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도서
1. 살인자의 기억법_김영하(5/18~5/19)
2. 건축, 300년 - 영감은 어디서 싹트고 도시에 어떻게 스며들었나_이상현(5/20~5/25)
3. 북디자인 101_알베르트 카퍼(5/20)
4.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3_나가츠키 탓페이(5/24)
읽고 있는 도서
1. 서양미술사_에른스트 곰브리치(4/13~)
읽을 예정이 있는 도서
1. 인상파, 모네에서 미국으로: 빛, 바다를 건너다_한국경제신문
2.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_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3.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_조지 손더스
4.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4_나가츠키 탓페이
5. 달리는 말_미시마 유키오
이번 주에는 『건축, 300년』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사실 학원을 다니면서 등하원 길에 짬내서 읽다보니 어쩔 수가 없다. 짬내서 읽을 간단한 이야기도 아닐 뿐더러 아침에 피곤해서 읽다가 눈 감고 쉬는 시간도 꽤 있었다보니... 그래도 주말 자격증 시험이 있었음에도 열심히 읽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본 나 자신, 칭찬해주고 싶다. 그 외에 읽은 책들은 『살인자의 기억법』과 디자인 학원에서 도움이 될까 싶어 읽은 『북디자인 101』, 그리고 지난 주말에 읽겠다고 이야기했던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3』(이하 리제로)이다.
일단 가장 먼저 읽은 『살인자의 기억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역시 마지막 20p를 위해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빌드업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것이라 생각한다. 주인공은 악에 대한 고찰과 스스로에 대한 평가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거기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살인에 대한 표현과 살인을 끊은 이후의 삶을 계속해서 혼재시켜 보여주면서 화자가 얼마나 두터운 사회를 보는 눈을 가졌는지, 스스로의 세계관을 구축하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고 독자에게끔 이에 대한 믿음을 심어준다.
하지만 이 모든 세계가 사실은 허상이었다면. 작가는 중간중간 세계관이 흐트러질만한 왜곡된 정보를 하나씩 집어넣으면서 독자로 하여금 '어? 지난번의 서술과 이야기가 다르지 않나?'하고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그렇게 이야기가 절정에 오를 때쯤, 사실 우리가 보고 있던 세계는 허상이고 화자가 자신의 생각으로 정리하고 있던 것들도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무언가임을 보여주며 끝내는 것이다
말로만 풀어내면 간단한 이야기다. 치매라는 점을 뺀다면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설정이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1인칭 화자가 존재하고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거짓된 세계를 보다가 그 세계가 붕괴되고 사실 우리가 봐온 것이 진실이 아님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스토리를 지금껏 많이 봐왔다. 보통은 가상 현실이라는 주제를 통해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특별한 포인트는 다름 아닌 가장 현실적인 소재를 이용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세계관을 붕괴시켰다는 점이다. 우리가 봐온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배경 삼았다면 이 세계를 붕괴시키는 방법도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어야 한다. 그게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작가는 정신병을 채택한 것이다.
만약 이런 반전이 없었다면 이 책은 지루한 복수극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라면 악에 대한 고찰을 남기는 현학적이고 지루한 긴 글 정도가 될까. 하지만 반전이 있었기에 『살인자의 기억법』은 쉽게 읽히는 글로 시작해 강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 되었다. 나는 김영하의 소설을 그렇게 즐겨 읽지 않는 편이다. 솔직히 『살인자의 기억법』을 제외하면 기억에 남는 소설도 얼마 없다. 그렇지만 이 소설만큼은 오랜 시간 기억해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북디자인 101』은 내지 조판과 디자인적 시선에 대한 기틀적인 이야기다. 어렵지 않은 이야기들이 깔려있지만 전공자나 이쪽 업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읽어도 재미 없을 이야기니 그냥 그러려니,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읽었구나 정도로만 넘기면 되리라 생각한다.
『건축, 300년』은 1750년부터 현재까지의 건축 서사를 다루는 책이다. 건축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면 으레 그렇듯 고대의 건축 양식부터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르코코, 그리고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정도까지 다루는 책들이 대다수였다. 장식의 형태, 절제미, 과거의 건축가들은 미에 대해 어떻게 접근했고 어떻게 표현했는가, 이런 건축들이 어떻게 당시의 귀족과 왕족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가득했고 '지금'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은 독자들과 가장 최근 유명했던 건축가에 대해 이야기하면 '르 코르뷔지에'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나오는 것이다. 마치 현대는 없는 것처럼.
사실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건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위에서 말한 20세기의 건축가들 이름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왜냐하면 우리 삶에서 건축이란 아파트를 올리는 것이고, 우리가 지금껏 봐온 건물도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네모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시대는 끝났다. 끝난지 얼마 된 수준이 아니라 벌써 100년 가까운 시기가 흘렀다. 그렇다면 이후의 시대에 대해서도 존재할텐데, 왜 이에 대해서는 말이 없을까. 그런 간지러움을 가졌던 독자라면 이 책은 그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혹시 3D캐드와 같은 작도 프로그램을 써본 적이 있는가? 새로운 세계는 컴퓨터의 탄생 전과 후로 나눠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격변했고 건축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컴퓨터가 발전한 이후 건축가들은 더이상 공학적 계산을 중심으로 과연 이게 될까? 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네모에서 벗어나 도형을 비틀거나, 찌그러뜨리거나, 때로는 겹쳐 쌓는 형식으로 새로운 건축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네모 도막을 2도, 3도 비틀어 쌓는 게 뭐가 대단한데?'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혁명에 가깝다. 당신이 살고 생활해야 하는 건물이라면 튼튼하고 무너지지 않아야 하는데 2도, 3도 틀었을 때 무너질 확률이 생긴다면 당신이 들어가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모두가 하지 못했던 시도를 컴퓨터, 그리고 발전한 재료공학이 같이 증명해준 것이다. 그정도 틀어도 건물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가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해체주의에 대해 쉽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인물임과 동시에 강변북로를 차로 달리며 건물을 구경하는, 청담동을 거니는, 국내의 다양한 건축물을 구경하고 다니는 평범한 시민이다. 그래서 '이런 건축물은 해외에만 존재하고 국내에는 아파트밖에 없나?'와 같은 독자의 생각에 대한 답변도 함께 내준다. 국내에도 이런 건축물들이 존재한다고. 당신이 관심을 가진다면 분명 새로운 낯섬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래서 현대의 건축 서사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어렵지 않은 내용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좋다. 하지만 읽은 후에는 분명 새로운 건축물을 향한 시선이 띄이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은 리제로 3권이다. 사실상 2부 상하권의 하권에 해당하는 책이다. 주인공의 서사를 돈독히 하고 어떻게 죽음을 반복하면서도 일어서는 주인공이 되었는가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 시작점,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삶이 계속되고 계속 고통을 받을 거라는 미래가 얼핏 보이는 3권이었다고 생각한다. 책의 서사 자체는 재미있다. 문제가 있다면 번역이 정말 불편하다 싶을 정도로 별로라는 점. 문장이 국내에서 정식 번역자를 통해 번역한 문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 문장에 쓸모없는 한자어와 주술이 맞지 않는 단어가 몰려있는 경우가 있었고, 나도 읽는 도중 이해가 가지 않아 뒤로 넘기거나 대충 훑고 넘어간 부분이 있을 정도였다. 소설이 전체적으로 모두 그렇다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따라가야하나 걱정이 된다. 그래도 재미는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읽을 예정이다.
읽을 예정이 있는 도서는 도서관에서 빌린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와 『달리는 말』, 그리고 주말에 반신욕하며 읽을 리제로 4권이 일단 예정된 도서들이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분량 자체가 400페이지로 짧지 않은 책이니 열심히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달리는 말』은 예전에 샀던 책이었는데 아직까지 읽지 않고 포장도 뜯지 않은 완전 새 책이다. 지금 미시마 유키오의 풍요의 바다 4부작이 국내에 모두 정발되었던데 민음사에서 일부 독서 커뮤니티에서 컬트적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빠르게 정발낸 것은 생각보다 판매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나, 생각하게 된다.
사실 미시마 유키오는 독서 커뮤니티에서 컬트적 인기를 끌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굉장히 박한 평가를 받던 작가였다. 첫 째는 감성적인 서사를 깔았을 뿐 내용은 없는 소설이라는 평가 때문이었고, 둘 째는 작품 외적으로 작가가 극우 행보를 걸음과 동시에 할복 자살로 생을 마무리했다는 기상천외한 내력을 가지고 있기 떄문이었다. 그래서 과거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에 대한 리뷰, 혹은 책 평점을 읽어보면 늘 극우 작가에 대한 불신과 분노 가득한 목소리가 존재하고는 했다.(이런 민족주의적 특성은 2010년도 초반까지도 존재했었는데 이후 독자 세대는 일본의 문화를 많이 접하면서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 더 나아가 일본의 문화를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니 세상이 달라짐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봄눈』이 나오던 때에만 해도 솔직히 한 권으로 번역이 끊기겠구나 생각했는데 『달리는 말』을 시작으로 나머지 책을 급히 번역해서 내준 걸 보고 생각보다 판매고가 나왔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금각사』를 번역했던 웅진지식하우스는 속이 쓰리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고. 미시마 유키오가 컬트적 인기를 끌면서 위 도서의 인기도 높아졌겠지만 그 인기가 빨리 시작되었다면 출판사에서 기획한 일문학선집 시리즈가 일찍 문닫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 풍요의 바다 4부작도 모두 가져와서 번역하고 이에 대한 성공으로 시리즈의 덩치를 키웠을지도 모른다. 이래서 유행과 성공, 컨텐츠는 타이밍이다. 흐름에 탑승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임을 다시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