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의 비극』외 8권
이번 달에는 9권, 소설도 있었지만 『국화와 칼』로 시작해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까지 인문교양서를 읽느라 바쁜 한 달이었다. 특히나 인문교양서들이 아침 버스에서 읽기 적합하지 않은 책들이라는 문제도 있었는데, 조금 피곤한 상태에서 집중해서 읽으려고 하니 버스에서 내리면 눈이 핑핑 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소설이라면 가볍게 넘기면서 읽었을 텐데 가볍게 넘기지도 못하겠고.
더군다나 이번 달은 책을 읽을 시간 자체가 많지 않았다. 5월 말에 자격증 시험이 뭉쳐있어서 자꾸 그쪽으로 신경이 쏠리다 보니 학원에 남아 연습하는 날도 많았고 전날에 했던 연습의 여파로 아침 버스에서 자는 날도 적지 않았다. 뭐, 그런 와중에도 9권 읽었으니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의 코멘트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이번 달에 읽은 책에 대해서도 리뷰를 남겨보려고 한다.
1. I의 비극 - 내친구의서재
요네자와 호노부의 신작! 은 아니고 일본에서 출간된 지 조금 시간이 흘렀는데 한국에서 번역해 가져온 작품이다. 다양한 출판사에서 작품을 번역해 오는 경향을 보면 현재 어떤 작가가 시장에서 나름 판매고를 올리는지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소시민 시리즈」를 국내에 처음 발매했던 당시에만 해도 흥행을 이끌지 못했던 그저 그런 작가였지만 애니메이션이 흥행하면서, 『빙과』 소설이 흥행하면서, 「소시민 시리즈」가 흥행하면서,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연령대가 주력 소비층으로 변모하면서 점점 한국에서 티켓 파워가 있는 작가로 변모했고 이에 따라 시장이 기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흑뢰성』과 같은 작품은 국내에 나오면 십중 팔구는 판매고를 올리지 못하는 작품이다. 일본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밑바탕에 깔리는 지식이 필요하고, 국내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배경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다. 만약 다른 작가의 작품이었다면 그냥저냥한 수준에서 그치거나 아니면 독자들의 외면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이었기에 적지 않은 독자들이 그 책을 택했고, 괜찮았다는 평가를 많이 남겨줬다. 요네자와 호노부가 소설 수준에 비해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나오키상, 란포상을 받은 작품들도 악성 재고가 되는 한국에서 이런 스타일의 작품이 흥행했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며 이 모든 것의 기반에는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네임벨류가 있다는 의미다.
이 소설도 비슷하다. 작품 자체가 나쁘지는 않지만 작가 특유의 색채가 묻어있고 좋게 표현하면 마지막 반전을 위한 빌드업, 나쁘게 표현하면 마지막을 이런 억척스러운 전개로 끝맺을 필요가 있었냐는 혹독한 서평도 이해가 가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나 또한 장편소설에서 추리, 미스터리 장르답게 누군가 탐정의 역할을 맡고 화자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는데 과연 누가 탐정의 역할을 맡으며 이야기를 마무리지을까, 의구심만 품다가 끝났다는 감상을 받았고 마지막은 다소 억지스럽지 않았나 싶었다. 재미는 있었지만 이게 사회 현상을 통렬히 관통하는 미스터리였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지는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수작, 명작이라 불릴만한 작품도 아니었고. 굳이 따지자면 평작에 가까웠을까.
결국 말에 비해 소설 이야기는 길지 않았지만 마무리를 해보자면 이 소설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판매고도 올렸다. 이건 10년도부터 꾸준히 빌드업된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작가의 티켓 파워에서 나온 반응이다. 작가의 네임벨류를 신경 쓰지 말고 좋은 작품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장 나조차도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먼저 읽고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이어서 이 책을 읽은 거지, 만약 다른 작가의 작품이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I의 비극』, 『흑뢰성』, 『빙과』, 「소시민 시리즈」, 『책과 열쇠의 계절』까지 그의 많은 책을 읽었고 앞으로도 그의 책을 읽을 독자지만 많은 작품을 접하고 있는 만큼 점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부러진 용골』은 많이 다를까. 내 취향에는 『흑뢰성』과 같은 작품이 조금 더 입에 맞는데 이런 작품을 더 써갈까.
2.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부 1 - D&C북스
이 책에 대한 후기는 서평으로 갈음하겠다. 애초에 서평에서 작품 트렌드, 시대적 배경, 흐름에 대한 분석을 모두 마친 와중에 이 책에 대해 더 쓸 말이 있을까.
별개로 나는 10년마다 한 번씩 예전에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고는 하는데 아마 다음 10년, 내가 40대가 되었을 때에는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될 거 같다. 이제는 그냥 마음속에서 이런 작품이 있었지, 그때는 참 괜찮았지 정도로 남기면 좋겠다는 인상의 작품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3. 국화와 칼 - 현대지성
서평으로 남기면 좋겠다고 떠들었지만 결국 서평을 쓰지 않은 『국화와 칼』이다. 서평으로 남기겠다! 라는 말은 꺼내기는 했지만 다가온 주말에도, 다음 주말에도 자격증 시험이 연달아 있었다 보니 시험을 친 후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고 시험 기간에는 검도도 쉬면서 컨디션 조절을 했다 보니 몸이 근질거려 밖으로 나돌아 다니거나 헬스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나 의외로 갓생을 살고 있나?
이번 도서는 을유문화사의 판본이 아닌 현대지성의 판본이다. 현대지성은 최근 클래식 도서를 중심으로 새롭게 번역해서 출간하는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를 공식적으로 밀고 있다. 사실 이런 클래식 시리즈 번역은 어느 정도 규모가, 그리고 네임벨류가 있는 출판사가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표현하자면 '나는 씨를 뿌릴 거야. 밭에 신나게 씨를 뿌릴 거야. 그러다 보면 언젠가 농작물이 자라겠지?'와 같은 심정이라는 의미다.
고전 명작 도서는 언제나 수요가 있다. 문제가 있다면 독자 또한 고전 도서를 선택할 때 다양한 판본이 있기에 각자 나름의 기준에서 판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게 표지, 장정의 아름다움이나 꽂아놨을 때의 만족감일 수도 있지만(실제로 그런 이유로 양장본을 선택하는 출판사도 적지 않다.), 보통 이를 실 소비하려는 독자 기준에서는
1. 네임벨류가 있는 출판사인가
2. 네임벨류가 있는 역자인가
3. 과거 번역과 관련된 이슈가 없었는가
4. 출판사가 최신 트렌드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편인가
이런 기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는 한다. 당장 내가 셜록홈즈 시리즈를 읽으려고 할 때 알라딘에 들어가 셜록홈즈를 검색해 본 다음 다양하게 나오는 판본을 보고 '장정이 예쁜데?'라는 생각에 사기보다는 네이버를 켜서 셜록홈즈 번역본 추천, 이런 검색을 해보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국화와 칼』은 을유문화사의 도서를 으뜸으로 쳐주고는 했다. 다른 판본이 많이 나오고는 했지만 그 어떤 판본도 몇 차례의 개정을 거친 을유문화사를 이기지 못했고, 판매를 이어가기보다는 끝내 절판시키면서 창고를 비우는 방향으로 갔다는 뜻이다. 이는 을유문화사라는 출판사의 명성과 『국화와 칼』을 떠올렸을 때 을유문화사의 판본을 떠올리면서 다른 판본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시장에서 굳게 지켜온 포지션이 기인한다. 과연 여기에 새로운 도전장을 던진 현대지성은 그들의 파이를 뺏어먹을 수 있을까?
또 시장 트렌드 분석에 대한 이야기가 줄줄 이어졌는데 책에 대해 짧게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번역 상태는 훌륭했다. 읽는데 부담감이 없는 작품이었고, 지금까지 번역 이슈에 시달렸던 을유문화사를 제외한 다른 판본들에 비하면 훌륭한 선택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 책 디자인이 너무 안예쁘다는 점. 물론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가 녹색 바탕으로 통일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번 책은 유독 안어울리고 유독 안예쁘지 않은가... 클래식보다는 올드에 가깝지 않나... 굳이 저기에 일본화를 삽화로 대문짝만하게 넣을 필요가 있었나... 저게 과연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내 심미안 기준에서는 못생겨서 집고 싶지 않은 책이었다.
4.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2, 3 - 노블엔진
밖에서는 이런 거 읽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 못하지만 여기에만큼은 독서기록으로 남기는 라이트노벨, 리제로 2권과 3권이다. 의외로 재미있다니까? 다들 라이트노벨은 좀 천박하고, 왜색이 짙고,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이정도면 읽어줄만 하다니까? 물론 앞에 있는 혹독한 평가들은 모두 일부, 혹은 전부 진실이다. 그런 작품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저 평가는 한국의 웹소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즉 라이트하게 소비되는 현대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저런 성향을 띤다는 의미다. 그래야 다른 자극적인 영상, 숏츠, 다양한 것들과 싸울 수 있으니까. 사실 그런 것들과 싸워서 이길 생각을 한다는 포인트에서 이미 지고 들어가는 거지만, 이런 이야기는 길게 떠들어봤자 지루하게만 늘어지니 줄이겠다.
그리고 2권과 3권의 내용은 주간 독서노트의 이야기로 대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주간 독서노트에서 생각보다 길게 평을 써놨으니 심심하면 가서 읽어주시기를. 아마 이 글을 다 쓴 후에는 4권을 읽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원래 토요일은 리제로 읽는 날인데 시험 끝나고, 친구들 만나고, 집에 오자마자 F1 시청하니까 하루가 끝나서 못 읽었다. 다음 날은 헬스장 가고 집에 와서 글 정리하기 시작하고, F1 시청하고... 그래서 쬐끔 뒤로 미뤘지만 4권 열심히 읽어야지!
5. 살인자의 기억법 - 문학동네
마지막 20p를 위해 앞의 페이지를 차분히 쌓아올린 김영하 작가의 수작, 나는 이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대한 평가는 지난 독서노트에서 많이 다뤘다. 한 인물을 화자로 세워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단단한 인물인지, 혹은 타인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에고를 가졌는지 풀어내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다 마지막에 우리가 봐왔던 세계관이 사실 거짓된 것이며 이에 대한 복선이 은연중에 깔려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독자가 느끼는 충격, 이게 작품의 본질이다.
설명은 간단하지만 실제로 이를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나 판타지적인 요소 없이 이 모든 것들을 최대한 현실에 기반해서 표현해야 하기에 그 어려움은 더하다. 이게 게임 세계, 혹은 다른 마법적 요소가 가미된 초현실적인 배경이었다면 억지스럽든 억지스럽지 않든(물론 적지 않은 수의 작품이 이런 경우 억지스럽다는 비판에 직면한다.)이런 설정을 표현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요소를 전부 제거한 다음 표현한 작품이었기에 더욱 훌륭한 평가를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실제로 나도 처음 읽었던 당시에도, 그리고 이번에 다시 읽은 후에도 역시 좋은 작품이었다고 느끼고 있고. 다만 그거랑은 별개로 그래서 그의 작품을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여전히 미지수기는 하다. 그의 모든 작품을 읽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나는 『살인자의 기억법』보다 좋은 작품을 찾지 못했고, 이제는 그의 더 좋은 작품보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져서 아마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은 이상 그의 새 작품을 접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6. 북디자인 101 - 정제소
책의 내지 조판과 레이아웃 구성, 그리고 디자인적 간단한 심미안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베이스와 같은 책이다. 내용은 크게 어렵지 않지만 반대로 당장 실무에 투입할 수 있을 만큼 디테일한 요소도 없는 편이고 애초에 필드에서 뛰고 있는 디자이너라면 이정도 감각이나 심미안은 어느정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없었다면 그건 그거대로 큰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까 필드에서 뛰는 디자이너보다도 정말 개념이 생소한 초보자들을 위한 책이란 의미다.
책의 장정은 페브릭 소재로 진짜 커피 쏟으면 눈물나겠다 싶을 정도로 예쁘다. 거기에 표지 자체도 굉장히 정갈해서 만약 이런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면 내용만큼 표지와 장정을 유심히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표지를 유심히 보면서 자를 가져다 대고 상부 x mm, 하부 x mm를 보고는 했다. 물론 크게 의미가 없는 짓이지만.
7. 건축, 300년 - 효형출판
괜찮은 책이었다. 애초에 저자인 이상현 교수는 과거부터 건축과 관련된 도서를 많이 출간한 저자였기에 어느정도 문장력도 보장이 되어 있고, 저자가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다보니 한국 사람의 이해할 수 있는 묘사와 예시들이 다량 깔려 있어서 건축에 대해 겉으로만 핥고 끝나는 수준이 아닌 실제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수준까지 다가온다는 점에서 더욱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책에 대해서는 지난 독서노트에서 많이 다뤘기에 이야기를 더하지 않겠지만 읽은 후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요즘 한강 다리를 건너면서 IFC 서울 건물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새롭게 이야기를 들어서 관심이 생겼다고 해야하나, 무료하게 지나는 아침 버스에서 가끔 멀리 보이는 건물에 눈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사실 특별한 건축물은 해외에만 있는 게 아니다. 국내에도 훌륭한 건축가들이 많이 있고 국내에도 훌륭한 건축물이 많이 있다. 단지 우리가 이를 명명하기 전 모두 '네모난 빌딩'으로 통일시키고 있을 뿐이다.
'너희가 건축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그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솔직히 나도 잘 알지 못한다. 단지 우리나라에는 똑같은 건축물만 있고 지루하다는 평가를 남기고 끝내기 보다는 그 이전에 국내에 재미있는 건축물은 없는가, 현대에 걸맞는 건축물은 없는가도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의미다. 나는 부천시청역 근처를 자주 다니고는 하는데 그 근방에 갈때마다 건물들에 눈을 뺏기고는 한다. 시청부터 이마트, 옆에 있는 현대백화점과 유플렉스, 맞은 편에 있는 경기예고와 경기예고 아트센터까지. 도심 속에는 천편일률적인 건물들만 존재한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를 유의깊게 둘러보면 익숙하지 않은 건물들이 중간중간 끼어있다. 단지 이들이 주위와 같이 동화되었을 뿐이다. 가끔씩은 이런 위화감을 찾기 위해 목적지로만 향하는 고개를 돌려봐도 좋지 않을까?
8.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어크로스
별다른 의미 없이 재밌어보여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인데 시기를 잘못타서 위화감이 심한 책이 되어버린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라는 도서다. 아, 이거에 대해 잘못 서평하면 굉장히 정치적인 이야기가 될 거 같은데... 일단 그런 걱정들을 다 걷어내고 시원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미국의 정치 역사와 현실, 그리고 한국에는 없는 선거인단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점과 퇴보하는 민주주의 속에서 어떻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담론을 던지는 책이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국내와 관련이 크게 없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그건 또 아니다. 애초에 국내 정치의 역사는 미국 정치의 역사를 따라가고는 했다. 아니, 정치를 제외하고도 많은 요소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가 깔아놓은 전철을 함께 따라가고는 했다. 즉, 선거인단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책 후반부의 핵심 요소임에도 전반부가 너무 국내 정치와 맞닿아 있다는 이야기다.
노골적인 차별, 유도하는 폭력 시위,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행위, 대법원 시스템,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최근 3달간 헤드라인에 올라온 뉴스를 모두 읽은 느낌을 받는 독자도 있으리라. 실제로 나도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는 비단 진보, 보수, 한 성향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각자 정치적 포지션을 굳건히 하기 위해 가져오는 전략이 있고 이 전략은 과거부터 내려오는 전통있는 전략들이며(괜히 정치학이라는 학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현대의 정치는 이를 효율적으로, 그리고 야만의 시대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2025년 현재, 우리의 정치는 100년 전 미국보다 더욱 노골적인 정치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 지지층 결집을 위해 가상의 적을 만들어 공격하는 것을 서슴치 않고 있고, 때로는 자신의 극성 지지층을 위해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리면서까지 단결을 도모하고는 한다. 안정적인 정권 창출을 위해 위법과 합법의 중간, 회색지대를 밟으려는 행동도 다수 보이고 정책보다는 네거티브, 흑색선전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이번 대선의 정치토론회, 얼마나 추했는가. 정말 정치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이기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이런 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대체 정치가 뭐라고 생각할까.
책은 미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미국의 이야기로 마무리하자면 트럼프의 등장 이후로 미국의 민주주의 판도는 크게 바뀌었고,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에는 포장된 위선보다 불편한 직설이 통하는 시대가 왔다는 식으로 떠드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에 대해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선거인단 시스템과 정치, 사회적 분열, 그리고 정권을 위한 위선적인 민주주의자들이 2기 트럼프 행정부를 만들었고 이들은 미국의 민주주의, 더 나아가 세계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포장된 위선이 역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포장된 위선을 현대 사회에서는 사회적 합의와 매너라고 부른다. 2기 트럼프 행정부 반 년만에 벌써 수많은 사회의 흐름이 바뀌었다. 앞으로 남은 3년하고도 반, 세계는 얼마나 급변할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걱정이 앞선다.
이걸로 5월 리뷰도 끝났다. 이제는 누워서 소설이나 좀 읽어야지. 마지막 도서에 대한 리뷰는 다들 어떻게 읽을까. 아마 읽는 사람마다 이 놈 진보네, 이 놈 보수네, 생각하지 않을까. 앞으로 7시간 후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는데 이번에는 과연 누가 될까.
누가 되든 전직 군인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면 계엄으로 이미 떨어질 평판도 없었지만 아예 땅에 떨어져버린 군의 아픈 마음을 잘 추스려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게 소소한 바람이다. 정치적 스탠스를 떠나 지난 계엄에 내가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나는 군을 떠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군은 내게 애증의 관계와 같은 곳이니까, 자리를 지켜주는 후배들이라도 행복한 삶을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