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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Mar 02. 2021

00. 사회생활하는 대학생 이야기

졸업과 편입, 브런치의 시작

 여자 친구에게 브런치라는 사이트가 있다고 소개를 받았다. 나는 주로 네이버를 포탈로 쓰는데 다음을 쓰는 여자 친구가 페이지 하단에 있는 좋은 글들을 읽어보면서 브런치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한 때 글을 쓰고 싶어 했고, 또 글을 써왔던 나를 여자 친구는 누구보다도, 내 가족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 추천을 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꼭 써볼게"라고 이야기만 하고 차일피일 글을 쓰는 날을 뒤로 미뤄왔다. 바빴다고 변명하겠다.


 나는 20살에 군에 입대한 이후로 지금까지 군에서 정비사로 일하고 있다. 사실 내 꿈은 군인이 아니었고 정비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한 상태에서 형제가 모두 대학교를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대학을 가더라도 지원을 받으면서 갈 수 있는, 군에 입대하는 길을 등 떠밀려 선택하게 되었다. 웃긴 건 군에 입대하고 나서도 글을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병사 생활 2년 동안 나는 꾸준히 노트에 글을 써왔다. 노트필기를 많이 해보지 않았기에 내 글씨는 이리저리 날아올랐고 노트는 이내 삐뚤빼뚤한 글씨들로 가득 메워져 갔다. 공군에 입대해봤다면 200p 남짓되는 병사 수첩이라는 물건을 보급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은 5p도 쓰지 않고 버리는 물건인데 그 노트를 선, 후배들에게 받아 7권가량을 채웠으니 나름 많이 썼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부사관이 된 나는 그 노트를 모두 버렸다. 숙소가 여의치 않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내게 7권의 노트는 짐이기도 했지만 내용도 글씨도 예쁘지 못했던 노트를 다시 펼쳐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숙소를 옮기다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그 노트에는 내가 써온 소설들이 담겨 있었다. 한 편으로는 그 소설들은 인터넷에 옮겨 적지 않은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랬으면 분명 여자친구에게 네이버 블로그를 보여줄 때 부끄러워서 이불을 뻥뻥 찼을지도 모르니까... 노트를 버린 후로는 글을 잘 쓰지 않았다. 병사뿐만이 아니라 간부라는 옷도 나한테는 맞지 않는 옷이었나보다. 군에서 대학교를 보내줬기에 참고 생활을 시작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그 생활은 힘들었다. 선배중에서는 나에게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크고 작은, 때로는 이상하게 돈 소문때문에 선배에게 불려가 욕을 먹은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글을 쓰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지는 않았다. 퇴근하고 해야할 일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학 수업도 들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저녁도 요리해야 하고...


 그렇게 매일매일 무미건조한 삶을 살면서 나 자체가 피폐해질 때 쯤에 여자 친구를 만났다. 그 때의 나는 여자 친구가 보기에도 이상한 사람이었다. 웃는 표정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안 웃자니 무섭게 생긴 사람, 20대 중반이 되도록 군대랑 글밖에 모르는 사람, 굉장히 많은 고민과 스트레스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꽁꽁 숨기는 사람, 여자 친구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고 한다. 내 여자 친구 또한 비슷한 사람이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는 사람이었고, 인간관계때문에 고민하며,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고 늘 긴장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똑같은 듯 똑같지 않은 우리는 서로 사귀기 시작했고 때로는 다른 부분때문에 부딪히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싸우기도 했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면서 함께 하게 되었고 2년의 시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함께 하고 있다.


 여자 친구의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더 쓰도록 하고, 결과적으로 나는 4년간 대학교를 다녔고 올해 2월 졸업했다. 인하공업전문대학에서 항공정비를 전공하고 전공심화과정까지 들어 4년제 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그동안 나를 따라다니던 가방끈에 대한 이야기에서 해방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서울 사이버 대학에 다시금 편입 원서를 넣었다. 원래 내가 배우고 싶었던 문예창작에 대해 배워보고 싶어서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였다. 중학교 때 공부를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마음아파하실까 늘 시험 전에는 바짝 공부를 했고 25% 수준은 유지해왔다. 고등학교는 내 장래희망과는 무관한 한 특성화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그 길로 군에 입대했다. 군에서도 대학교를 진학, 졸업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학사까지 좋은 성적으로 학사까지 취득했다.


 말 잘 듣는 아이는 26이 되어서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다. 늦었지만 늦었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명 부모님의 이야기대로 군에 입대하지 않고 평범한 4년제 대학에 갔으면 지금 쯤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막막했을지도 모르고 나 또한 내가 해보고 싶던 취미들을 못해봤을 지도 모른다. 여자친구와는 장거리였기에 당연히 지금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지금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올 해 첫 장기복무심사에 들어간다. 만약 여기에서 장기복무가 확정되면 앞으로 군 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이고 탈락한다면 내년에 다시금 장기복무심사에 신청할 것이다. 만약 두 번의 장기복무심사에서 모두 탈락한다면 그 때는 사이버대학도 졸업했을 때니까 전역하고 새 일을 알아볼 수 있겠지. 만약 장기복무선발이 된다면 그 때는 여자친구랑 결혼하고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겠지.


  다음부터는 일상 이야기, 뉴스 이야기와 같은 평범한 것들을 쓸 것이다. 그러다 자신감이 생기고 좋은 글감이 생기면 소설도 써볼 예정이다. 그래도 일단은 평범한, 나도 여자 친구도 누구나 다 읽을만한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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