어제 버킹엄 근처의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아이들과 굉장히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던지라, 너무나 흔쾌히 아이들도 설모 찾으러 가자! 라며 따라 나섰다.
하이드파크에도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규모가 엄청나다.
캡틴과 내가 자리잡은 벤치 옆 자리에는 썸타는 커플이열심히 서로를 탐색하는 별 의미없는 대화를 한껏 나누다 돌아갔다. 사랑의 도시네, 런던. 1호와 2호는 설모와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다.
정말 많았다. 그냥 나무 앞에 가서 앉아있으며 청설모가 사람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으며 주변을 맴돌았다.
호수가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오리, 백조 같은 조류들도 강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쫓아 다녔다.
먹이를 주지 말라는 푯말이 군데 군데 있었지만 이미 사람 손을 탄 동물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주는지
너무나 빠삭했고, 줄때까지 쫓아 다니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 공원에 앉아있는 동안 말할것 없을 만큼 행복감을 충만하게 느꼈다. 가족과 함께 푸른 하늘과 적당히 시원한 바람, 초록의 나무,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앉아있으니 이 시간이 더할 나위없이 행복했다.
하이드파크에서 시간을 보내고, 우린 애프터눈티를 마시러 호텔로 향했다.
오~~~과연!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보다 훨씬 퀄리티가 좋아보이는 이 호텔은 들어서자마자 자본주의의 향이 느껴진다. ㅎ예약했다는 확인과 함께 우리는 창가쪽 자리로 안내받았다. 키가 큰 영국 신사 느낌의 아저씨가 우리의 서버(?)였다. 아저씨는 품격있는 친절함으로 웰컴티와 함께 아이들이 기대한 3단 트레이의 샌드위치, 각종 디저트, 스콘 등이 줄줄이 가져다 주셨다. 각각에 어울리는 티도 계속 추천해 주셨고, 캡틴의 예약 메세지 덕분에 우리는 특별한 레터링으로 장식된 조각 케익도 먹었다.
우리는 한껏 이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렸다.
특히, 캡틴은
"이거 남은 거 다 포장 되는 거야. 빨리 먹고 더 달라 그래" 라며 나를 다그쳤다.
우리의 양옆으로 한쪽은 기름국의 부유한 20대 MZ언니야들이 아이폰으로 사진을 찰칵찰칵 찍으며 각자
대화 한마디 없이 티를 즐겼고, 한쪽은 런더너인것 같은 노부부가 한가로운 티타임을 즐겼다.
우리는 관광객답게, '우리 관광객이오' 하며 사진을 연신 찍었고, 심지어 마지막에 우리를 담당하신
서버분께서 그런 우리를 보며 넷이 같이 찍어 주겠다고 했을때도 마다하지 않았다.
행복 최고조에 이른 우리는 여유로운 티타임이 아닌 업된 상태에서 티타임을 즐겼다. 아이들은 지팡이로
주문을 외워 댔고 우린 그런 아이들에게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했지만 싫지만은 않았던거같다. (그렇게 큰소리는 아니었으니까..)
계속해서 디저트의 향연이 펼쳐졌지만 세번째쯤 메뉴가 나올때 우린 모두 디저트에 지쳐버렸다.
나는 캡틴에게 귓속말로 얘기했다.
"여보, 내 인생에 두번의 애프터눈티는 없어도 될것 같아. 나 김치가 너무 먹고싶어"
창밖의 런던 풍경을 한참 즐기고, 오늘이 추석당일이라 양가에 전화도 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버 아저씨가 챙겨주신 샌드위치와 남은 디저트를 양손 가득 싸들고 우린 호텔 밖으로 나왔다. 유난히 동그랗고 커다랗게 뜬 런던의 보름달을 보며 2024년의 힘들었던 일들은 사라져버리고 2025년에는 행복한 기운이 가득했으면 좋겠다라고 마음속으로 빌면서,
2층 버스를 타고 딜리로 향했다.
아이들의 워너비였던 호텔 수영장에서 짧은 물놀이까지 하고, 느끼하고 달콤한 디저트로 놀란 속을
컵라면으로 마무리 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오늘도, 역시 만보이상 걸었고 파운드를 제때 찾지 못해 약간의 위기가 있었지만, 완벽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