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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용의자 X의 헌신 - 재인

우리는 '왜?'보다 '어떻게?'가 제일 궁금해

by 카레맛곰돌이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미 현대 추리소설의 대가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일본은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 추리소설 하면 누구든 가볍게 떠올릴 법한 작가, 그게 아마 히가시노 게이고를 설명하기 가장 적당한 수식어가 아닐까 싶다.


그는 다작을 하기로 유명한 작가다. 거의 책 공장장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속도로 다양한 작품을 찍어내고, 어떤 해에는 이걸 어떻게 혼자서 전부 썼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내기도 한다. 물론 그런 만큼 일부 시리즈는 읽는 독자마다 평이 갈리기도 하고, 좋은 시리즈 안에서도 작품의 평이 여럿 갈리기도 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하지만 그런 평가들 사이에서도 「가가형사」시리즈나 「탐정 갈릴레오」시리즈는 꾸준한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좋은 작품을 내주고 있다.


당장 그의 대표작 세 작품을 떠올려보자. 그 많은 작품 중에서 세 작품만 꼽으라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아마 적지 않은 이들이 「가가형사」시리즈의 『악의』, 추리소설이 아니어도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그리고 오늘 다뤄지는 작품, 「탐정 갈릴레오」시리즈의 『용의자 X의 헌신』을 꼽을 것이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추리소설계를 뒤흔든 작품이다. 특히나 일본의 추리소설 팬들은 본격 추리소설*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으로 자주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는 하는데 이 추리소설 팬들의 호수와 같은 마음에 돌멩이를 던져 파문을 일으킨 작품이 『용의자 X의 헌신』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 작가로서 형편없다, 아니다의 이야기로까지 발전되고, 더 나아가 그는 독자들에게 어필만 잘하는 형편없는 작가라는 혹평을 내리는 평론가도 있었다고 하니 추리소설 또한 여타 다른 장르처럼 치열하게 선을 그으며 발전하는 장르임을 느낄 수 있다.


*본격 추리소설이란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 장르로 기존의 추리소설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는 틀을 기반으로 한 추리소설을 의미한다. 주로 탐정과 범인의 대결이라는 구도 아래에 주인공은 탐정에 이입하고 작가는 범인의 위치에 서 주어지는 정보를 취합하며 끝내 작가가 준비한 트릭을 풀어내는 게 미학인 장르로 '『용의자 X의 헌신』이 본격이냐 본격이 아니냐'라는 이야기로 불이 붙었던 이유는 독자가 추리에 개입할만한 요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시작이었다.


그렇다고 이 서평의 목적이 『용의자 X의 헌신』은 본격인가 아닌가, 이 주제에 대해 떠들려고 하는 건 아닌지 착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별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렇게까지 추리소설을 깊게 읽지도 않았고, 애당초 나는 그런 논쟁에 별로 관심이 없다. 과거부터 판타지 추리가 좋고, 두뇌싸움의 요소인 추리소설에 판타지적인 요소가 개입하면서 현실감을 무너뜨리고 이와 동시에 오컬트에 깊은 조예가 있는 탐정역이 독자는 쫓아가지 못하는 위치에서 얼마나 설득력있게 이야기를 풀어내는지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이야기에 끼어들 수 있겠는가. 오늘의 이야기는 '왜?'보다 '어떻게?'에 집중하는 작품이라는 특이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추리소설은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탐정역의 주인공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사건의 발생이 알려지고 주인공은 탐정의 신분으로, 혹은 추리자문의 신분으로 해당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이 사건은 굉장히 치밀한, 혹은 이런 게 현실이냐고 반문하고 싶을 정도로 말도 안되는 사건이지만 주인공은 주어진 단서들을 조합해가며 이 모든 사고는 오컬틱한 사건도 아니고, 개인의 실수에 의한 단순 자살도 아닌 누군가가 꾸며낸 치밀한 살인사건임을 풀어낸다. 이렇게까지 길고 장황하게 일반적인 추리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당연하지만 이 소설은 이런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처음 50p는 굉장히 짧은 호흡과 빠른 템포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 수학교사는 늘 같은 도시락집에 들르며 이웃집에 있는 한 여성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은 채 마음으로 사모한다. 그런데 그 여성이 과거의 남편과 다시금 트러블이 생겼고 그 과정에서 남편을 죽이게 되었다. 그래서 수학교사는 여성과 그녀의 딸, 모녀를 위해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여기에서 독자들은 혼란을 느끼게 된다. 추리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단 작품이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왜 그를 죽였는지 벌써 공개된 채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벌써 소설이 끝난 게 아닌가 착각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독자는 모든 사건의 전말과 정보가 오픈되었기에 오히려 이후 이야기에서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분명 9일에 사고가 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형사들은 목의 흔적, 시체의 상태,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10일 이후의 알리바이만을 조사하는가. 어째서 우리가 알고 있는 데이터의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전혀 다른 지점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는가. 이게 이 소설의 핵심이다. 소설은 '어떻게' 범인을 추적하고 '어떻게' 이 트릭이 형사들을 교묘히 속이고 있는지에 대해 추리하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러니까 범인을 찾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이 트릭의 정체를 찾아내는 게 핵심이라는 의미다.


탐정 역을 맡는 이는 당연하지만 첫 작품과 다음 작품을 기반으로 경시청 내에서 '갈릴레오 탐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유가와 미나부다. 그는 과학적 추론을 기반으로 형사들이 쉽사리 찌르지 못하는 포인트를 찌르고 때로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실험을 통해 증명해낸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그의 역할은 지난 단편집들과 사뭇 다르다. 그는 경시청의 추리자문 역할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서사 아래에 고뇌하는 이가 된다. 그렇기에 이전 작품들과 달리 그는 평면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인물이 되는 것이다.


유가와 미나부와 경시청의 연결다리 역할을 맡는 형사, 구사나기 슌페이도 똑같다. 그는 첫 작품과 두번 째 작품까지만 해도 독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표면적인 정보를 갈릴레오에게 건네주고 이를 기반으로 펼치는 그의 추리를 고개 끄덕이며 듣는 역할만 해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그는 유가와 미나부라는 인물이 추리자문이라는 틀을 벗어남과 동시에 그또한 경시청을 대표하는 형사로 탈바꿈하게 된다. 갈릴레오가 개인적인 서사로 틀에서 벗어난 추리를 한다면 그는 데이터를 긁어모으고 취합해 가장 형사다운 추리를 이어간다. 그야말로 훌륭한 형사의 귀감이다.


사실 이 작품 이전까지의 단편은 조금 심심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유가와 미나부는 친구인 구사나기 슌페이의 추리자문 부탁을 단순 흥미때문에 들어주는 조금 이상하고 대단한 조교수, 구사나기 슌페이는 유가와 미나부에게 모든 추리 포지션을 넘기면서 과연 이런 사람이 범인을 추적하고 추리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일직선적이고 단순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아쉬운 형사라는 일변도적인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둘 다 짧은 단편에서 이야기를 풀어냈기에 입체적인 캐릭터를 풀어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둘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지면서 그들은 입체적인 모습을 더 다채롭게 풀어낼 수 있었고, 추리적인 요소 외에 인간적인 고뇌와 친우간의 충돌이라는 감정적인 모습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많은 독자들이 과거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이 작품에 열성적인 성원을 보여준 것이다.


이후에 이어지는 『성녀의 구제』도 비슷하다. 작품 시작에 어떻게 사고가 벌어지는지, 누가 범인인지를 먼저 밝힌 상태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형사적인 추리를 풀어내는 구사나기, 주어진 데이터를 취합해 과학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유가와, 거기에 다소 직감에 의존하는 여형사 우츠미 카오루가 등장해 둘이 아닌 셋의 추리쇼가 펼쳐진다는 점이다.


사실 위에서 말한 이 소설이 본격인가 아닌가에 대한 지적도 일부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작품에 독자가 개입할 요소는 거의 없다. 독자는 언제 사건이 발생했는지, 누가 죽었고 누가 죽였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데도 책에서는 전혀 다른 날들만 조사를 하고 있을 뿐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가 도움이 되는 경우는 없고,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그들을 쫓아가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진실에 도착해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소설에서도 탐정이 되었다기보다는 추리쇼를 보는 한 시청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일부 독자들의 싫어하는 마음도 물론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간 히가시노 게이고가 「탐정 갈릴레오」시리즈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인간적인 고뇌와 입체적인 인물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첫 신호탄이 되었다. '본격' 추리소설에는 가깝게 다가서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추리'소설'의 영역에는 누구보다 가깝게 다가간 소설이 아니었을까. 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어쨌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류를 기반으로 풀어내는 이야기고 가장 사람다운 목소리가 담겼다는 의미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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