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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Feb 25. 2023

24. 사회생활하는 대학생 이야기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


"오늘 저녁에 룸메랑 치킨 먹으려고요. 걔는 일 빡센 날이면 치킨 먹는데 오늘 일정 들어보니까 먹겠더라고요."


"그럼 나도 껴줘. 나 친구가 없어서 치킨을 못 먹어......"


"앞에 저 XX이 있잖아요."


"쟤는 나 친구라 생각 안 해......"


"카레곰중사님이 왜 제 친구입니까? 선배지."


 오늘 후배에게 치킨을 같이 먹자는 말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고했다, 나 자신. 일이 끝난 아저씨들이 한데 모여 떠드는 퇴근 시간,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


 후배의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는 길, 배고픈 저녁이면 시내까지가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다들 배고프다는 말을 시작으로 뭘 먹지, 이야기를 나눈다. 결국은 늘 시켜 먹는 그 메뉴들이다. 메뉴가 정해지면 다음으로 나누는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일 이야기다. 사무실의 후배 이야기, 오늘 있었던 작업 이야기, 최근에 있던 업무 이야기.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면 화도 내고 웃음도 새어 나온다.


 오늘은 항공기 엔진 시운전 이야기가 나왔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요즘 들어 신경 쓰이는 왼쪽 귀 생각이 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 또한 그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끼어든다. 내가 즐거웠던 몇 안 되는 군생활의 기억이니까. 귀를 찢어 버릴 듯한 강렬한 소음과 함께 불을 뿜는 엔진, 그리고 그 녀석을 검사하기 위해 강풍을 견디며 다가서는 정비사들. 연료도 뒤집어쓰고 오일도 뒤집어쓰며 했던 더럽고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 3년간의 기억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정비사들은 자기가 고치지 않을 때만큼은 엔진을 좋아하는지 이렇게 이야기 꽃을 피우면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엔진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치킨집에 도착해서는 치킨이 나올 때까지 언제 그랬냐는 듯 짧은 침묵을 지킨다. 마치 적을 마주한 군인들처럼 사뭇 비장하게. 달그락, 치킨이 종업원의 손을 통해 책상 위에 올려졌을 때 비로소 침묵이 깨지면서 모두의 입에서 같은 말이 나온다.


"잘 먹겠습니다."


 그 후로는 게 눈 감추듯 치킨을 먹는다. 그러다 어느 정도 배가 찼을 때 비로소 다시 대화가 시작된다. 이번에는 직장 사무실의 이야기다. 전역하는 하사들의 이야기, 번아웃이 온 중사의 이야기, 모든 이야기가 남 이야기 같지 않아 이번에는 순수하게 웃지 못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다. 내가 겪었던, 혹은 겪을 이야기들. 그리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도, 듣는 다른 이도 끝맺을 때쯤 짧은 침묵을 지킨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에 웃지 못하는 것이다.


"나도 XX선배처럼 될까 걱정이에요. 번아웃 와서 그만둔다는데."


"이 일에 몰두하지 말아야지. 몰두할수록 상처만 커져.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거든."


"그리고 좋은 취미를 만들어야지. 멘탈 케어가 될만한 취미로."


"게임 말고?"


"게임 말고."


 다른 동료의 이야기를 꺼내던 후배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먼 곳을 바라본다. 왠지 그 끝에 내가 있는 거 같아 나도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오늘도 후배들은 갈려 나간다. 인원 보충은 없고 업무는 과중하다 싶을 정도로 늘어난다. 타 부서는 오늘 12시면 모든 일과가 끝나고 운동을 하는 시간을 가졌을 텐데, 그들은 퇴근 시간이 넘도록 일을 하고도 다른 이들에게 좋은 소리 하나 듣지 못한다. 


'이야기한 작업은 언제 끝날까요? 아직도 안 끝났나요?'


 없는 인원을 갈아 넣어 작업을 하고도 듣는 소리는 이게 전부다. 그럼에도 일부 인원들은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군에 남는다고 한다. 단지 같이 남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중요한 말이라 생각한다. 우린 그들보다 일이 조금 덜 힘든데도 좋은 사람들이 없어서 모두 떠나는데 말이지. 매번 쓸모없는 이유로 불려 가 닦이던 후배들, 그리고 내 모습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다들 무엇 때문에 떠나는지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뒷말을 삼킨다.


 이런 이야기의 끝은 결국 선배욕이다. 마지막에는 우리를 괴롭혔던 그 이름이 식사자리에서 몇 번씩 튀어나왔다. 다들 그 이름이 가진 명성을 알기에 씁쓸한 웃음만 흘리다 식사자리를 파한다.


 돌아가는 길, 아까 나왔던 주제가 다시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좋은 취미가 뭐가 있을까?"


"음악 어때, 네 방에 키보드도 있잖아."


"음악 좋지. 한 번 음악을 배우면 추억이 길게 남아. 나도 아직 3년간 트럼펫 불었던 때가 생생히 기억나는걸. 그 추억은 평생 갈 거 같아."


"음악이라. 다시 시작해 볼까. 나 뭐든 한 번 빠지면 끝까지 미친 듯이 하는 거 알지?"


"제발 그래도 좋으니까 매일 키보드 좀 연주해라."


"아, 그리고 엔진 시운전 말인데......"


 공돌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 지 결국은 돌고 돌아 또 엔진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이야기가 좋아 집에 갈 때까지 엔진 이야기로 차 안을 가득 채운다. 세 명중 두 명은 군을 떠난다. 그 좋은 연금을 준다고 해도 마다하고 떠난다. 우리가 좋아했던 것들은 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이 자리에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많아서 손에 꼽을 수 없다. 하지만 싫어하는 것, 떠나는 이유는 명확해졌다. 우린 이 조직이 싫어진 모양이다. 좋아했던 마음을 덮을 만큼 너무 많은 이유로 인해.


 차에서 내릴 때 불어오는 찬 바람에 괜스레 옷깃을 세운다. 다음 주에 봐요. 다음 주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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