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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Feb 15. 2023

18. 사회생활하는 대학생 이야기

한 주의 시작

"선배, 선배가 일하는 곳으로 새로운 친구 한 명 갈 거예요. 잘 챙겨줘요."


"내가 누군 줄 알고. 서산의 친절한 이웃이라 불리는 나라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주말은 짧고 평일은 길다. 새로운 후배가 이곳에 배정되고 다른 후배는 상위부서 행정계로 떠난다. 영원히 함께 있는 관계는 없다. 사람은 언제나 만나고, 떠나보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떠나보내줄지다.


 한 주가 시작되었다. 월요일 아침은 언제나 분주하다. 분석해야 하는 것들이 몰려오고, 또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행정 작업들을 처리해야 한다. 늘 그렇듯 우리는 분주한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서로 주말에 뭐 하면서 지냈냐는 사소한 질문들과 함께 말이다.


 최근 들어 후배에게 행정 작업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내가 앞으로 100년, 1000년 이 자리를 지킨다면 모르겠지만 나는 올해 10월쯤이면 자리를 비울 것이다. 그 후로는 후배가 이 자리를 이끌어야 한다. 전역까지 10개월, 목전에 앞둔 상황에서도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알려준다. 지금 알려주는 행정처리는 사회에 나가면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군부대를 위해 만든 체계이고 군부대에서만 사용되는 비효율적인 체계니까. 하지만 배워도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전역 후에 회사에서 다른 체계를 이용해 행정 작업을 하게 되었을 때 지금의 시도들이 자신감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후배에게 가르쳐주는 도중 새로 배속된 신입이 반장님과 함께 인사차 사무실에 방문했다. 흔들리는 눈동자자와는 반대로 꼿꼿하게 펴진 허리와 꽉 쥔 주먹. 따닥, 발 뒤꿈치 붙이는 소리, 한눈에 봐도 녀석은 긴장해 있다. 새로 온다는 신입이 이 친구겠구나. 나는 후배에게 과자를 꺼내라고 손짓을 하고는 반장님께 간단히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는 후배에게 과자를 건네면서 긴장을 풀어 줄 만한 말들을 꺼냈다.


"네가 이번에 새로 온 친구구나. 교육사에서 같이 교육받은 후배가 잘 대해주라고 이야기해서 기억하고 있었어. 내 이야기도 얼핏 들었지? 힘든 일이 있거나 잠시 쉬고 싶으면 우리 사무실에 언제든 놀러 와도 괜찮아."


 상투적인 인사말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올라왔다. 그 후로는 내가 근무하는 부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지만 그렇다고 내 설명이 끊기는 일은 없다. 어차피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해하는 신입은 없으니까. 모든 설명이 끝나고 반장님과 나, 후배는 셋이서 농담을 던지면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이야기가 끝나고 반장과 신입은 사무실을 떠났다. 그녀는 오늘 내내 각 사무실을 돌고 작업장을 돌면서 구경과 더불어 인사를 나눌 것이다. 신입은 연례행사를 통해 한 가지 확실한 점을 알아간다. 모든 근무지는 치열하게 업무와 싸운다는 것, 누군가 자신을 챙겨주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주기를 바라며 왔겠지만 이곳은 그럴 환경이 되지 못한다는 것.


 날이 다시금 추워졌다. 뉴스에서는 집어넣은 패딩을 다시 꺼내게 생겼다는 소리를 아침 댓바람부터 하고 있다. 누가 벌써 2월에 패딩을 집어넣을까. 잠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늘어진다. 그때 아침 나팔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깨부순다. 늘어지는 생각의 꼬리를 잡아 매듭짓고 출근길에 나선다.


 오늘은 회식이 있다. 전 인원이 모이는 회식, 듣기로는 3년 만에 있는 일이라고 한다. 코로나는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개인의 방식, 무리의 방식, 직장의 방식, 모든 것을 말이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할 때 입대한 후배들은 유달리 높은 전역률을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로 인해 부대가 엄중히 통제당하면서 생활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던 경험을 처음부터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하던 당시 대다수의 부대는 문을 걸어 잠갔다. 그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해 코로나로부터 청정구역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는 큰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독신 간부의 경우 외출이 허락된 다른 가족이 없기에 생필품의 구매조차 제한받는다는 점이었다.


 이런 방역지침은 빠르게는 아니지만 어쨌든 바뀌었다. 하지만 후배들은 이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되는 경험동안 군대의 단점을 몸으로 느꼈다. 정책은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펼치고 이는 아래에 있는 조직원 개개인의 사정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후배들은 이 부분에 대해 환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생필품을 미리 구입해 둔 나도 불편함을 느꼈는데 생필품을 구하지도 못하고, 한참 본가에 올라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했을 후배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물어보지 않아도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런 시간들은 끝났다. 부서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를 다시 개최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회식도 다시 시작되었다. 첫 포문을 연 행사는 선배들의 근속 축하 행사였다. 회식자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같은 병과를 지닌 다른 상위 부서의 사람들, 타 정비공장의 사람들, 혹은 주인공들의 지인들까지. 어디서 본 적 있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 낯익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고기와 술로 회포를 푼다.


 나는 차를 끌고 선후배들을 태워 회식장소에 왔기에 술이 있는 자리를 피해 구석에 앉았다.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을 때 후배 한 명이 다가와 내 컵에 사이다를 따라준다.


"이런 분위기 즐겁네요. 다 같이 모여서 하는 회식은 처음이라 그런가?"


"하긴, 3년 만이라고 했지? 지금 있는 애들은 전부 이런 회식 자리가 처음이겠네."


 후배는 내 옆자리에 앉아 즐겁다는 이야기를 연거푸 말한다. 그리고는 앞에 있는 다른 선배들과 술잔을 나누고 우연히 맞아떨어진 게임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낸다. 이런 자리가 많이 있었으면 내 옆에 앉은 친구도 조금 더 조직에 정을 붙이고 남으려고 생각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대신 컵에 남은 사이다를 쭉 들이킨다.


 모든 공식적인 회식이 끝나면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짓는다. 2차를 가겠다고 말하면서 사람을 모으기도 하고, 집에 가기 위해 차량을 구하는 사람들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런 와중에 나는 한 발자국 멀리 서서 차키를 들고 그들을 멍하니 쳐다본다. 보고 있으면 피로가 밀려온다. 머릿속에는 집에 돌아가서 쓸 이야기로 가득한데 글을 쓸 체력이 남아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위에 후배들이 모인다.


"저는 그러면 집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내 주위에 그룹이 생겼을 때 다음 자리를 만들려는 사람들과 빨리 거리를 두면서 장소를 빠져나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장소를 벗어나자 비로소 한기가 느껴진다. 아직 겨울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긴 숨을 내뱉으며 차에 타자 다른 후배들도 각자 자리를 차지한다. 첫 회식 때 나를 태워주던 선배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차분한 노래를 틀어놓고 페달을 밟는다. 핸드폰 내비게이션의 목적지에는 '집'이라고 써있을 뿐이다.


 월요일과 화요일의 이야기가 모였다. 원래 일요일날 적어야 했을 서평이 생각보다 분량이 길어지면서 월요일날 완성을 하게 되어 부득이하게 월요일과 화요일의 이야기를 모아 적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는 이어지는 모양새다. 새로운 만남과 예견된 이별, 나 또한 그 어딘가에 서있다.


 처음 입대했을 때는 이별이라는 말이 참 싫었다. 같이 일하던 좋은 사람을 보내야 한다니.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하게 납득하고 있다. 좋은 인연이라면 밖에 나가서도 만나게 될 것이다. 나 또한 오랜 시간 이곳을 지켜온 선배들처럼 오는 이 환영하고 떠나는 이 잡지 않는, 오히려 축하해 주는 의연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면서 오늘도 후배와 전역하면 건대 입구에서 소바라도 먹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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