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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Feb 11. 2023

16. 사회생활하는 대학생 이야기

 날개를 펼치고 활강하는 작은 짐승. 벌레도, 도마뱀도, 쥐마저도 낚아채는 날카로운 짐승. 양손으로 잡으면 으스러질 것 같은 여린 짐승. 매는 생각 이상으로 부대 가까이에 살고 있다. 부대의 70%가 황야라서 그럴까, 이 작은 짐승은 평소에도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먹잇감을 사냥한다.


 나는 가끔 날개 달린 생물들을 동경한다. 저 날개가 있다면 어디든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공군에서 정비사로 일했던 첫 번째 이유였다.


 며칠 전 매 한 마리가 정비공장에 날아들어왔다. 아름다운 갈색 깃털을 지닌 작은 매는 인간의 손에는 닿고 싶지 않은 듯 지붕을 받쳐주는 프레임 위에 앉았고 아침부터 점심까지 배가 고플 법도 하건만 그 자리를 지켰다. 그쯤 되면 불안해지는 쪽은 사람이다. 항공기 기관을 정비하는 정비공장에서 제일 경계하는 것은 바로 기관에 들어갈 수 있는 무언가다. 그리고 매는 정확하게 그 무언가에 속하는 동물 중 하나다.


 행여 매가 마음이 바뀌어 날아가지는 않을까, 아니 날아가면 좋겠다는 마음에 공장 문을 활짝 연다. 하지만 매는 별로 날아갈 마음이 없는지 그 자리에 올곧게 앉아 멀리 하늘만을 본다. 두 시간이 지났을까, 이제는 매에 감시요원을 따로 붙인다. 매가 따뜻하고 아늑한 항공기 기관에 쏙 들어가 자리 잡으면 안 되니까 말이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저 녀석은 날아가면 좋겠다. 저 녀석이 살기에 이 공장은 너무 좁으니까 말이다.


 모두가 다시 자신의 작업 위치로 돌아간다. 언제까지고 하염없이 매를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의 일은 정비지 매 돌보기가 아니니까. 나 또한 자리로 돌아갔다. 매를 멍하니 보는 일은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생산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나도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그날은 자격시험도 봐야 하는 날이었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훨훨 날아가라, 어디로든 멀리 날아가라. 그런 마음을 품고 시험을 위해 사무실로 향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날 때쯤 별안간 소란스러운 일이 생겼다. 매가 잡혔다는 것이다. 그것도 병사들의 손에. 매를 장닭 잡듯 양손으로 조심스레 잡고 들어오는 녀석들과 마주친 나는 호들갑을 떨면서 뒤로 물러섰다. 녀석들의 손에 잡힌 매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졌지만 저항할 의지도, 힘도 없는 듯 힘없이 손아귀에 매달려 있었다. 매를 잡은 녀석들의 모습을 본 선임부사관님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얼굴로 다가서더니 일단 매의 사진을 찍었다. 모든 일은 보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녀석을 다시 밖에 풀어주기 위해 뒷마당에 모두가 모였다. 매를 잡은 친구들과 우연히 지나가던 나, 선임부사관님과 중대의 행정담당 병사까지. 우린 녀석을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놨다. 이제는 날아가라, 멀리 날아가라. 하지만 녀석은 바닥에 발을 딛었다가 이내 일어나지도 못하는 듯 날개까지 펼치며 자리에 누워버렸다. 원래 아팠던 걸까. 날아갈 힘조차 없는 걸까. 선임부사관님은 녀석의 용태를 파악하기 위해 행정담당 병사 한 명만 남긴 채로 그 자리를 파 해버렸다.


 그 매의 뒷이야기는 다음 날 우연히 사무실에 놀러 온 행정담당 병사의 입을 통해 듣게 되었다. 끝내 죽었다고. 뭐가 문제였는지 반평생 기계만 만지던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녀석이 잘 날아가기를 바라면서 마실 물도 가져다주고 빵쪼가리도 가져다줬다. 하지만 그럼에도 녀석은 끝내 날아가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더라.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이 뒷마당을 작게 파서 곱게 묻어 줬다고.


 그 작은 매는 어째서 마지막으로 우리 정비공장에 날아들었을까. 정비공장은 매가 살기에도, 죽기에도 너무 좁은 곳이다. 우린 항공기의 심장을 고쳐 끝내 날게 만들지만 반대로 우리 스스로 날지 못하는 채로 이곳의 땅을 걷는다. 어떤 의미에서든 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녀석은 여기가 그런 곳임을 알고 날아들었을까.


 혹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작은 새들은 비를 맞으면 추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나는 실제로 어른이 된 후에도 그런 생각을 꽤 오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날이면 늘 깍깍거리며 울던 까치들도, 포르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참새들도, 시원하게 날개를 펼치며 날아다니는 매들까지도 걱정을 하고는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새들은 둥지에 들어간다고 한다. 날개가 젖으면 체온을 유지하기가 힘드니까 다들 집에 삼삼오오 모여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새들은 오랜만에 달콤한 휴식을 즐기는 걸까? 새 우는 소리 없이 시작하는 아침은 왠지 모르게 낯설지만 그날만큼은 새들의 소리를 빗소리가 대신 메꿔주니 휴식을 즐겨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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