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한 주가 바쁘게 흘렀다. 금방 쓸 것이라 생각했던 서평은 야근, 새벽 출근, 야근의 연속에 흐름을 놓쳐버렸다. 주말에는 옛 지인들과의 약속 때문에 한반도를 가로지르느라 개인적인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음 주말에는 시험이 있는데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주 동안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월요일은 야근을 한다고 퇴근 이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WBC 경기를 잠깐이라도 볼까 생각했지만 따로 시간을 내서 보지는 않았다. 어차피 탈락이 확정되었고 일요일날 보여준 경기력으로 봤을 때 중국에게 지는 상황은 없으리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일요일의 체코전도 불만은 많았다. 하지만 이미 끝난 경기에 굳이 꼬리표를 붙이는 짓은 미련한 행동이다. 반성이 필요하다는 말은 호주전, 일본전으로 충분하다. 반성이 일상이 되면 그 순간부터는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의미 없는 사과가 반복되면 사과가 가지는 의미 자체가 퇴색되는 것처럼 의미 없는 반성은 그 자체를 녹슬게 만든다. 그렇기에 모든 것에는 TPO가 있는 것이다. 화도 시간, 장소, 상황에 맞게 반성도 시간, 장소, 상황에 맞게. 야구도 축구도 우리의 삶도 필요한 건 끊임없는 반성이 아니다. 반성을 발판으로 가져올 더 나은 내일이다.
화요일은 심야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저녁에 출근했다. 모두가 출근하는 시간에 가지는 달콤한 아침잠.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전날 밤늦게까지 야근을 해서 즐길 겨를도 없이 12시였다. 하루가 이렇게 짧던가. 점심을 입에 욱여넣고 책을 읽다 보니 출근 시간이 왔다. 아마 한주 중 가장 의미 없이 보낸 하루가 아닐까 싶다.
모두가 잠든 밤, 새벽보다 한걸음 빨리 집에 들어갔다. 수요일은 1시 출근이다. 잠깐 잠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출근길에 오른다. 전날 심야 업무의 여파는 새벽의 단잠으로는 가시지 않는다. 피로는 독처럼 몸에 쌓이고 퇴근 후에도 이미 쌓인 독은 쉽게 내리지 않는다.
목요일은 후배와 시내로 나와 햄버거를 먹고 들어왔다. 버거킹의 신메뉴 스모키 바비큐 와퍼, 와퍼 패티와 훈연향이 배어진 스모키 바비큐, 고소한 마요네즈까지 실로 정석이라 할 수 있는 맛이었다. 하지만 정석은 정석일 뿐이다. 완벽한 답도 아니고 최적화된 답안도 아니다. 스모키 바비큐 와퍼는 분명 맛있는 신메뉴다. 하지만 새로운 메뉴가 나오고 스모키 바비큐 와퍼의 판매기간이 끝난 후에도 기억에 남는 와퍼가 될지 물어본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차라리 블랙 어니언을 돌려줘. 떠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블랙 어니언이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금요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일정이 비었다. 하지만 먼 거리를 운전해야 하는 토요일을 위해 불타는 하루를 보낼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주에 있을 토익 시험이 자꾸 눈에 밟힌다. 한 달 이면 충분히 준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었던 모양이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받으면 안 되는데.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부끄러운 성적표에 마음이 꺾일까 걱정이 든다. 그리고 아침 8시면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맴돈다. 왜 휴가인데 출근할 때보다 부지런해야 할까...... 노는 게 제일 힘들다.
토요일은 운전의 연속이다. 8시부터 운전하고 운전하고 운전했다. 서산에서 진주로 향하고 진주에서 부산으로 향한다. 부산에서 장은 본 후로는 방전, 기억이 없다. 눈만 살짝 붙여야지 생각했는데 2시간을 넘게 잤다고 했나...... 솔직히 그 피로의 여파가 일요일인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고된 여행에는 언제나 위안이 될만한 것들이 따른다고 하던가.
첫 번째는 여자친구다. 그녀가 좋아했던 대학 선배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었기에 오랜만에 그녀가 유달리 밝아 보였다. 지금 마음의 여유가 없는 시기 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잠깐 시간을 내서 평소에도 이렇게 만나면 좋겠는데. 오랜만에 그녀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시간이 된 거 같아 다행이다.
두 번째는 요리다. 진주까지 차를 끌고 가 픽업한 옛 친구가 해준 요리 덕에 행복한 한 때를 보냈다. 특히 조개 술찜이나 홍가리비 치즈 구이는 생전 처음 먹는 음식이었는데 왜 이런 음식들을 안 먹어 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같이 먹은 다른 이들도 모두 밖에서 팔아도 되겠다고 호평에 호평을 거듭하던데, 이 녀석 진짜로 검찰직 준비보다 요리사를 준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모두가 맛있게 먹는 와중에도 토치를 이용해서 위를 조금 더 구웠으면 훨씬 더 맛있었을 거라고 중얼거리는 녀석을 보며 누구보다 음식에 진심임을 느꼈다.
마지막은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다. 여자친구의 선배라고는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와도 연이 있는 분들이다. 그런 형님, 누님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다. 두 분은 행복하시면 좋겠다. 뭐, 내가 이렇게 바라지 않아도 행복하실 분들이기에 걱정이 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일요일에는 여자친구와 짧은 데이트를 하고 창원에 데려다준 후 대구로 올라왔다. 데이트 때 요즘 핫한 영화인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고 왔다. 신카이 마코토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준수한 수작이 아니었나 싶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의 이름은 을 기점으로 일상 사이에 판타지가 끼어들기 시작하더니 날씨의 아이를 지나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점점 판타지의 비중이 늘어나고 일상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내심 일상 속 사람들 사이의 세밀한 감정선을 그려내는 그의 작풍이 좋았는데 이제는 그런 부분을 기대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심 아쉬웠다. 소설은 조금 다를까. 일말의 기대감을 가져본다.
지금은 대구의 지인 집에서 멍하니 글을 쓰고 있다. 어제오늘 거진 8시간은 차를 몰고 다녔다. 이런 강행군에 가까운 휴가가 어디 있나. 마지막까지 투덜거렸지만 휴가도 이제 절반 밖에 남지 않았다. 내일은 남미에 파견을 간 형님과 보내는 날이다. 마지막 날까지 즐겁게 보내고 무사히 집에 가야지. 그리고 서평도 빨리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