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외딴방의 시대
구로공단에서 주경야독하던 공순이 소녀의 삶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몰입이 잘 되었던 까닭은,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일하던 내가 느낄만한 소설의 공간적 배경에 대한 동질감만은 아니었다. 소설이 나온지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단칸방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딴방은 아마도 고시원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이 시대에 똑같이 다시 쓰여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시대의 외딴 방, 고시원 대해 이야기하려면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도권 위주의 경제부양책으로 인해 일자리도 서울에, 양질의 교육도 서울에 있는 와중에, 경제성장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수도권 밀집형 구조가 만들어졌다. 얼마전에 동영상강의에서 봤는데 서울의 면적은 변한 바 없이 20년 동안 인구가 매년 28만명씩 늘었다고 한다. 서울 인구 천만시대. 사람이 많은데 당연히 집도 많아야지. 그래서 외딴 방의 시대가 도무지 끝날 생각을 앉는다.
감가상각과 상관없이 아파트는 가격이 올라 어머니아버지 세대에 부동산이라는 큰 자산을 선사해 주었으나, 지금 이 부동산 고점에서는 젊은이도 은퇴어르신들도 좌불안석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지내온 풍요의 시대는 이제 그 내리막 길 앞에서 젊은이들, 혹은 몇차례만난 위기의 시대를 힘겹게 버텨온 서민가정을 단칸방으로 내몰고. 이십년이 지났는데, 우리 사회가 그렇게 발전했다는데 아등바등의 시대는 왜 끝나지 않을까.
소설 속에서 주인공 소녀는 오빠와 사촌, 가족의 사랑과 문학의 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외딴 방의 삶을 견디어내고 있다. 지금의 단칸방의 청년들은 어떤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의 친구 청년들은 일자리가 여기에 있기에 이곳에 머문다. 그리고 많은 도시의 인프라를 누리기 위해 서울에 머문다.
그런데 서울에는 또다른 임금문제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 나의 친구들의 많은 수가 대기업 혹은 전문직인 관계로 아등바등 빚좀 얹으면 서울에서 적당히 사람처럼 살 수 있다. 그런데, 일자리를 위해 서울로 온 대기업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은 오직 생존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많은 복지를 포함하는 대기업은 전국 근로자의 4%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상한 도시. 평균 월급은 왜 이십년째 제자리걸음인지. 야근을 아무리 해도 야근비는 나오지 않고, 기업문화라고는 없어 인신공격적인 말을 하는 사수라도 견디어내는 수 밖에 없는 회사일지라도 감사히 다녀야 하는 도시.
구로에서 그 많은 수의 사람들이 우르릐 쏟아져나와 신림동의 원룸으로 거대한 흐름처럼 지옥철을 타고 움직인다. 아니면 사람다운 삶을 위해 서울밖을 떠나 출퇴근을 두세시간씩 하기도 하고. 고단한 삶에서 사랑이라도 찾아 그 자리에 정착하는 것이 직장인에게 허락된 작은 미래일까싶지만, 이런 삶을 사는데 어떻게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반복되는 야근 가운데 살림살이는 전혀 나아지지 않는 것을. 전세의 시대가 끝나고 월세의 시대가 찾아왔으나 연봉은 오르지 않는데 말이다. 그저 빚더미를 평생 안고갈 담대한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매년 경주의 인구만큼 서울의 인구가 20년동안 늘어났다는데, 내년 고등학생은 13만명이 줄어든다는 걸까.
정신이 성장할 여유는 개인의 노력으로 찾아야만 하고, 구조적으로는 적선같은 지원뿐인 느낌. 그래서 이 끝나지 않는 단칸방의 시대를 나는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견뎌야 하는 걸까. 20년 전처럼 오 그래도 내일은 밝은 미래가 펼쳐질 거야 하는 답없는 희망, 이 와중에 내 꿈은 이루어질거야 하는 핀조명같이 좁은 자기최면, 아니면 문학과 사랑같은 낭만? 오 제발 그 대답을 빚더미로 해결하라고 하진 말아주시겠습니까 국가여.
답없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요? 최선의 노력으로 최선의 안전망을 스스로 확보하지 않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생존위기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하는 걸까? 답을 알수없는 질문을 뒤로한 채로, 나는 나의 롤모델인 타샤튜더처럼 시골에 내려가서 조그만 조주택을 짓고, 정원을 가꾸면서 작품활동을 하는 꿈을 꾸면서 서울의 삶을 보내고 있다. 나의 모든 인생이 서울에 있긴하지만 나의 꿈은 이곳에 있지 않다. 그리하여 나는 장소에 구애받지않는 직업을 원한다.
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적지 않았지만, 이 글이 나를 생각하게 하였으니 이것은 독후감이 맞겠지. 글이 나온지는 이십년이 지났는데, 살림살이 나아졌나요? 이 이상한 나라에 묻고싶다. 외딴방의 시대가 끝나면 마당깊은 집의 시대가 오기를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