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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Feb 12. 2023

17. 사회생활하는 대학생 이야기

주말과 바다

 하늘 아래 땅과 바다가 맞닿는 곳, 탁 트인 도로 위 좌우측으로 넓게 깔린 서해 바다를 보며 달리는 순간에도 마음 한편은 어딘가 막힌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모든 것이 변하는 계절이 오고 있음에도 나는 변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그러는 것일까.


 꽉 막힌 마음을 뚫기 위해 바다로 향했지만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오늘따라 유난히 차갑다, 마치 서해 겨울바다처럼.


 이번 주에는 간월암에 가봐야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간월암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올해까지 합치면 벌써 3번째다. 내륙지방 출신에 지금까지 내륙에서만 살아온 내게 바다는 아직 익숙지 않은 존재다. 그렇기에 더 보고 싶어진 걸까? 무언가 마음이 답답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바다로 향하게 된다. 바다는 늘 새로우니 말이다.


 토요일, 간월암으로 향하는 길은 멀기만 하다. 집에서 차를 끌고 나오면 30분은 꼬박 달려야 하는 거리에 있다. 하지만 간월암으로 가는 길이 싫은 것만은 아니다. 그 길의 중간에는 바다 위를 지나는 해안도로가 있다. 좌우로 넓게 깔리는 서해바다, 그 길을 달리고 있으면 저절로 윤종신의 고속도로 로맨스가 입안에서 맴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흥얼거리는 노래와 반대로 날씨는 한없이 흐리기만 하다. 왠지 모르게 봄 날씨가 되어가고 있음에도 한없이 차가운 바다를 마주할 것 같은 기분이다.


 날씨가 많이 풀려서일까. 간월암 주차장은 오랜만에 만석이다. 관광버스도 줄지어 들어오고 개인적으로 온 관광객들도 적지 않다. 나는 그 많은 인파 속에서 홀로 유유히 빠져나왔다. 모두가 삼삼오오 무리 지어 다니고 있지만 나는 홀로 주머니에 손을 꽂고 간월암과 바다 그 언저리를 거닌다. 아마 일행이 있었다면 누리지 못했을 호사일 것이다.



 주말에 간월암을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선배는 물때를 잘 보고 가라고 이야기했다. 간조 때 가지 않으면 간월암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내심 내가 가는 때가 만조이기를 바랐다. 지금까지 내가 간월암에 갔던 날이면 늘 간조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바다 위에 떠있는 절이라는 이야기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도 간조였다. 생각해 보면 관광버스가 줄지어 들어오는데 당연히 간조를 맞춰서 들어왔겠지. 오늘은 멀찍이서 간월암을 보고 등대 근처로 향한다. 생각해 보면 3번이나 왔음에도 등대 근처로는 가지 않았다. 언제나 주위를 둘러보고 멍하니 바다를 보다 돌아와서 그랬던 건지.


 등대를 찍고 돌아서는 길목에 바다너머로 갈매기떼가 보인다. 물 위에 둥둥 떠있는 갈매기들은 추운 바닷물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서로 물장구를 치면서 수영을 하고 다닌다. 나는 당장 내 몸을 스쳐가는 해풍에 괜스레 지퍼를 올리면서 움츠리는데도 말이다. 부둣가와 갈매기들, 그리고 어선들. 문득 최근에 읽었던 골든아워의 도입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어선에서 일하는 한 선원이 동아줄에 몸이 묶여 뼈와 내장이 으스러진 상황에서 수술실에 들어왔던 일, 수술 끝에 그를 살렸음에도 다시 어업을 시작한 선원이 끝내 파도에 휩쓸려 죽었던 일. 바다에서의 삶은 로맨틱하지만은 않다. 낡고 부서진, 하지만 다시금 두텁게 쌓아 올린 방조제가 내게 말해준다.


 짧은 사색이 끝나고 집에 가기 위해 다시 차에 오른다. 돌아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올 때처럼 입에서 고속도로 로맨스가 흘러나오는 일은 없다. 단지 카오디오가 불러주는 차가운 노래에 맞춰 무던하게 페달을 밟을 뿐이다.


 간월암에서 먹은 점심, 3번이나 와서 겨우 먹을 수 있었던 수제버거였지만 첫 인상은 이게 수제버거라고 불러도 될까?라는 생각이 드는 모습이다. 햄버거에 대한 분류는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다. 손에 들고 먹을 수 있어야 햄버거라 부르는 사람도 있고, 빵 고기 빵의 형상으로 탑만 쌓여 있다면 나이프로 잘라먹어도 햄버거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햄버거와 비슷한 형상으로 햄버거라 명명만 해줘도 햄버거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굳이 말하면 빵 고기 빵의 순으로 탑만 쌓여 있다면 나이프로 잘라먹어도 햄버거라 생각하는 부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햄버거의 형상을 한 무언가는 딱히 햄버거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윗빵이 있기는 하지만 얹어먹을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다. 윗빵은 마치 옆에 한가득 깔린 투움바소스를 찍어 먹기 위해 존재한다고 어필하는 것처럼 빵 아래에 스프레드가 짙게 발라져 있다. 처음에는 빵을 얹어 먹지는 못할까 시도해 보지만 결국 그런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만다. 위에 얹어져 있는 불안정한 계란프라이가 빵을 버텨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이것을 함박스테이크처럼 이리저리 돌리며 잘라먹는다. 그리고 폭신한 윗빵을 따로 찢어 소스에 찍어 먹는다. 맛없지는 않다.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맛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와서 또 먹을까? 하면 잘 모르겠다. 2만원짜리 자신을 햄버거라 소개하는 이 무언가는 맛있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푹신한 빵, 부드러운 패티, 캐러멜라이즈드된 양파와 계란프라이, 토마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덮어주는 투움바 소스. 식감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매력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햄버거 마니아로서 햄버거라는 느낌이 부족해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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