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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Mar 03. 2021

01. 사회생활하는 대학생 이야기

튤립

 튤립의 꽃말을 아는가? 나는 모른다. 왜냐하면 튤립은 색에 따라 꽃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튤립을 선물하려고 한다면 꽃을 선물하기 전에 어떻게 보관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면 좋을 것이다. 해바라기처럼 활짝 핀 튤립을 선물로 줄 수도 있으니까.


 여자친구와 최근에 900일을 넘겼다. 나는 남고, 군대, 공대 루트를 밟아왔기에 여자와는 크게 인연이 없었고 내 중학교 때 동창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나지도 못했을뿐더러 아마 지금까지도 연인 없이 홀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통해 배움을 얻지만 나는 여자친구에게 많은 것들 중에서도 선물의 기쁨을 배웠다. 누군가에게 작은 것이라도 선물한다는 것, 그리고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상대방을 보고 차오르는 내 마음속 기쁨, 나는 그런 기쁨을 몰랐었다. 부모님은 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용돈을 주셨지만 값비싼 물건에 대해 욕심이 생겼어도 그 말을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기에 나는 늘 적당한 양의 돈을 받았고 그 돈을 하루, 이틀 사이에 친구들과 사용하면서 내 물건에 대해 크게 인식을 가지면서 살지도 않았었고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 적도 크게 없었었다. 그렇기에 나는 20대가 되어서도 선물을 한다는 것에 대해 무언가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정말 특별한 기념일이 아니라면 선물을 했을 때 '왜 이런 선물을 지금 하지'와 같은 생각이 들까 선물을 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 연인은 나에게 간단한 것이라도 선물을 해주면서 선물이란 것은 크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여자친구는 지금 진주의 본가에서 살고 있다. 대구에서 근무하는 나는 여자친구를 주말에 보러 갈 때면 자차가 없었기에 늘 기차에 몸을 실어야 했고, 내가 보통 타는 차는 아침 9시에 도착하는, 그러니까 대구에서 8시쯤에 출발하는 기차였다. 조금 더 여유롭게 갈 수도 있었지만 여자친구를 조금이라도 일찍 보고 싶었다. 내 일상 속 소소한 기쁨이었으니까. 


 그녀를 만나러 전 날 학원 등록을 위해 시내에 나갈 일이 생겼었다. 학원 등록은 굉장히 빨리 끝났고 나는 그녀를 만나러 가기 전 선물을 하나 준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것들을 받아왔지만 많은 것들을 주지 못했고 그녀가 받아서 기뻐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많은 선물들 중 꽃을 생각해냈다. 러넌큘러스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그녀, 그녀를 위해 꽃다발을 하나라도 만들어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그대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잰걸음으로 꽃가게까지 간 나는 밖에서 뛰던 기세와는 달리 생전 처음 물건을 사는 꼬마처럼 쭈뼛거리면서 가게에 들어갔다. 다양한 물건을 사봤지만 꽃을 사본 적은 많이 없었기 때문에 사뭇 느낌이 달라서였다. 하지만 가게 직원분은 나같은 손님을 많이 상대해본 베테랑이었는지 친절하게 꽃다발에 넣기 좋은 꽃들을 소개해줬고 나는 러넌큘러스도 노란 튤립도 다른 꽃도 들어간 예쁜 꽃다발을 만들었다. 그 꽃다발을 계산하면서 직원 분은 내게 찬 곳에 두어야 한다. 내일 가기전에 물을 주면 좋다와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는 그 사실들을 머리 속에 담아두며 집에 와서는 텀블러에 물을 받아 꽃을 꽂아놓기도 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꽃다발과 함께 기차에 몸을 실었다. 새벽을 지나온 기차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달리고 있었고 나는 창가에 꽃을 둔 채 잠깐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나는 중요한 사실을 잊었다. 꽃은 햇살을 받으면 개화한다는 것을.


 여자친구가 있는 진주에 도착했을 때 꽃다발은 어제 내가 알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형상이었다. 많은 꽃들이 햇살이 따스히 내려오는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튤립은 열대식물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잠에서 덜 깬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일단 튤립을 매만져봤다. 하지만 이미 열린 입은 닫히지 않았고 나는 난처함을 숨기지 못한 채 기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내가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만을 기다렸는지 기차에서 내리는 내 모습을 이리저리 찾다가 이내 발견하고는 내게 뛰어왔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꽃다발을 안겨줬다. 이미 개화해버린 조금 특이한 꽃다발을 말이다.


선물받은 꽃다발을 창가에 예쁘게 둔 채 촬영한 여자친구의 사진이다. 그 당시에는 튤립이 활짝 열리지는 않고 가장 위쪽에 보이는 튤립처럼 봉오리가 열린 정도였는데 며칠 햇살을 받았는지 열대 꽃처럼 입을 활짝 벌렸다. 여자친구는 이 꽃다발을 맨 처음에 받고 튤립인지 잘 몰랐다고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튤립이 저렇게 햇살을 받는다고 입을 벌리는 꽃인지 몰랐기 때문에 여자친구도 모를만 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어쨌든 그녀는 꽃을 받고 굉장히 기뻐했고 나 또한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행복했다. 이런저런 일은 있었지만 그거로 충분한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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