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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Feb 14. 2023

3. 골든아워 1, 2 - 흐름출판

글로 시간을 쓴다면

 봄이 싫었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노동 현장에는 활기가 돌고 활기는 사고를 불러,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왔다. 봄기운에 밖으로 이끌려 나온 사람들이 늘었고, 늘어난 사람만큼 사고도 잦아 붉은 피가 길바닥에 스몄다. 병원 밖이 형형색색 꽃으로 물들 때, 나는 무영등 아래 진득한 핏물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 골든아워 1 17p


 골든아워는 에세이이자 이국종 교수의 연대기이다. 2002년부터 시작되어 2018년까지 이어지는* 글은 마치 그의 역사를 담은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처음 외상의학과에서 업무를 시작할 때부터 아덴만 여명, 중증외상센터, 세월호 사고, 그 후로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열정이었고, 그다음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절망, 마지막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체념이었다.


 2019년 여름,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 이 책을 사서 돌아왔다. 이국종 교수가 어떤 인물인지는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다. 국내의 저명한 중증외상의학교수이자 의사,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수술을 성공적으로 집도했던 명의, 그 후 국내 의료헬리콥터 도입에 대해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인물, 내가 기억하는 이국종 교수는 이런 인물이었다. 그러던 중 그가 낸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이 책은 정말 신드롬 그 자체였다. 2018년 연말까지 수많은 작가들과 문인들이 그의 에세이에 대해 찬사를 보냈고, 19년에는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늘 그렇듯 쉽게 끓어 오른 이야기는 쉽게 꺼진다. 결국 수면 위로 끌어올려진 수많은 이야기들은 다시 바다 깊은 곳으로 빠져버렸다. 중증외상센터의 지원에 관한 이야기도, 의료용 헬리콥터를 운용해야 한다는 외침도, 중증외상의학과 인원이 충원돼야 한다는 그의 단말마도 결국 심연 어딘가로 사라졌다. 23년에 이 책을 다시 읽는 나는 어떤 기분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할까? 문득 이 책을 꺼낸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도 우리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고, 또 그날의 일을 계기로 깨달은 것들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기 9일 전, 청보호가 전복되었다.



 사람들에게 회자가 되는 책은 2종류로 나눠진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불후의 명작, 후 세기에 가서 읽어도 명작이라고 칭찬할만한 작품들이 있다. 두 번째는 시대의 명에 의해 이끌려온 작품, 폄하하면 시대를 잘 타고난 작품이라는 이야기고 긍정적으로 말하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작품이라는 의미이다. 나는 이 에세이가 두 번째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필요한 이야기다. 사고가 발생하면 그제야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늦게나마 땜질을 하는 지금 시대에 말이다. 중요한 것은 땜질을 할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이 책은 2002년에서 2013년까지의 기록, 중증외상센터가 지어지는 과정까지의 이야기를 1권에 담고 그 후의 이야기를 2권에 담았다. 1권의 이국종 교수는 젊다. 패기가 있고 국내의 의료 현실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젊은 그는 2차례 해외 연수를 다녀와 돌아올 때마다 국내의 의료업계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말은 언제나 큰 벽에 부딪혀 돌아온다.


"여기가 미국인줄 알아?"


"이 선생, 여기는 영국이 아니잖아? 나도 미국에서 연수받았지만 거기에서 하던 걸 한국에서 다 할 수는 없어."


 그가 보였던 패기는 그 순간부터 절망으로 바뀐다. 인원 지원은 없다. 한 손에 꼽을만한 팀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하고, 또 의료헬리콥터를 도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소와 비난뿐이다. 그는 이야기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외상외과 전임강사이자 의사로 아무것도 없는 말단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그의 직책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그 말은 곧 자신 아래의 후배들을, 그리고 자신의 부서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잃을 것이 없던 사람은 점점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들이 생겨나고, 현실은 그런 맹점을 파고든다. 피하기만 했던 사내정치가 그의 목을 옭아매고 관련이 없던 다른 의사들은 어느 날 갑자기 적이 되어 악의의 칼날을 휘두른다. 이쯤 하면 되었다. 그만두자. 그만두자. 언제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면할 때마다 그는 누군가 이 상황을 끝내버리고 자신도 이 자리에서 내려오게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이들은 그를 깎아내릴 뿐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지는 않는다.


 많은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그는 중증외상센터의 중요성과 재난 발생 시 대처에 대해 강조한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도 달라진 것은 없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도 모든 책임자들은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돌린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 환멸하고 끝내 체념한다. 배가 기울고, 바다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순간에도 수많은 현장에 없던, 현장에 없을 사람들은 각자의 할 말만을 하고 있고 의료계의 인사들은 이때를 노렸다는 듯이 이국종 교수를 공격한다. 헬기를 타고 가서 달랑 환자 1명 태우고 돌아올 거면 뭣하러 그 자리에 갔냐고, 헬기가 그의 마실용 자가용인줄 알고 있다고.


 이제 그는 잃을 것이 많은 센터장이 되었다. 센터장이 되었음에도 지원도, 대외적인 시선도, 10년 전과 다를 바 없지만 그가 책임져야 하는 인물들이 많아졌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달라졌다. 그렇기에 그는 처음과 달리 많은 것을 내려놓는다. 헬기 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병원에 대해서는 헬기 지원을 끊어 버린다. 위급한 환자가 있기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병원에 헬기를 지원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는 헬기 지원을 막는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말라고, 욕먹는 것은 자신 혼자로 충분하다고. 결국 갖은 노력에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네모난 돌이었던 그를 사회가 둥그렇게 강제로 깎아버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블루컬러에 속하는 직업을 가지고 계셨다.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한 것은 중학교 때 아버지가 오른팔 전완 전체를 무언가에 쓸린 것처럼 큰 상처를 가지고 오셨을 때 알았다. 그는 웃으면서 후배가 장비를 잘 쓰지 못해서 자신이 대신해 주다가 다쳤다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그리고 나 또한 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고 넘어갔지만, 20살이 되고 군에서 일하게 되면서 깨달았다. 그 일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버지는 환갑이 넘으셨다. 힘이 넘치던 그는 노쇠했고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던 사람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몸이 아니다. 한 손은 옛 저녁에 다쳐 손가락이 제대로 굽어지지 않고, 추운 날이면 손마디가 시려 마사지기를 끼고 있어야 한다. 아버지는 지금 이 순간 집 전기장판 위에서 주무시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봄이 되고 날이 좋아지면 다시금 업무에 나서시겠지. 그게 지금까지 집을 지켜온 가장의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내가 일하는 군과 정비공장이었다. 인원 충원이 안되고 있는 것은 비단 공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더 심각한 것은 육군과 해군이다. 육군은 내가 하사로 임관하던 시절부터 인원이 늘 미달이 나고 있었다. 부사관 충원율은 정말이지 심각한 수준이었고, 그에 따른 사회적 인식도 최악에 치달을 시절이었다. 그다음으로 문제가 생긴 것은 해군이었다. 해군은 배 위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기피받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육군이 미달이 난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해군에서 다량의 전역자가 발생을 했고 그 인원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공군 차례가 되었다. 공군 부사관에는 기피받는 병과가 있다. 기체, 무장, 탄약, 속칭 기무탄이라 불리는 이 3가지 병과는 공군 부사관 내에서 업무강도가 강하고, 또 인정받지 못하는 보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 병과 이외에도 기관, 장비와 같은 야전정비 병과 또한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젠 병사의 메리트가 올라가면서 역으로 부사관을 지원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공군도 작년 말, 올해 초부터 부사관 정원이 미달이 나기 시작했다. 이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부서는 일선, 야전정비부서였다.


 사람들은 매 년마다 줄어든다. 하사들은 장기복무를 지원하지 않고 4년 의무복무가 끝나자마자 군을 떠난다. 중사들도 결혼하지 않은 젊은 중사의 경우 쌓이는 업무와 불필요한 행정, 줄어드는 인원수를 버티지 못하고 군을 떠난다. 중사의 경우 정년이 보장되었음에도 말이다. 내가 일하는 부서도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다. 하사들은 전부 떠나고 중사는 매 년 최소 2명씩 전역한다. 하지만 배속받는 인원은 분기에 1명, 많아봤자 2명 수준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지금까지 어떻게든 이어온 정비 퀄리티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내가 처음 임관할 때만 해도 나는 이 직업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병사생활 당시 선임병은 나를 형편없는 사람으로 매도하면서 쓸모없는 시비를 걸었고, 그 시간은 굉장히 고통스러웠지만 어떻게든 참으면서 하사가 되었다. 나와 같이 일하는 선배들은 달랐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지만 내 자긍심은 매일같이 깎여나갔다.


 사람들은 부사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형편없는 사람들, 사회 밑바닥이나 가질법한 직업이라고 매도했다. 선배들은 이미 고여있는 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가 잘못이라고 말하듯 매일같이 우리를 집합시켰고, 또 괴롭혔다. 그런 와중에 내 마음을 완전히 꺾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나에 대해 좋지 못한 소문을 퍼트리고 이에 대한 수습은 하지 않은 채 떠나버린 선배, 그리고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면전에 욕부터 했던 다른 선배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두고 온 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날부터 매일 새로운 기대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반드시 핑크빛 미래가 가득할 거라고 누구도 말해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말이다.


 누군가 이 책에 대해 칼의 노래를 베낀 아류작과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뚝뚝 끊어지는 이야기 속 흐름을 잡기 힘들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1권은 눈물과 함께, 2권은 한숨과 함께 이 책을 완독 했다. 그와 나는 같지 않다. 결정적으로 그는 도망칠 수 있었고, 또 도망치려고 생각도 했지만 마지막까지 남아서 노력했다는 것이고, 나는 이 자리를 떠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깊이 공감하는 것은 왜일까. 자신을 사람을 치료하는 노동자라고 표현했던, 인력난과 사회적 시선과 싸웠던 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군부대 근처에서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이뤄지는 시위가 있다. 바로 군부대 소음공해에 대한 민원 시위와 부대이전 요구에 대한 시위다. 이는 대구, 서산, 충주, 어디를 가도 늘상 있는 일이다. 언급된 비행단들의 특징은 모두 F-15K, F-16이라는 최정예 전력을 구사하는 비행단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원들은 이 도시에 비행단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쾌함을 숨기지 못한다.


 매년 군부대에서는 소음공해에 대한 보상지원금을 그들에게 지급한다. 인당 월 최소 3만원에서 최대 6만원, 적지 않은 금액이다. 만약 아주대에서 의료용 헬리콥터를 상시 운영한다면 어떻게 될까? 의료용 헬리콥터는 필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모두 납득을 해줄까? 아니면 위에 해당하는 금액을 아주대에서 지불해야 할까? 아니면 저런 돈보다도 시끄러운 헬기를 띄우지 말라고 말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로 끝내겠다.


*현재는 2020년까지의 기록으로 21년 개정증보판이 나와있는 상태다. 2018년까지의 경우 구판의 내용이고,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책도 구판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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