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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리어스 Mar 09. 2023

힘든 마음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

Embracing the Absence_02 - 사야마 호반 공원묘지

여러분은 새로운 도시에 방문하면 빼놓지 않고 들리는 곳이 있으신가요? 저는 시장과 서점, 미술관은 반드시 갑니다. 그리고... 꼭 가보려고 노력하는 곳이 있는데, 그건 바로 공동묘지입니다.  묘지는 그곳이 속한 사회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풍부한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그곳에 담긴 죽음의 풍경에는 삶의 모습이 겹쳐져 있습니다.


조금 별난 취향을 가졌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저도 처음부터 묘지를 찾아다닌 것은 아닙니다. 2016년 유럽으로 장묘 건축 답사를 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이후로 관심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당시에 장묘 건축을 답사의 테마로 정한 것은 정말 단순한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사회의 각 부분 영역에서 눈부신 성장을 일구며, 급속도의 경제 성장을 경험해 왔습니다. 주변에서는 매일같이 화려한 건축물과 멋진 공간들이 생성되고 소멸됩니다. 하지만 유독 죽음을 담는 공간만은 그러한 흐름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죽음과 관련된 공간들 - 장례식장, 봉안당, 화장장, 추모공원 등 - 이 우리의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장묘 공간들이 대중의 관심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계획되고 만들어졌고, 그 결과 우리가 사용하게 되는 공간들은 획일적이고 거칠고,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람들이 인생에서 죽음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은, 대개 가장 연약해져 있을 때입니다.  자신에게 소중했던 이를 떠나보내고, 그 후의 부재를 오롯이 감당해 내야 하는 힘든 시간. 이러한 순간에 건축이, 공간이 좀 더 상냥하게 사람들의 곁을 지켜줄 수는 없을까요?




저는 지금 일본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작은 예배당에 와 있습니다. 이곳은 사야마 호반 공원묘지 안에 있는 장례예식을 위해 마련된 채플입니다.

© Curious Praxis

예배당 부지는 숲과 묘지의 경계에 위치합니다. 삼각형 모양의 대지 중앙에는 비정형의 예배당이 위치하고, 그 주변에는 건물을 감싸는 형태로 나무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이사이로 난 삼각형의 창을 통해 예배당을 둘러싸고 있는 숲의 모습이 보이고 따스한 햇빛이 공간 내부로 스며들어옵니다.


건물에 가깝게 식재된 나무들의 가지를 피하기 위해 건물은 상부로 갈수록 중심을 향해 기울어집니다. 그 결과 대지에서 하늘로 향하는 251개의 나무 구조체가 상부에 놓인 두 개의 보를 향해 합장하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 Curious Praxis


특이한 점은 천장과 벽면이 구분이 없는 것입니다. 지붕을 이루는 구조가 그대로 벽이 되어 바닥면과 만납니다.  가장 높은 지점의 천장고는 7미터 정도로 면적은 크지 않지만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부에서 바라본 천장은 하나의 꼭짓점을 향해 수렴되는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나무 구조체가 한 지점을 향하는 패턴을 이루며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일종의 상승감이 느껴지며, 마치 가느다란 나무 기둥이 하늘을 향해 솟아나있는 숲 내부에 들어온 느낌을 줍니다. 따뜻한 느낌의 목재가 방문객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줍니다.

Site Plan © NAP

이 공간에서 나무 구조체는 구조물인 동시에 마감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마감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부재의 결합을 위해 사용된 금속부재나 서까래와 같은 기타 구조부를 감추고, 오직 건축가의 의도가 담긴 형태만을 드러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기술과 노력이 많이 투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건물은 두 개의 층으로 설계되었는데, 1층은 예배당으로 지하층은 납골당으로 계획되었습니다. ​


예배당의 내부 공간 구성은 아주 단순합니다.  20평 정도의 공간에,  폭 2미터 정도의 벤치 6개가 중앙의 제단을 바라보며 놓여있습니다.  열 명에서 스무 명 정도 되는 인원을 수용하기에 적합한 규모로, 고인과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 모여 의미 있는 고별의식을 하기에 적절한 공간입니다.

© Curious Praxis

이 자그마한 공간에는 구석구석 많은 배려가 숨어 있습니다.  예배당의 바닥면은 제단을 향해서 아주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고, 바닥을 덮은 슬레이트 석재의 절단된 방향은 숲을 향하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제단과 그 뒤에 위치한 숲을 향해 움직이도록 의도한 것입니다.


건축물에 당연히 존재하는 전기와 설비 같은 요소들도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철저히 감추어져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불필요한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애도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배당의 문손잡이 / 내구성을 위해 일부는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나, 실제로 손이 닿는 부분은 목재로 되어있어 따뜻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 Curious Praxis
페이퍼 코드로 짜인 벤치 / 손에 닿는 감촉이 따뜻하고 앉았을 때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 Curious Praxis

건물의 뼈대를 형성하는 복잡한 형태의 구조 프레임은 합판으로 고정되고, 그 위에 세심하게 방수층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비정형의 곡면 지붕 위에는 2만 장이 넘는 알루미늄판이 비늘 모양으로 덮였습니다. 두께 4밀리미터, 크기는 약 180mm x 220mm 되는 알루미늄판은 모두 손으로 제작되어, 제각기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세심하게 수작업으로 마감된 지붕-외벽은 주변의 자연경관과 반응하며 다양한 표정의 빛을 은은하게 반사합니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나카무라 히로시는 그의 디자인에서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특히 중시했다고 합니다. 예배당 주변에 배치된 나무의 움직임과 숲의 소리를 통해, 오히려 공간 안에서는 고요함을 느낄 수 있도록 의도했습니다. 예배당에서 나와 건물 주변을 걸어보니, 이러한 건축가의 의도가 분명히 느껴집니다. 바람에 살랑이는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알루미늄 벽면이 반사합니다.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선 채로, 시시각각 그 모습이 바뀌는 빛과 그림자의 표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알 수 없는 평안함이 일었습니다.


이 공간에 깃든 상냥함은, 건축가와 장인들의 집착과 고뇌의 산물입니다. 그들의 세심하고 철저한 배려 속에서 탄생한 이 공간에서, 방문객들은 온전히 고인을 기념하고 애도할 것입니다. 자연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숲 속 예배당에서 그들은 죽음에 대해 그리고 그들 앞에 남겨진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원묘지와 숲의 경계에 위치한 예배당 © Curious Praxis
예배당에서 내려다본 사야마 호반 공원묘지의 전경 © Curious Prax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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