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해운대를 거닐며

어쩌면 사색의 바다, 해운대

by 일상의효능

그날 걸었던 잘 꾸며진 밤의 해운대는 한강공원 같았다.

조금 익숙하면서도, 먼 타지라는 생각이 날 들뜨게 했다.

낯섦이 주는 설렘은 늘 그런가 보다.


차도를 건너 걷기 좋게 닦인 길을 넘으니 바로 해운대 모래밭이었다.

모처럼 온 부산이니까 굳이 모래를 밟고 걷고 싶었다.

막상 해운대 밤바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해서

길 따라 늘어선 노랗고 예쁜 호텔 조명을 길동무 삼아 모래를 걸었다.



모래밭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 가벼운 무언가를 하느라 바빠 보였다.

고맙게도 폭죽을 터뜨리는 사람들, 돗자리에 앉아 맥주 마시는 사람들,

두고 온 친구와 영상 통화하는 사람, 물가에서 보이지 않는 바다를 찍는 사람들..

저마다 달리 바빴지만 그 얼굴에서 들떠있는 여행자의 설렘이 느껴졌다.

굳이 모래를 걷고 있는 나처럼.


1km 정도 모래를 걸으니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고 다리가 피로했다.

나는 아까 지나 온 걷기 좋게 닦인 길로 옮겨 걷는 사람들 속에 자연스레 섞였다.
폭이 넓지 않은 그 산책길의 느낌은 조금 전 모래밭과 사뭇 달랐다. 모두 천천히 걷고 있었다.

나도 느려진 걸음에 맞춰 천천히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신혼부부와 중년의 부부를 지나쳤고,

난간에 걸 터 앉은 어느 두 친구도 지나쳤다. 그 옆 벽에 기대 함께 바다를 바라보는 커플도.


그때마다 이야기 한두 마디 정도가 들렸다. 누구는 집값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누구는
어린 자녀에 대한 이야기, 또 누구는 결혼과 취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나같이 가볍지 않은 고민들이었다. 그 길을 걷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산책길 걸음이 느렸던 건 그 고민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삶의 고민을 저 광막한 바다에 차분히 던지고 있던 산책길은 들떠 있는 여행자들의

모래밭과 대조됐다. 어쩌면 이 길이 이곳 사람들이 품고 있는 진짜 해운대의 모습이 아닐까?


다시 나는 멀리 바다를 보았다. 해운대는 한강처럼 화려한 불빛과 야경이 있는

낭만적인 곳이라기보다 끝도 없는 묵묵한 바다가 펼쳐지는, 사색이 어울리는

철학적인 곳에 가까워 보였다.


그럼 나는 어떤 고민을 저기에 던져볼까?

여행자인 나는 고민일랑 다 두고 왔다 생각했건만,

이 산책길을 걸으니 술술 떠올랐다.


돌아오는 길,

아까 본 노랗고 예쁜 호텔 조명 대신

어두운 밤의 해운대을 길동무 삼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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