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장에서
저녁 시간, 검도장에 가면 늘 학생들이 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밤이 되어 운동하러 오는 친구들, 그들도 일을 마치고 운동을 하러 오는 성인들처럼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다 한 장소에 모인다. 그들이 뻗는 검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고 때로는 내가 꿈꾸던 검처럼 올바른 자세로 뻗어나간다. 나와 몇 년의 검력 차이가 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걸고 떠드는 것을 좋아하는 아저씨로서 검도장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진 이후로 학생들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스스로 놀랐던 사실은 이토록 아름다운 검을 뻗는 학생들도 일상에 돌아가면 평범하게 다양한 고민을 품으며 산다는 점이었다. 나는 고민이 있을 때 마음이 흐트러져 운동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했는데 말이지.
공부, 시험, 방학, 다양한 고민들이 내면에 존재하지만 그들의 고민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갈 때 더욱 커진다. 새로운 고등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새로운 장소에서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남고에 진학하게 되었으니 여자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와 같은 고민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내가 예전에 품었던 고민들, 생각들이 떠오르고 나는 어떻게 이 고민들을 해결했던가, 답을 찾아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주섬주섬 꺼내주게 된다.
나는 나 스스로가 완벽한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또한 고등학교를 기숙학교로 진학하면서 외로움을 많이 탔고 먼 타지에서 십수 년의 생활을 해왔기에 친구들과 떨어져 사는 방법, 혼자서 사는 방법을 익혔다. 새로운 장소에서 쉽게 적응하는 법을 익혔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손을 뻗고 기대는 방법을 익혔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을 익혀야 할 만큼 내게는 힘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조언을 조심히 건네는 것이다. 나도 누군가가 이런 조언을 건네줬으면,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았으니까.
책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독서교실의 선생님인 저자가 바라보는 아이들, 학생들에 대한 시선이 담겨있다. 그는 아이들을 단순한 교육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객체로 인정하고 그들의 삶을 풀어내며 자신은 과연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던가, 그들에게 어떤 어른으로 보이고 싶은가를 정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어떤 어른으로 보이고 싶은가, 이 고민은 굉장히 중요한 고민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면모를 어렴풋하게 살피면서 그들의 시선으로 해체하고 평가한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배울 수 있겠다, 이런 부분은 반면교사 삼아야겠다, 답을 내리고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으며 생활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조심스러우면서도 대담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내가 어떤 어른으로 보이고 싶었던가, 스스로 고민해 보고 행동해 볼 필요가 있다. 당장 나도 이 책을 읽기 전 검도장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어떤 어른이고 싶었던가,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모임에서 속히 광대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많은 이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언제나 대화의 포문을 열고 새로운 주제를 꺼내는 사람이다. 다들 웃을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주제를 짚어가고 필요에 따라서는 망가지는 역할도 자처하는 사람이다. 여자사람친구 선정 안전한 남자 1위에 뽑히기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이런 역할을 자처하며 쉽게 망가질 수 없다. 때로는 어른스러운 면모도 보여야 한다. 바보처럼 행동해서만은 안된다.
예전에 시시하고 껄렁한 어른들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주워 담지 못할 말들을 툭 내뱉고 남들이 보기에 불편한 행동들을 하고는 했었다. 나는 그런 이들이 싫었고 커서는 그들처럼 되지 말아야지 스스로 답을 내리고는 했었다. 과거 학생이던 당시 나는 그들을 평가하는 자리에 있었고, 이제 나는 그들에게 평가받는 자리에 섰다. 나는 그들이 내 절반의 인생을 살았어도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내릴 수 있는 한 객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을 존중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간 해온 노력의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아름답게 뻗어 내리는 검이 그 증거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나도 그들에게 내가 걸어온 길을 조심히 설명해 줄 의무가 있다. 그들이 올곧게 뻗는 검처럼 올곧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내딛는 한 걸음에 내가 작은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다음 주가 되면 학생들은 긴 방학을 뒤로한 채 새 학기를 맞이한다. 이제 그들은 중학교를 벗어나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더 치열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수업을 쫓아갈 수 있다는 우리 때와는 달리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내신 점수조차 받기 힘겨운 시대를 보내고 있기에 검도장에 올 수도 없을 것이고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시간도 이제 끝났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어른으로 보였을까.
3월 1일, 관장님은 이제 긴 여정을 떠나는 학생들과 나를 집에 초대해 주셨다. 어째서 내가 이 자리에 꼈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은 함께한 나를 반겨줬고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 남학생은 이제 강원도에 있는 소방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다른 학생은 이 근방에 있는 인문계 남고에, 예전에 내게 짧은 가르침을 줬던 남학생은 검도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해 선수를 준비하고, 우리 도장 유일한 여학생은 인문계에 진학해 스튜어디스가 되려고 준비한다고 한다. 그들은 내게 방학마다 올 테니 열심히 수련해서 자신들만큼 강해지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3년 후에 어른이 되면 도장에서 꼭 대련하자고, 약속을 나눴다.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 조언을 전해줬다. 지금 함께 하는 친구들하고 연락 잘하고 지내라고. 내가 17년 지기 친구들과 아직도 함께 연락을 나누는 것처럼 중학교 시절 친구들도 정말 소중한 친구들이라고.
그날 밤, 나는 남학생들과 함께 밤길을 걸었고 그들이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모두 본 후에야 집으로 향했다. 나는 분명 친구들끼리 전화번호를 나누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들은 갑자기 내 전화번호를 물어봤고 어쩌다 보니 고등학생 3명과 함께 새로운 단톡방을 만들었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까. 그들이 돌아올 3년 후에도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
최근 학원을 다니고 있다 보니 글을 잘 쓰지 못하고 있다. 2월 독서 리뷰를 적기 위해 읽은 책 수를 봤더니 무려 16권이다. 물론 대다수가 소설이고 가벼운 축에 속하는 판타지와 같은 소설들이지만 이제는 억지로 인문 도서만 읽기보다는 소설을 읽고 싶은 날이면 가볍게 버스에서 오다니면서 소설을 읽기로 결심했다.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독서 리뷰를 작성할 것이다. 그리고 독서모임도 하는 대로 후기를 작성해서 다시금 블로그에 글을 채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