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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Dec 19. 2024

41. 연결하는 건축 - 안그라픽스

문화의 꼬리를 엮으면 어디까지 닿을까

 최근 <건축의 장면> 전시전에 방문했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개최된 이 전시전은 건축을 컨셉으로 하지만 건축미니어처는 없는 전시전이다. 오히려 영상 전시에 가까운 전시전이다. 내가 그날 전시전에 방문한 것도 우연한 일이었다. 길을 가는 도중에 미술관이 보였고 근래에 『연결하는 건축』을 읽고 관심도가 올라간 상태에서 마침 건축과 관련된 전시전이 열렸다. 그래서 독서모임이 끝나고 모두를 배웅한 다음 그 길로 전시전에 방문했다. 그런데 우연히 2시에 시작할 전시해설이 예정보다 늦게 시작했고, 우연히 내가 방문한 시점에 1층 소개를 모두 끝낸 도슨트가 2층 <건축의 장면> 기획전으로 관람객들을 유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적어보니 정말 우연이 겹치고 겹쳤다. 이번 기획전은 만족스러웠다. 영상 전시였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20분에서 30분의 상영 시간을 가진 작품들이 많았기에 시간이 많지 않아 모든 작품을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원하는 작품들만 살펴봐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전시전이었다.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담겨있기도 해서 그 시선을 따라가는 재미도 있었고.


 서평의 서두에 전시전 후기를 짤막하게 쓴 이유는 전시된 한 작품 때문이다. 전시전에는 《비슷한 골목》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한국의 여러 골목들을 같은 구도로 촬영한 다음 꼴라주 기법에 따라 골목의 사진을 오려 여기저기에 붙여보는 작품이었다. 생각해 보자. 붉은 벽돌로 된 건물들과 회색 담장, 바닥에는 일방통행이라고 적힌 페인팅이 있고 담장 좌우에는 불법으로 주차된 차량이 서있다. 앞에는 작은 슈퍼마켓이 하나 놓여있고 좌우에는 작은 골목이, 그리고 하늘에는 전신주가 양팔을 펼치고 있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한국 어디를 가도 보이는 평범한 골목이. 책에서 많은 대담을 이루지만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자 한다.




 『연결하는 건축』은 구마 겐고의 대담집이다. 정치인, 사회활동가, 연극 감독, 건축가,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인터뷰를 하는 그는 도쿄 올림픽 당시 도쿄 국립경기장을 설계한 건축사로 동일본 대지진을 기점으로 이 대담을 시작한다. 그는 일본의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담을 이루는데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이야기는 일본의 다도 문화와 다도실, 그리고 마당의 형태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건축의 본질을 찌르는 이야기에 가깝다.


 서구권의 시선에서 일본의 건축 양식에 특별함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오로지 다도를 위해 존재하는 다도실의 유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다도는 일본인에게 특별한 문화다. 전국시대 대립하는 상황에서도 서로 마주하며 차를 마시는 다도실은 칼과는 거리를 둔, 문무겸비라는 말이 어울리는 장소였고 실제로 많은 회담, 밀담이 이뤄지고 정치가 완성된 장소기도 했다. 물론 방 앞에 자신의 심복들을 배치해 놓고 숨죽여 칼을 쥐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다수 나오지만 말이다.


 인터뷰는 이후 다른 인물의 입을 통해 사회의 다른 부분을 찌른다. 일본의 연립주택, 아파트의 형성과 거주민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 구성에 대한 이야기, 기획도시의 구성에 대한 건축사들의 시선과 지역의 특수성에 대한 이야기, 구마 겐고 본인의 건축 철학에 대한 이야기, 철도 문화, 버스, 고립되는 시골 주민들의 이야기, 그리고 최초 기획했던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의 고통과 치유, 그들을 돕기 위한 건축사들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까지 말이다.


 나는 이 중에서도 기획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유난히 눈에 밟혔다. 사실 나는 기획도시의 형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혁신도시, 신도시라고 불리는 도시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도시의 지형에 따라 다르지만 내천을 겉으로 두르거나 도시의 중앙으로 내천이 관통하고 이를 기점으로 좌측에는 거주지구, 우측에는 상업지구, 혹은 거기에 대로변을 하나 더 배치해서 마치 좌표평면 위의 지역처럼 1사분면에는 거주지구, 2사분면에는 상업지구 3사분면에는 공업지구... 이런 식의 배치가 이어진다.


 내부는 얼마나 다를까? 서문에서 말한 한국의 어느 골목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치 하나의 설계도로 이 도시의 모든 건물을 지은 것처럼, 어딜 가도 똑같은 건물이 놓여 있고 어딜 가도 똑같은 도시가 놓여 있다. 위에서 말한 《비슷한 골목》이라는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영상으로 가만히 지켜봤다. 잘린 골목의 사진들은 분명 각기 다른 골목에서 가져온 사진이겠지만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을 띄면서 주변 다른 조각들과 위화감 없이 함께했고 작품이 완성될 쯤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골목이 되었다.


기획도시들도 똑같다. 결국 완성된 형태를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도시의 형상이 된다. 기획도시의 건축 시작 당시 이념은 꽤나 거창하다. 낙후된 도시를 신도시의 형태로 변모시켜 지방에 많은 이주민을 받고자 한다. 그리고 지방의 특색을 살린다면 이후 사람도 살기 좋고 관광지로도 가치가 있는 도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념대로 이뤄지는 도시는 없다. 수도권 과밀이라는 한국의 특성상 지방에 아무리 좋은 건물이 지어져도 사람은 직장이 없어 살 수 없고, 도시를 다시 짓는 과정에서 지방의 특색은 거세당해 관광객들도 방문할 이유가 없는 도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혁신도시는 주말이면 불 꺼진 도시가 된다. 평일에는 해당 지역 기업에 다니는 기러기 아빠들이 살다가 주말이면 서울로 올라가는 죽은 도시.


 책에서 나오는 예시처럼 무분별하게 지어진 상가와 골목으로 이어진 거리 위로 이를 관통하는 순환도로가 생긴다면, 난잡한 -혹은 자유로운- 도시에 유입되는 인구가 늘 것 같지만 도시의 특색은 거세당한다. 관광지는 더 이상 관광지가 아니게 되고 사람들은 특색을 잃어버린 도시에 흥미를 잃는다. '한국에는 방문할만한 관광지가 없다.'라는 말이 나올 때 함께 나오는 1번 이유, '어딜 가도 똑같은 도시고 볼거리가 없다.' 사실 나는 이 말이 한국을 싫어할 억지스러운 이유라고 생각한다. 갈만한 도시는 많고 볼만한 장소는 넘친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 과거 볼거리라고 불렸던 것들은 많이 사라졌고 지금은 그게 다 억지스러운 신도시들의 산물이 되었으니.


 나는 건축사가 아니기에 이에 대해 정치적으로 어떻고, 사회 시선적으로 어떻고, 내부자들의 입장에서 어떻고, 왈가왈부 떠들 수 있는 수준이 되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어찌 보자면 지금의 입장에서는 최선인데 내가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거기에 우리는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 이제 겨우 70년의 시간 밖에는 보내지 못했다는 목소리도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지방 도시의 미래는 결국 자로 잰듯한 기획도시가 아닌 도시의 원래 형상을 살린 특색을 내세우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이제는 빠르지 않은 기차도 고민하고, 장소와 장소 사이를 이을 방안도 생각해 보고, 다양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입에서 한국은 볼거리가 없다는 말이 들어가는 말이 먼저 올까. 아니면 《비슷한 골목》처럼 도시를 상공에서 찍고 꼴라주로 자르고 붙여 똑같은 도시를 만드는 작품이 먼저 나올까. 앞으로도 나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뿐이다.




 사실 《비슷한 골목》이라는 작품에 대해 굉장히 많이 이야기했지만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은 《버섯의 건축》이라는 작품이었다. 땅에 붙는 로우 앵글로 숲을 따라 움직이며 숲에 나있는 버섯들을 영상으로 촬영하고 각자 건축에 대한 시선과 철학을 담은 작품은 때로는 버섯과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버섯의 형상, 군집을 이룬 모습과 함께 흘러나오는 건축가들의 내레이션으로 완성된다. 관람객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는 느낌을 받다 어느 순간부터 버섯을 건축물로 보고 내레이션의 설명을 버섯에 오버랩시키게 되는데 마침 버섯의 갓이 또 건축물의 지붕처럼 아늑함을 주기에 그 감정은 배가 된다. 이런 몽타주 기법의 활용은 어찌보면 모두가 떠올렸지만 흘려보낸 생각을 잘 활용한 예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평에서는 기획도시의 이야기를 많이 떠들었지만 재난 피해자들의 고립과 상처, 그리고 치유도 정말 중요한 주제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이후에 이뤄진 대담이다보니 필연적으로 이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고 일본의 역사를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다이쇼 시대의 관동 대지진으로 있었던 대화재, 그리고 피해가 발생해 도시가 초토화 되었음에도 가장 먼저 복구된 철도를 떠올리게 된다. 철도는 재난 상황에서도 가장 빠르게 복구되는 이동수단이다. 도로가 부숴지면 고립되는 버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복구되고 이를 기점으로 재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삶은 급격히 나아진다. 그래서 구마 겐고도 똑같은 걱정을 한다. 버스 생활권에 사는 이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그들은 완전히 고립되고 도움을 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철도는 문화 관광의 가치를 가지기도 하지만 일본에서 철도는 그보다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안고 있는 이동수단이다. 그래서 일부 노선은 돈이 되지 않음에도 유지하고 보수한다고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다. 이제는 정말 유지하기 힘들어 시골을 다니는 단칸 열차도 폐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문화적 가치관을 떠올리며 읽는다면 이 책은 더욱 재미있는 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적지 않은 인명이 나오기에 처음 읽을 때는 조금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13년도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와 지금 상황을 떠올리면서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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