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조심하세요!
"감기조심하세요!"
언제나 환절기면 판피린의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처음은 장유진 성우님이 외치신 문구였지만 지금 와서는 모두 혜리나 박보영을 떠올리리라 생각한다. 최근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반복했다. 꽃이 피는 봄에 때아닌 추위라니, 안타깝게도 나는 이 추위를 슬기롭게 헤쳐나가지 못했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 버린 것이다.
군항제는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시작했다. 서울 근교에도 벚꽃이 개화했다. 이럴 때 바쁘지 않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소망이 온전히 이뤄지기는 힘든 모양이다. 이번 주도 다음 주도 벚꽃을 보며 한가로이 꽃놀이를 하기는 그른 일정이다.
지난 주말 토익 시험을 치고 왔다. 전역 후 취직을 위해 준비하는 첫 번째 플랜. 첫 단추부터 제대로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지 감기가 내 발목을 잡았다. 갑작스레 기온이 떨어진 날 목이 간질이더니 이윽고 감기 기운이 몸을 꾹 짓누른 것이다.
직장에서도 훌쩍훌쩍, 집에서도 훌쩍훌쩍, 결국 감기 기운을 떨쳐내지 못하고 시험장까지 가게 되었다. 뭐, 사실 시험 전날인 토요일에는 출근까지 해 공부할 시간도 없었으니 어찌 보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나쁜 상황이 계속 겹쳤다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문득 중대장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이번 시험은 연습이라 생각하고 치는 거죠. 연습을 위한 연습, 그리고 연습을 위한 연습을 위한 연습......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별 쓸모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번에 코를 훌쩍이며 시험을 치지 않았으면 다음 시험 때 이번 시험처럼 긴장한 채로 시험을 봤을 테니까.
첫 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다. 솔직히 첫 술에 배가 부르지는 않아도 한 입 가득 베어 물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지만 어쨌든 첫 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이번 시험은 연습이다. 다음 연습을 위한 첫 연습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음을 준비해야지 타석 한 번에 일희일비해서야 큰 타자가 될 수 있겠는가?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시험이 끝난 후 정체 모를 허탈함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왔다. 약속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긴 3월이 끝나간다는 생각 때문일까. 지금 이 순간도 쉽사리 이 감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여자친구의 지인들을 만나고 남미에 파견을 간 형님과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다. 토익 시험도 있었고 친구의 결혼식도 있었다. 아마 20대에서 가장 바쁘게 보낸 3월이 아닐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문득 내가 군대에 가만히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이번 달도 멍하니 멈춰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전역이라는 키워드가 정체되었던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모두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형님은 다시 남미로 떠났고 대학원 졸업 후 AI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다른 형은 챗 GPT덕에 강제로 크런치모드에 돌입했다. 시험을 앞둔 이들도 있고 취직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이 글은 3월을 마무리하는 나에게 거는 주문이다. 바쁜 걸음을 하는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길 힘을 북돋아주는 주문이다. 열심히 살자, 다음 달도 열심히 살아보자.
여자친구에게 첫 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지만 첫 술에 배가 부르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러자 돌아온 말. -첫 술에 배가 부르고 싶다는 건 욕심이지. 물론 욕심인 것은 맞지만 그래도 나는 악어처럼 크게 입 벌리고 가득 한 술 뜨고 싶었다고......
그리고 쓰던 서평은 매번 쓰다 지우는 것만 반복하다 아직 쓰지 못했다. 다른 이들에게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게 풀어서 말했는데 막상 글로 쓰려니까 왜 이리 문장이 안 나오는지. 특히 다른 이들의 서평을 읽어보면서 생각을 보완하다 좋은 문장들이 눈에 밟혀 막상 내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배움이 깊은 이들은 많고 이를 예쁘게 풀어내는 사람들도 많구나. 문득 타인의 서평을 읽다 내 배움의 부족함을 다시금 느낀다. 정진하고 쓰고, 또 새로운 글을 써내려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