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첫날
여행코스
에펠탑 - 유람선(19:30분 탑승)
여권 소동의 여파로 우리는 캡틴의 계획보다 늦은 저녁 7시경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숙소를 나와
5분정도 거리의 에펠탑으로 향했다. 우리 숙소 최대의 장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는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에펠탑을 보며 길을 걸었다.
그러나 역시 너무 추웠다. 가져간 긴팔을 총동원해 옷을 입었지만 후텁지근한 한국의 습한 여름의 날씨에서 갑작스레 늦가을 초겨울 날씨로 점프를 해서인지 몸이 쉽게 찬 바람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대비는 언제 그랬냐는듯 그쳤고, 파란 하늘이 에펠탑을 향해 파리 거리를 산책하는
우리를 더욱 설레이게 만들었다. 저녁 7시였지만 해가 중천에 떠 있는것 같았다.
"우와! 꺅! 에펠이야!!! 너무 이뻐!! 아름답다!!"
그 추운 와중에도 거대한 에펠탑에 매료되어 낭만의 파리, 괜히 빠히가 아니었어! 하며 혼자 무한 감탄했다.
1호도 연신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있었다. 16시간 비행에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나도 셀카를 마구 찍어댔다. 우린 또, 에펠탑만 나오면 여행사진이 아니니까. 그렇게 함박웃음 짓는 에펠 만큼 예쁜 나의 딸들도 찍어대며 여행 첫날의 설레임을 마구 즐겼다.
그런데 아뿔사, 우리는 저녁을 제대로 먹지못했다.
곧 사춘기로 들어간 첫째가 배고프다고 짜증을 낼 신호가 올 것이다. 지금 필요한건 뭐다?! P의 임.기.응.변! 나는 급하게 하나 보이는 와플 푸드트럭에서 저거 안먹을래? 라고 선제안했다.
좋아 좋아! 라며 달려드는 두 딸에게 벨기에 와플 한개를 선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센강을 향해 산책하며 걸었다.
짧은 에펠탑과의 첫인사 뒤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유람선 탑승 일정을 향해 걸었다.
해가 지면서 날씨는 더 추워지는 것 같았다. 저녁도 제대로 먹지 않아서 인지 추위가 얇은 긴팔옷 틈을
파고들어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유람선을 탑승하러 갔다. 저녁을 먹을 시간은 없었다.
왜냐면 우리는 8시 유람선을 타야했기 때문이다. 캡틴의 계획을 더이상 흐트러뜨릴수 없었다.
그럼 캡틴도 사춘기 언니와 마찬가지로 예민해질 터. 나는 벨기에 와플빨이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두 딸과 캡틴을 데리고 유람선 선착장으로 향했다.
센강의 유람선은 바토 무슈, 바토 파리지앵 두개가
있다. (솔직히 이것도 유람선을 다 타고 나서 알았다.)
두개의 차이점은, 캡틴이 알려준 바에 의하면 2층 의자의 방향이 다르다. 바토무슈는 앞을 향해 앉고 바토 파리지앵은 강변을 바라볼 수 있게 옆으로 앉는다. 센강 옆 파리를 보려면 옆으로 앉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캡틴은 바토 파리지앵을 예약했다. 바토 무슈와 달리 바토 파리지앵은 에펠탑 바로 앞에 선착장이 있어서 길을 건너지 않아도 되었고, 비가 왔던 날씨 탓인지 줄도 길지 않아 거의 바로 탑승했다.
2층을 포기하지 못한 캡틴과 1호는 추위에도 여념없이 2층으로 올라갔고, 나와 2호는 고민할 것도 없이 1층으로 직행했다. 이 순간 나와 2호는 추위와 함께 그림자처럼 달라붙은 시차와 사투를 벌였다.
해가 지기 시작할 때 유람선을 타서 센강의 야경을 즐길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우리는 전쟁 같은 여행
첫날의 시차와의 사투속에서 센강과 에펠탑을 창밖으로 바라보는것에 만족해야했다.
유람선 안에 선장님이 센강 옆으로 파리의 주요 명소들을 계속해서 안내하는걸 애써 번역기를 돌려가며 따라 잡으려 애썼지만 우리는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지영아, 여긴 빠리야!!눈을 떠!!' 무의식의 내가 나를 깨울때마다 무거워진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옆에 앉은 또다른 꾸벅이에게
"우와 저거봐 너무 이뻐. 강이 반짝거리는 거 좀 봐. 고흐가 저걸 보고 그렸나봐"라고 떠들어 댔지만, 꾸벅이는 시차에 굴복당하고 깊은 잠에 빠진지 오래였다.
곧, 1호도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양옆에 1호와 2호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다.
센강 유람선을 타면 거의 대부분의 파리 명소들을 볼 수 있다. 밖에서 봤다면 좋았을것 같다는 아쉬움이
아직까지도 진하게 남아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파리에 다시 와 시차적응이 된 후에 타보고 싶다.
여튼, 유람선이 다시 에펠탑앞 선착장으로 거의 돌아왔을 무렵 아이들을 깨워 내리자 내리자!! 하고 올라가는데, 캡틴이 "마지막으로 올라와서 봐"라고 해서 2층으로 오르는데,
유람선 안내 아저씨가 "NOW, Blah blah fantastic time blah blah " 하자마자
눈앞의 에펠탑이 마구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의 벅차오르는 감정이 올라왔다.
뭐랄까, 그때의 감정을 한 줄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20대 때의 감성을 잠시나마 찾은 것 같은 느낌?
정말 환상적인 웰컴 세레모니였다.
캡틴은 그 모든것은 8시 유람선을 탄 자신의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흠.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야.
비록 배고픔과 맞바꾼 황홀함이긴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름다운 에펠탑을 뒤로 하고 우리는 여행 첫날의 피곤함에 절여진 채 추위를 이겨내며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다. 밤 9시 반이 다되어 가는데 그때까지 제대로된 저녁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슈퍼에 가서 먹을거리를 좀 사오려고 했지만 졸면서 걷는 아이 둘과 이 추위를 뚫고 더이상 단 한발짝도 걸을수가 없었다. 나는 캡틴에게 그만 포기하자며 그냥 방으로 들어가자고 헀다.
숙소로 돌아가는데 그 추운 와중에도 이 피곤한 몸을 그 숙소에서 어떻게 뉘이지? 라는 생각이 스쳐가며
당장 숙소를 옮겨야만 할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부킹닷컴과 에어비앤비를 캡틴 몰래 열심히 서치했다. 어떻게 하면 이 숙소를 반이라도 환불 받을 수 있을까? 넌 우리를 속였어!!라고 해야하는데 과연 그럴만한 합리적이고도 상대방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을까? 없는 것 같아. 라는 생각에 절망에 빠져 방으로 들어갔다.
다들 컨디션이 바닥난 상태였는데, 심지어 생수도 없어서 가져온 햅반만 수돗물을 끓여 데웠다.
아이들은 밥보다 잠이 먼저여서 대충 세수하고 손발만 닦고 잠들었고, 나도 밥맛이 없었다.
나는 씻어야 피로가 그나마 풀릴것 같아, 정말 들어가기 싫은 화장실에서 억지로 샤워를 했다.
그런데 업친데 덥친격으로 갑자기 캡틴이 자기 몸이 너무 가렵다면서 손을 마구 긁어대기 시작했다.
밝은데서 겉옷을 벋고 캡틴의 손, 팔, 다리를 보는데 두드러기가 잔뜩 올라왔다.
비상약도 아이들것만 잔뜩 챙기고 소화제, 타이레놀과 같은 간단한 비상약만 챙겼는데. 지르텍 같은 항알러지약은 챙기지도 않았는데. 두드러기가 올라온 캡틴을 보니까 너무나 심란해졌다.
24시간 병원을 서치하는데, 갈수는 있었지만 캡틴은 워낙에 한국에서도 병원, 약 안먹는 상남자 중에
상남자-_ -;; 괜찮단다.
급하고 불안한 마음에 네이버 유랑까페에 글을 올렸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한분이 가까이에 있는 것 같으니
알러지약을 나누어 주겠다고 하셨다. 그사이 캡틴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괜찮아졌다고 해서
감사의 인사만 드렸지만 정말 끈끈한 한국인의 정(?)같은 것을 느끼면서 여행 첫날의 향수병을 잠재울 수 있었다.
결국 유일하게 캡틴만 햅반에 메추리알 장조림을 먹고 우리는 우당탕당 유럽여행의 첫날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