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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Apr 03. 2023

31. 사회생활하는 대학생 이야기

오디오북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자네가 프랑스 군의 명예를 지켜줬네!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의 사건을 해결한 후 런던으로 돌아와 달라는 전보를 받은 에르퀼 푸아로. 이를 위해 이스탄불에서 출발하는 오리엔트 특급을 타고 돌아가는 길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에 대해 다루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 소설을 중학교쯤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ABC 살인 사건...... 그 쯤의 나는 추리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지도 못했지만 무작정 읽고는 했었다. 그래서 언제나 추리 소설을 읽고 나면 배경, 사건, 범인 정도만 기억이 남고는 했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번 주말에 우연히 들은 오디오북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에 개인적인 일로 시내를 돌아다닐 시간이 많았다. 머리를 자르고 은행에 들르고, 세차를 하고 마트에 가고. 음악을 들으며 보낼 수도 있지만 음악보다 먼저 떠오른 것이 오디오북이었다. 아마 예전에 점심시간마다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쉬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벚꽃 나무 아래에서 밀리의 서재로 오디오북을 뒤적거렸다. 다른 이들은 이미 만개한 벚꽃에 강변으로 내려가 노점상에게서 먹거리를 사며 즐기고 있는 상황에 혼자 오디오북이나 뒤적거리는 머리카락 짧은 사내. 별로 운치 있는 모습은 아니지만 그 상황에서 찾은 책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었다.


 오디오북을 들어 본 적이 없다면 한 번쯤은 들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소설, 나는 성우들이 연기해 주는 소설을 들어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이런 경우 소설의 길이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6시간에서 10시간 정도 러닝타임이 나온다. 영화에 비하면 실로 긴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정확한 딕션의 성우들이 읽어 주는 대사와 상황을 듣고 있으면 머릿속에 배경이 저절로 그려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토요일부터 듣기 시작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일요일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프랑스 장교의 -자네가 프랑스 군의 명예를 지켜줬네!라는 말에 웃기도 하고, 존 아버스넛 대령의 -더 이상 그녀를 울린다면 너의 뼈 마디를 모두 부숴 버리겠어! 할 때는 나이도 지긋한 양반이 자기가 좋아하는 20대 아가씨라지만 왜 이리 주책인가? 생각하면서 몰입해서 듣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역시 맨 마지막 푸아로의 한 마디였다. -여러분 앞에 해결책을 내놓았으므로 전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오리엔트 특급처럼 끝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 이야기와 속에 숨겨진 진실, 담담한 성우의 목소리와 그 후에 남는 긴 여운. 오랜만에 좋은 작품을 다시 마주한 기분이다.


 

 꽃이 피는 계절이 왔다. 차를 타고 시내로 올 때부터 멀리 강변에 꽃나무가 보여 멀리서나마 보고는 했었는데 미용사분들이 내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오늘 저녁에 꽃 보러 가야겠다. 하고 이야기를 하시기도 했고, 여자친구에게 찍어서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강변으로 뛰어갔다.


 만개한 꽃나무에 오랜만에 많은 이들이 해미로 오고 간다. 갑작스레 늘어난 유동 인구에 좋지 못한 도로가 유달리 부각되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일 년에 한 번 있는 이벤트라고 생각하며 이번 주말의 풍경을 기억에 남긴다.


 그리고 마트에서 마주한 것은 곰돌이 인형. 이제 서른을 앞둔 군인이 뭘 보고 다니냐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래도 귀여운 인형을 좋아한다. 그래서 마트를 이리저리 다니다 우연히 본 곰돌이를 보고 사진을 한 장 찰칵 찍었다. 옆에 조그만 아이가 있었는데 이상한 눈으로 보지는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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