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휴가
군에서 휴가를 나올 때 듣는 단골 교육 멘트가 있다. 휴가를 나갈 때 조심해야 하는 것, 음주운전, 성관련 사고, 대민마찰사고. 사실 이 이야기는 휴가를 나갈 때만 듣는 이야기가 아니다. 매주 주말이면 늘상 나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가 전에 듣는 이 교육은 유달리 특별하다. 교육 내용을 전달받아야 휴가를 나간다는 실감이 들어서일까. 군복을 입고 있는 지금, 휴가를 나가는 순간까지도 내 마음은 누구보다 군인이다.
월, 화, 수, 긴 휴가를 다녀왔다. 토요일은 진주로, 일요일은 서산으로, 월요일은 경기도로, 땅 위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바쁘게 다녀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 휴가는 쉰 기분이 들지 않는다. 아니, 정신적으로는 확실히 쉬었지만 육체적인 피로가 가시지 않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목요일은 이미 왔다. 휴가가 끝난 후 출근하는 목요일, 내게 위안을 주는 것은 빠르게 다가오는 토요일이다.
지방도시의 인구수가 가파르게 줄고 있다는 소식은 다들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녀온 진주는 조금 상황이 나은 편이다. 근방에 있는 소규모 도시에서 발전가능성이 있고, 또 발전하고 있는 진주로 인구가 몰리면서 역으로 줄던 인구가 늘어나기도 하는 경우가 생겨서 그렇다고 한다. 사실 진주는 최근 들어 인구가 줄기 시작했지만 아직 34만 명 대의 인구를 유지하고 있어서 상황이 많이 좋은 편이다. 당장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경북 영주만 하더라도 다니던 당시 12만 명의 인구가 깨졌다고 앓는 소리가 나왔는데 지금은 10만 명 대의 인구도 깨질 위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주는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내가 군에 처음 입대하던 당시인 15년도만 해도 부대 인근은 삭막한 도시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아직 개발이 덜 된 듯 공사장과 개울, 낡은 다리, 보기만 해도 지역발전을 위해 힘쓰고는 있지만 역으로 살기 싫은 분위기의 도시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진주는 그 당시와 비교하면 180도 달라졌다고 말해도 될 수준이 되었다. 혁신도시 인근이 계속 발전하고 있고, 과거 핫플레이스라 여겨졌던 중앙동도 코로나 시국을 기점으로 폐업하는 가게들이 생기면서 성장동력을 잃나 했지만 역으로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다시 가게가 들어옴과 동시에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특히 내가 도시를 나다니면서 칭찬하고 싶었던 부분은 새 마스코트 하모였다. 하모는 21년부터 활동했던 진주의 마스코트다. 진주에 서식하는 수달이 컨셉이랬나.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하모는 크게 사람들에게 인식이 박힌 마스코트가 아니었다. 이벤트를 했음에도 짧은 기간 때문에 불평이 나오기도 했고, 코로나 시국 당시에 나온 마스코트여서 상대적으로 홍보가 덜 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봄기운을 따라 밖으로 나오는 지금, 이제야 마스코트는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거리에 세워놓은 하모 동상, 인형들과 그 동상을 보고 사진을 찍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를 보여준다. 특히 혁신도시의 cgv 건물에 층마다 서있는 수준으로 보이는 하모를 보면 나 또한 웃음을 감출 수 없게 된다. cgv에서 팝콘을 먹는 하모, 건물에 들어서면 로비에서 반겨주는 하모, 공원으로 향하면 아이들에게 손 흔드는 하모, 공원 중심 호수에 앉아서 쉬는 하모...... 온 세상이 하모다.
마스코트 사업은 쉽지 않다. 홍보도 필요하고 꾸준한 캐릭터 형성, 투자도 필수불가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막한 도시를 바꿔주는 것은 마스코트다. 하모는 출시부터 지금까지 약 1년 6개월 동안 진주에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밀어준 티가 나는 마스코트다. 그 결과 도시에 놀러 오는 사람도, 이 도시에서 사는 사람도, 하모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마스코트가 되어 가고 있다. 이 거대한 수달이 도시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줄까? 나는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자친구와의 주말 데이트가 끝나고 밤새 달려 서산으로 돌아온 후 짧은 밤을 보낸 내게 새로운 일정이 생겼다. 본가에 올라가기. 월, 화, 수, 남은 3일을 가만히 집에서 보내기는 왜인지 모르게 아쉬움이 생겼기에 월요일 아침, 가방을 챙겨 불현듯 밖으로 향했다.
월요일의 아침 끝자락은 이미 봄햇살로 따뜻하다. 아니, 모두가 출근하는 월요일에 나 홀로 늑장을 부렸으니 이 때문에 유독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짧은 행복감을 만끽하면서 본가로 향했다. 서산에서 경기도로 가는 길은 멀지 않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고속버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도로 위에 내가 핸들을 잡았으면 아마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조는 일 따위 상상도 못 했을 것이고, 분명 욕지거리나 내뱉으면서 도로 위의 누군가가 되어 타자로서의 삶을 짧게나마 살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고속버스는 목적지에 나를 떨구고 다시 어디론가로 향한다. 그리고 나는 고속버스 안에서의 우리가 아닌 내가 되어 다시금 길 위로 발길을 옮긴다. 터미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생각해 보면 괜스레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한 번 갈아타기도 하고, 내린 후에는 언덕길을 하염없이 올라야 한다. 이 여정에 의미 그대로 무게감을 더해주는 것은 어깨에 놓인 가방이다. 왜 이렇게 무겁게 가방을 쌌을까. 불만의 목소리가 올라오지만 이미 늦었다.
평일의 지하철, 점심시간이라 하기엔 조금 늦은 3시에 누가 지하철을 타고 다닐까. 주위를 둘러보려다 그냥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내 읽어본다. '이거 도시 남자 같은 행동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작게 웃어 보지만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나, 너, 우리,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관심이 없다. 그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짧은 순간을 보낼 뿐이다.
도시의 전경은 바뀌지 않는다. 여성의 변화처럼 가까이 다가서지 않으면 그 변화를 모르는 법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보게 된 소사역은 공사 준비로 분주하다. 안전요원은 통행인들이 이 근방으로 가까이 가지 않도록 통제를 하고 있고, 사고가 일어난 장소로 보이는 라인은 스크린도어 설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모양새다. 사고가 난 지점은 아마 열차가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급행 라인이었을 것이다.
'급행이 지나가는 길에 스크린도어가 왜 필요해? 어차피 아무도 타지 않는데.' 그런 안일한 발상이 사고의 시발점이 되었다. 수년 전, 완행이 지나가는 길에 설치된 스크린도어가 이런 생각을 대변해 준다. 용어 그대로 보는 스크린도어는 정말로 급행구역에는 설치될 이유가 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 쇠사슬 하나로 봉해놓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사고가 없었고, 혹은 있었지만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고, 모두가 그냥 그런 채로 살아왔기에 그냥 그렇게 유지되었던 것이다.
이런 자살 사고가 없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애썼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의 불행은 국가에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창한 이유로 죽는 사람들도 있지만 누군가가 보기에는 '고작 이런 이유로?'라고 말이 나올법한 일로 죽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이유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국가에서 막을 수는 없다.
단지 죽은 사람이 이곳에서 보내는 삶은 끝나지만 산 사람들은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 고양이, 개를 차로 치어도 그 충격과 기억은 오랜 시간 머리에 남는다. 그렇다면 사람을 친 사람은 어떨까. 자동차보다 거대한 쇳덩어리로 사람을 '사람이었던 것'으로 만든 사람은 어떨까. 그들은 그들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고서도 그들의 삶을 계속 살 수 있을까? 죽은 사람을 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앞으로 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국가는 움직여야 한다. 소사역이 지하철 운전사들을 살리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뎌주면 좋겠다.
월요일 오후, 본가에 들렀다가 다시 약속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학교 후배와 짧은 저녁식사를 가지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밤이 되었다. 남정네 둘이서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후배 앞에만 서면 토크쇼 진행자가 된 것 마냥 이 주제, 저 주제를 꺼내면서 주체할 수 없이 떠들게 된다. 이렇게 말을 내뱉다 보면 음료수가 앞에 놓여 있어도 목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는 후배를 볼 수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시금 돌아오는 길, 육교에 낯선 문구가 보인다. 그리고 그중에 유달리 한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무심코 한 행동, 누군가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입니다.'
수많은 단어가 떠오른다. 폭력, 욕설, 집단 괴롭힘, 상처, 공정. 더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글을 쓰는 지금 밤이 깊었다. 군생활을 하면서 생긴 좋은 버릇이 하나 있다. 메모장 켜서 쓰고 싶은 말 쓰기. 그리고 저장하지 않고 지우기.
이 도시에는 오늘도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누군가는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를 고치는 지하철공사 직원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누군가는 지하철 안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는 이들을 향해 공허히 외치며 물건을 높게 들어 올린다. 누군가는 도심의 광장에서 핸드폰을 향해 손을 흔들고, 누군가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기 위해 커피 한 잔을 들고 다시금 거리로 향한다.
사람이 모여 도시가 생기는 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고가 없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없으면 좋겠다. 적어도 오늘 밤만이라도. 대책은 없다. 방안도 없다. 그냥 그런 바람이다.
ps 1. 위에서 이야기한 도시 남자 이야기를 본가에 들어가 아버지께 말해봤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게 도시 남자? 요즘 도시 남자들은 지하철에서 핸드폰 보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지, 책 읽는 건 촌놈이야."
아버지의 웃음끼 가득한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환갑이 지난 아버지의 훅은 여전히 매섭고, 오늘도 훅에 뚫린 옆구리는 얼얼하다.
ps 2. 화요일은 중학교 때 동창과 만나 점심부터 시간을 보냈다. 남정네 둘이서 떡볶이를 먹고, 잘하지도 못하는 볼링을 치러 가고(그런 와중에 내가 3:0으로 이겼다.), 결국은 익숙한 PC방으로 향한다. 늘 가던 PC방에 늘 쓰던 아이디를 쳐보고 놀랐다. 10시간, 왜 10시간이나 남아 있었을까...... 내가 그렇게 많이 충전해 뒀던가. 내 시간을 보고 PC방 죽돌이라 비웃던 친구도 아이디를 쳐보고 웃음끼가 싹 날아간다. 5시간, 이러니 친구지. 문득 우리가 왜 친구인가 깨닫게 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