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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달 Oct 10. 2019

허영심은 명품백에만 있는 게 아니다

문화낭비자의 고백

나는 요즘 너무 바쁘다. 욕심꾸러기처럼 닥치는 대로 공짜 강연에 연극, 전시회를 예약하고 있다. 당장 잡혀있는 스케줄만 시립미술관 전시투어, 시낭송회, 박상영강연, 연극관람, 미술 강연, 신형철 강연 등등이다. 해야 할 일은 점점 길게 줄을 늘어서고 있고 집안은 개판일분전이다. 그 와중에 술까지 마시니 체력이 남아나질 않는 중이다. 왜이리 강박증처럼 미친년처럼 예약을 하고 있는지 이쯤 되어선 한번 돌아봐야 하지 싶다. 내가 이렇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을 정도로 문화적 소양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허겁지겁 섭취하려는 이런 태도는 허영심이 아닐런지. 슬슬 이런 일들을 다 즐기는 것이 힘에 부친다.


최근에 미술관을 가면 대체로 발디딜 틈 없이 사람이 많아 이러저리 치여서 제대로 보기 쉽지 않다. 큰 맘 먹고 전시를 가도 도슨트를 따라다니는 거대한 무리의 뒷자락에서 겨우겨우 설명을 들으면서 작품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기 일쑤다. 몇년전만 해도 도슨트란 말조차 대부분 몰랐는데 많은 이들이 미술관에 와서 도슨트를 들으며 관람을 하고 있다. 언제부터 다들 이렇게 미술관 관람에 관심이 많았는지 놀라면서 나 역시 정말 즐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단 생각을 하며 재빠르게 미술관을 나온다. 미술관을 가기 위해 필요했던 노력과 시간에 비해 작품을 즐기는 시간은 매우 짧다. 미술관에 가서 무엇인가를 본다는 행위 자체를 원했던 게 아닌가 의심한다. 며칠 전에는 국제작가전의 시낭송회를 갔다. 우리나라 시인들은 서너편의 시를 빠르고 별다른 감흥 없이 읽어대고 외국 시인들은 괴상하게 번역된 시를 지루하게 읽었다. 통역을 하는데 시간의 대부분이 쓰이고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란 생각을 하고 앉아있자니 이런 모든 행위들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 것인가.


사람들은 명품백을 산다. 나로서는 그 돈으로 다른 것을 사지 왜 사는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람들은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까. 그들이 사는 것이 좋은 품질인지, 허영때문인지, 어차피 돈이 많으니 예쁜 것을 사는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돈이 차고넘쳐도 쓸 수 없는 분야다. 그래도 중저가 명품백 정도는 들고 다녀야 하지 않는가 하는 선에서 남의 눈치를 본다. 그들의 무시에 100프로 당당하지 않은데 그런 척하는 것도 우습다. 모두 벤츠를 끌고다니는데 이제 단종된 세라토를 끌고다니면서 남의 눈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그런 마음까지 없애지 못하는 것은 어쩌겠나 받아들여야지. 명품백을 든 사람들이 들지 않은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느끼듯 문화를 향유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남들과 다름을 느끼고 싶은 것이 아니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 몰래 만족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진심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하더라도 나는 명품백보다 문화적 허영을 선택한다. 사람은 어차피 허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왕 자기만족을 하기 위한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면 그나마 좀더 스스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거 아니겠나. 지금 유독 심하게 이러고 있는 것은 여태까지와 다른 내가 되고 싶은 강한 표현인 거 같다. 그 증거로 이런 행위들이 과하게 필요한 순간이다. 갔다와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도 잘 이해를 못하는 짝사랑일지라도 그런 사람이고 싶어하는 한낱 꿈일지라도 그것을 원하다면 할수밖에 없다. 나에게 보여지는 나도 중요하니까. 누가 시켜서는 할 수 없는 노고가 드는 일들을 하고 있는 지금 이순간의 의미는 나중에 다시 곰곰히 찾아보기로 하자. 채워짐일지 더 비워짐일지 그때는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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