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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호 Dec 30. 2020

선택받은 특권층과 대다수의 루저를 양산하는 사회

세상이 아무리 탁해도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학교여야 한다.

어른들은 맹목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라고 한다. 맹목적이라는 말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그게 무조건 좋은 것이고, 널 위한 것이니,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 왜 그랬는지 알게 될 것이니까, 일단 지금은 시키는대로 하라는 것이다. '맹목'이라는 단어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눈을 가리고 무조건 뛰라는 말이다. 그것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성공이다.


어른들이 맹목적으로 성공하라고 할 때, 그 성공은 무엇일까? 어떤 삶이 성공인가?


구체적으로 따져 보면 이렇다. 명문대학교를 나온 사람. 그리고 스펙을 잘 쌓아서 대기업에 취업한 사람. 그래서 높은 연봉을 받고 계속해서 승진한 사람. 혹은 의사나 판검사와 같이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 그도 아니라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 극소수이고 성공 법칙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통계에 넣을 수는 없지만 각 분야에서 큰 성공을 해서 큰 돈을 번 극히 일부의 사람. 여기서 빠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무튼 다 합쳐서 흔히 세상 사람들이 '저 친구 성공했네!'라고 말하는 이들이다.


요즘 표현으로 한다면 소위 '위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위너와 루저라는 말이 일상어처럼 쓰이고 있다. 키가 얼마 이상인 남자는 위너, 그 이하는 루저. 연봉이 얼마 이상인 사람은 위너. 그 이하는 루저. 마찬가지로 어른들이 생각하는 성공한 사람들은 다른 말로 하면 위너이다.


그렇다면 위너는 얼마나 될까. 명문대. 대기업. 전문직. 공무원. 이들의 숫자를 모두 합치면 대략 수능 1등급에 해당하는 비율이 될 것이다. 전체의 약 4~5%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물론 조금 더 범위를 넓게 잡아서 대기업이 아닌 중견기업까지 포함하는 식으로 한다면 전체의 약 20%까지 생각할 수 있다. 위너는 적게는 전체의 5%, 많게는 20%까지의 사람들이다.


이것은 정말로 사실일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머지 80%는 자동적으로 루저가 된다. 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 명인데 그중 4천만 명은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1천만 명만이 성공한 인생이고, 그중에서도 250만 명만이 남들이 부러워 하는 선택받은 특권층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 열에 여덟, 아홉은 실패한 인생이다.


우리는 도덕 교과서에서 다음과 같이 배웠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누구나 고귀한 존재라고 말이다. 어떤 유명한 사람은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고 했다. 누구나 지금 여기 행복할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실패한 인생을 살면서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만약 우리의 인생이 정말 실패한 인생이라면, 비록 실패한 인생이지만 스스로를 속이고 위안을 삼아서 자기만족, 자기위안이나 하라는 뜻에 불과하다. 이러한 일시적인 자기위안은 결국 자괴감과 열등감을 낳게 된다.


이것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학생들과 청년들이 자괴감과 열등의식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처음에 '맹목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라'고 한 데서부터 잘못 되었다. 덮어 놓고 공부하라고 하고, 덮어 놓고 의대에 가라고 하고, 덮어 놓고 인생을 살라고 한 것부터가 문제이다. 학생들을 무조건 학교에 가둬놓고 시험을 치고 성적으로 평가한 맹목적인 교육이 범인이다.


이러한 맹목성이 극소수의 성공한 사람들, 즉 특권층과 나머지 대다수의 루저들을 양산하고 있다. 명문대 내와서 고소득 직장에 다니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강요했기 때문에 극소수 특권층과 나머지 루저들로 사회가 양분된 것이다. 


성공한 20%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실패한 80%는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은 듣자마자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행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것은 거짓 위안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이다. 우리가 교육의 맹목성에서 벗어나면 된다. 맹목성에서 벗어나면 성공과 실패의 의미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값진 노력에 대한 보람을 느끼며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나는 학교가 가르쳐야 할 내용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이 아무리 탁해져도 문제를 해결할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학교여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키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는 오히려 학생들에게 정반대를 가르치고 있다. 어려서부터 특권 의식을 느끼게 하고, 차별 대우를 하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 버렸다.






수능의 객관식 문제들은 모두 오지선다형이다. 1번부터 5번까지 선택지 중에 하나만 맞고 나머지는 모두 오답이다. 학창 시절 내내 정답을 고를 확률 20%의 선택지를 찍는 공부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우리의 인생마저도 20%의 정답인 인생80%의 오답 인생이 있다고 믿어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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