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동창의 결혼식
"멀리 안 간다. 빨리 따라와라."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지금 전역할까 말까 고민 중인데."
"아, 그래? 그건 처음 들었네. 힘들구만 참......"
주말에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을 찾아갔다. 목적지는 춘천, 서산서는 2시간이 족히 넘는 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듣자마자 찾아간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지금 보지 않으면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이제는 시간을 내야 볼 수 있는 비싼 얼굴들이 문득 보고 싶어졌다.
결혼 축하해. 이 글의 서두를 이렇게 적으면서 시작하고 싶다. 고등학교 때 동창이 토요일 결혼을 했다. 이제는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하기보다는 육군 헬기정비 중사라고 해주는 것이 맞을까. 오랜만에 동창을 본다는 생각에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참 다행스러운 이야기다. 아침부터 녀석을 보러 가기 전 처리해야 하는 급한 일이 있었으니.
아침에 타이어 압력을 확인해 보니 전날에 비해 5 psi는 떨어진 30 psi가 찍혔다. 어디가 펑크가 난 것이 분명했다. 사실은 어제부터 낌새가 있었다. 타이어 바람이 스멀스멀 빠지는 분위기였고, 점심에 확인했을 때에는 이미 거의 내려앉은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미리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괜스레 겨울이라 그렇겠거니 넘긴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래서 아침 댓바람부터 출동 서비스를 불렀다. 문제는 출동 서비스를 나온 정비사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타이어 사이드를 보니까 바람이 빠진 상태로 조금 움직이셨나 보네요. 많이 찍혔는데 이거 타이어 바꾸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아마 안쪽은 더 심각할 겁니다."
이거도 어제부터 인터넷을 막 뒤져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대답이었다. 네, 그래야겠네요.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순간 정신이 아찔해진다. 바꾼 지 딱 1년 된 타이어를 다시 바꿔야 한다니. 타이어가 어디 한두 푼도 아니고.
"장거리를 다니시면 바꾸시는 걸 권해 드리고 싶네요. 일단 펑크 난 것은 메꿨습니다."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길로 타이어 집으로 향했다. 그때 다시금 생각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를 잘했다.
결혼식 시작 전에 신랑 얼굴을 먼저 보지는 못했다. 타이어를 갈고, 한참 정체가 발생하는 용인을 지나, 같이 가는 동창의 차에 중간에서 합류해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같은 이름을 가진 춘천교회까지, 결혼식 시작 시간이 지난 것을 보고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도로 위를 달렸다.
5분을 늦어도 지각이고 10분을 늦어도 지각이다. 늦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늦는 순간부터는 돌이킬 수 없이 늦지 않는 이상은 그게 그거다. 문득 이상한 여유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옆에 앉은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생각해 보면 합류한 친구와도 거진 5년 만에 만나는 것으로 기억한다. 10대, 20대 초반, 20대 후반, 시간은 지났지만 나누는 대화는 한결같아 웃음꽃이 피어 나온다.
교회의 결혼식은 웨딩홀보다는 단출하지만 따뜻함이 묻어 나온다. 많은 지인들이 익숙한 장소에서 자리를 빛내줘서 그럴까, 그들의 영상과 더불어 가끔씩 터져 나오는 웃음에서 정이 느껴진다. 나도 이런 감정을 느꼈던 거 같은데. 생각해 보면 20, 21, 22, 23 부대 성당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고 기도 활동을 할 때 이런 감정을 느꼈다. 이제는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아직 그 기억은 마음속에 남아있다.
마지막 신랑신부의 친구, 직장동료 사진을 찍을 때 드디어 녀석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20살 이후로 보지 못했던 거 같은데. 그새 사랑을 하면서 행복마사지를 받았는지 얼굴이 많이 폈다. 우리를 보자마자 손을 흔드는 신랑을 보고 우리도 점잖게 손을 흔들었다. 신랑스러운 미소를 짓던 녀석의 얼굴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얼굴이 잠시 보인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허기가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7시부터 점심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식당으로 내려가 빈 속에 음식을 허겁지겁 채워 넣고 나서야 비로소 몸에 생기가 돌아온다.
"XX가 결혼할 줄은 몰랐네."
"그러게, 꼭 보면 결혼 안 할 것 같은 애들이 먼저 결혼해요."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나누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창 밖에는 교회의 마당이 우리에게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좋은 계절에 결혼을 하는구나. 친구도 언젠가 밖에서 뛰노는 아이들처럼 귀여운 자식을 가지고 살아가겠지. 고개를 돌리다 시선이 마주친 꼬마 아이에게 손을 흔들자 그녀도 손을 흔들었다.
인사를 도는 신랑신부와 이야기를 짧게 나누고 식장을 나왔다.
"국도로 가자. 고속도로 말고."
"그래, 오랜만에 봤는데 시간이나 죽이지 뭐."
한 시간 거리를 두 시간으로 늘린다. 그 사이에 때로는 쓸모없는 말도 나누고 때로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나눈다. 내가 전역한다는 게 배부른 소리일까, 배부른 소리겠지. 그래도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냐, 원래 정비사가 싫었던 건데 전역해야지.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고 마음속 응어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맙다고는 말하고 싶다. 누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줄까. 절친이라고 할만한 고등학교 동창이니까 해주는 말이겠지. 두 시간 거리를 돌아서 결국 헤어질 시간이 왔다. 거기서 우리는 쿨하게 헤어진다. 마치 내일이면 다시 만나서 노는 친구들처럼. 다음에 마주하는 때가 언제일지 아무런 기약이 없음에도 말이다.
돌아가는 길에 행담도 휴게소에 들렀다. 하루 네 시간이 넘는 운전은 고역이다. 몸이 버티지 못한다. 어렸을 때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어야 했는데, 요즘따라 허리가 아픈 것이 가끔 느껴져서 걱정이다. 30대가 넘으면 더 심해질 텐데 지금이라도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휴게소의 전경은 아름다웠다. 슈트차림에 넥타이를 풀고 어디든 돌아다니는 나 같은 아저씨들이 산책하기는 딱 좋은 휴게소였다. 내리는 태양, 황혼의 시간, 담배 한 대 태우기 좋은 배경이 아닐까. 물론 말만 이렇게 할 뿐 비흡연자지만 말이다.
결혼 축하해, 이렇게 글을 끝내고 싶다. 앞으로 더 많은 친구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겠지. 나도 빨리 가야 할 텐데,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외롭고 힘든 세상에서 이렇게 행복을 하나 더 찾아가며 살면 좋겠다는 친구의 바람이 담긴 인사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