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을 쓰려다 첫마디에 뭘 써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고 컴퓨터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들었던 펜을 그대로 내려놨다.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그렇게 며칠을 흘려보냈다. 어떤 말을 써야 하나. 오늘은 고민 대신 노래를 먼저 틀었다. 더 콰이엇의 명곡 <진흙 속에서 피는 꽃>, 사실 <Take The Q Train Remix>라고 피타입이 피처링해 준 노래가 이 책에는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따라 이 노래가 듣고 싶었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더 콰이엇이구만.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아니 책 이전에 이 글을 쓴 저자는 위험한 사람이다. 위험한 냄새를 맡을 줄 알고 위험한 것에 뛰어드는 본능을 가진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위험한 글만 골라서 쓰는 사람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궁금하다면 목차를 펼쳐보자. 그리고 서평이 쓰인 24년 말 기준으로 뉴스에 이름이 올라오면 위험한 사람이 몇 명인지 세보자.
목차만 펼쳐보고도 편집자가 어떻게 이 원고를 통과시켜 줬을까, 웃게 되었다. 그래, 이런 굵직한 이름들이 나와야 문화 비평이 되겠지. 다루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 맞고, 각 분야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사람들이 맞으니까.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 사람들 이야기는 별로 떠들고 싶지 않은데. 위험한 책 덕분에 나도 위험한 서평에 끌려온 기분이 든다.
나는 그의 글을 좋아한다. 그는 세상을 프레임으로 바라보고 프레임 안에 담기는 것들과 담기지 않는 이야기를 모두 다루려고 애쓰는 욕심 가득한 평론가다. 그의 문화 비평은 영화로 시작해서 영화로 끝이 난다. 영화에 집착한다고 표현을 바꿔도 된다. 그 정도로 이번 책도 영화 이야기로 가득하다.
1부는 20세기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1950년부터 70, 80, 90, 그리고 50년도로 작가들의 작품과 그 이면에 담긴 이야기를 진득하게 풀어낸다. 책에 나오는 영화들은 일반적인 독자라면 보통 들어본 적 없는 작품들밖에 없다. 고전적인 필름 느와르 시기의 할리우드 작품들, 초기 느와르와는 다른 색채를 보이는 70년대의 느와르, 서부극과 스파게티 웨스턴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할리우드의 역사와 비디오 시대를 살던 감독들의 이야기까지. 사실 1부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절대 간단하지 않다. 사실 영화의 역사를 몇 가지 키워드로 같이 쫓아가는 과정이니까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 길고 장황한 이야기에서 책을 쫓아갈 힘을 주는 것은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Take The Q Train Remix>, 나는 책을 쫓으며 이 노래를 떠올렸다. 비가 오는 여름밤 어떤 꼬마의 이야기, 진득하게 울리는 드럼 비트와 라디오 만이 나를 지켜주는 이야기.
책에는 그가 영화로 살아온 이야기, 음악으로 살아온 이야기가 함께 담겨있다. 이게 과연 문화 비평서에 필요한가?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과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비평하는 저자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시선으로 문화를 바라보는지, 그는 문화를 비평할 만큼 진심을 보여주는 거리에 서있는지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조금은 안타깝고, 조금은 슬프다. 그런데 거기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친구 한 명이 이어준 관계로 시작해 친구 한 명이 사라지자 깨진 관계를 내 눈으로 봤어서 그런지, 어린 시절 힙합을 들으며 커와서 그런지, 지난했던 군생활을 보내서 그런지 나는 알 수 없지만 무던한 감정의 흐름에 나도 모르게 묘한 동질감을.
그렇게 조금 긴 1부를 끝마치면 다음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더욱 위험해진다. 2부는 21세기로 넘어와 각 분야의 인물이라 할 법한 얼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처음 다뤄지는 인물이 후장사실주의자들, 바로 정지돈 작가다. 나는 이 분의 이름을 별로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예전에 좋아하는 한국 작가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이름을 꺼낼 정도로 좋아했던 인물이었는데 최근 어떤 사건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24년 6월의 이야기, 그의 글이 오토픽션이냐 아니냐 늘 말이 나오던 도중 일이 터졌다. 그 사건이 발생하고 문단이 떠들썩해졌을 때 조금 웃긴 이야기 기는 하지만 문득 내 글쓰기 방식이 떠올랐다. '나는 늘 내 이야기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앞세우고는 했는데 혹시 누군가 내가 쓴 글을 보고 지적하면 어떻게 하지?' 쓸모없는 고민이었다. 이 원고를 예전부터 준비해 왔다면 저자도 중간에 꽤나 골머리를 썩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이 위험한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뛰어들었을 것이고.
정지돈은 한국 문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다. 신예 작가들에 대해 평이 박한 독서 커뮤니티에서도 문학적 완성도를 높게 쳐주는 작가 라인업에 들기도 할 정도로 그의 도전과 시도는 다양하고, 그가 글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근래 다른 한국 작가들이 보여주는 과정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글에서 풍기는 기묘함에 독자들은 매료된다. 21세기의 문화 비평, 그래서 문단의 이야기를 다룰 때 그의 이름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가 얼굴로 다뤄질 줄이야. 사실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의 세계관을 구축해 가는 과정과 글, 오토픽션과 아카이빙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다. 그렇지만... 위험한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거둘 수는 없다.
그 후 나오는 이야기는 음악, 영상 미디어, 그 외 다수에 대한 이야기다. 힙합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인디 밴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 피타입과 언니네 이발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붐뱁과 트랩, 한국을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일리네어 레코즈의 등장 전과 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프로그램으로 치자면 쇼미더머니 등장 전, 그리고 직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 평론가인 그가 이런 다양한 문화를 비출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결국 그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 각층에 존재하는 문화를 프레임으로 잘라서 보는 괴짜다. 글을 구상하는 장면을 컷으로 상상하고, 음악과 영상 미디어를 프레임 안과 밖의 이야기로 나눠보려고 노력한다. 극장의 시대, DVD의 시대, 그리고 OTT의 시대를 상상하고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평론의 영역 밖에 사는 우리의 입장에서 그런 시선은 불필요한 시선에 가깝다. 대다수는 까탈스럽고, 유난스럽고, 때로는 마치 그들을 괴롭히려는 것처럼 악의적이라는 느낌을 줄 뿐이니까.(사실 그건 대다수가 이런 시선을 갖기에는 전문성이 부족해서 그렇다.)
하지만 저자의 글에 담긴 비평은 유난스럽다기보다는 자연스럽다. 마치 손발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너무 당연하기도 하다. 예전에 『악인의 서사』에서 그의 글을 읽었다. 그때 느꼈던 서부극을 향한 그의 열의란. 선과 악이 혼재된 서부 개척시대에서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에 대해 떠드는 목소리가 마치 글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의 글을 보고 '이 사람은 이 글을 쓰기 위해 이런 생각을 잇는 것이 아니라 평소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이구나.' 느낌을 받았다. 이런 감상평을 내렸던 작품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게 정지돈 작가의 출세작「건축이냐 혁명이냐」였지. 자꾸 피하고 싶은 이름이 나온다.
저자는 늘 그렇듯 글과 한 발자국 반을 유지한다. 주먹이 닿는 거리, 인파이터들이 사랑하고 평생 이 거리에 설 수 있기를 소망해 마지않는 거리, 내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거리. 그는 언제나 이 거리에서 글을 쓴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진정성을 보이고 때로는 아찔하게, 때로는 위험하게 보이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이 책이 50쇄, 100쇄, 대박이 날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솔직히 그럴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리라 생각한다. 그럴 가치가 있는 내용이니까. 그의 다음 책은 어떨까. 경기가 끝나고 링 아래로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나는 여전히 눈으로 좇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떠올렸던 노래는 <Take The Q Train Remix>와 게이트 플라워즈의 <미련>이다. 사실 나도 저자만큼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인디밴드와 힙합을 사랑한다. 소울컴퍼니 시절부터 피타입, 이그니토, 에픽하이와 같은 걸출한 붐뱁 명곡을 찍어낸 래퍼들과 갤럭시 익스프레스, 로맨틱 펀치, 국카스텐과 같은 밴드를 좋아하는 리스너다. 나는 지금도 국카스텐 1집 앨범 수록곡 <Gavial>을 제일 좋아한다고 떠들고는 한다. 어쿠스틱 사운드와 국카스텐 특유의 사이키델릭함이 잘 섞인 곡이기 때문이다. 어디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냄새가 나는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예전에 정지돈 작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글을 쓰기 위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이런 생각을 하며 사니까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라고 그의 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저자도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담는다. 그의 입장에서 현실은 글을 쓰기 위해 존재하는 아카이빙, 기억의 파편일 뿐이고 그걸 글에서 풀어내고 있을 뿐이라고. 기호화된 글, 오토픽션이라는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내가 자세히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그는 자신의 언어로 세밀하게 풀어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저자의 이야기에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그의 능력이 부럽기도 했다. 위에서도 아래서도, 자꾸 동질감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번 책이 많이 팔리기를 빌겠다. 그리고 다음에도 이런 재미있는 문화 비평서를 가져오면 좋겠다. 다음에 또 그가 새로운 글을 가져올 때는 얼마나 위험한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아니면 그가 글을 가져올 때마다 위험한 일이 터지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