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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May 10. 2023

34. 사회생활하는 대학생 이야기

야심한 밤 퇴근길을 비춰주는 것은

 야심한 밤, 느지막하게 퇴근길에 오른다. 늘 가던 익숙한 길도 빛이 내리지 않는 늦은 밤이면 왜 이리 두려운지, 괜히 브레이크를 한 번 더 밟는다. 익숙한 울타리 밖 주차장도, 희끄무리하게 떠있는 달도, 집 앞 주차장도, 모든 것이 낯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콧노래가 흥얼흥얼 나온다. 기다리는 이는 없지만 내가 기다리는 것은 있다.


 지난달 28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우연히 여자친구와 그 주말에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 잡았기에 이번 생일은 외롭지 않은 생일이 되었다. 함께 거제도에 놀러 가고, 칼국수도 먹고, 축하 케이크와 더불어 마땅히 축하할만한 장소를 찾지 못해 스타벅스 생크림 카스테라를 축하 케이크로 대신하고...... 크게 싸운 후였기에 더욱 특별했던 주말일지도 모르겠다.


 그 후에는 받고 싶은 생일 선물을 말하라고 들었다. 음, 생각해 보면 받고 싶은 선물이 있냐고 물어볼 때 한 번도 그 자리에서 곧바로 대답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곳저곳 뒤질 때면 사고 싶은 물건들이 늘어나는데 막상 남에게 부탁하기에는 고민이 된단 말이지. 그리고 사고 싶은 물건!이라고 손꼽으면 아마 플레이스테이션 5 같은 선물로 요구하기에는 염치없을 수준의 가격표를 보여주는 물건들만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와서 보면 그런 생각도 든다.


 어쨌든 그 후 고민에 고민을 거쳐 여자친구에게 부탁한 선물은 책갈피였다. 최근 책을 한두 권씩 품에 끼고 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책 사이에 끼울 책갈피가 떠오른 것이다. 솔직히 나는 책갈피를 부탁했을 때 금속제 책갈피와 같은 것들, 혹은 블링블링한 무언가를 선물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주문한 물건은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여우다!

 고놈 눈은 맹한 듯 날카롭고 주둥이는 뭉툭한 듯 두툼한 것이 오동통한 여우가 틀림없으렷다. 여자친구의 선물은 예쁘게 떠진 여우 책갈피였다. 사귀기 시작했을 때부터 써왔던 모롱 작가님의 여우 이모티콘, 그리고 마이카 작가님의 여우 이모티콘이 생각나 선물해 줬다나. 받아본 후의 첫 소감은 대만족이다.


 일단 너무 귀엽다! 내일모레면 서른 줄을 앞둔 군인이 무슨 귀여운 것을 찾냐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귀여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쓴다. 꽃도 좋아하고, 귀여운 것도 좋아하고, 예쁘장한 것까지 좋아해 여자친구의 감성을 다 내가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니......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쓰고 싶은 물건이다.


 물론 예쁘게 떠진 물건이다 보니 좀 통통한 것은 사실이다. 책 사이에 껴놓다 보면 녀석도 납작해지겠지만 그전까지는 녀석을 길들일 책들이 꽤나 고생을 하겠지. 예쁘게 길들여 오랫동안 함께하자.


여우가 아니다!

 그리고 죽마고우에게도 선물을 받았다. 이번에는 여우가 아닌 실용적인 물건으로. 차량에서 안드로이드 오토가 실행가능하게 해주는 메이튼 오토프로 라고 한다. 받은 후에 야간근무를 해서 사용해보지는 못했지만 기대하고 있는 물건이다. 폴드 3를 사용하고 있다 보니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아 지금까지 사용해 온 핸드폰 거치대가 자꾸 주행 중에 진동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출발할 때라면 문제가 없지만 오래전 고속도로 주행 중 핸드폰이 떨어졌던 아찔한 경험이 있기에 부탁한 물건이다.


 사실 이런 물건은 처음 써보기에 기대반 걱정반이지만 아마 정상작동만 된다면 행복한 운전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전역을 하게 된다면 차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겠지만...... 그건 그때의 고민으로 남겨둘까. 몇 년 만에 실용적인 선물 고맙다. 솔직히 생일 직전에 만났을 때 닭 무드등, 명탐정 코난 범인 무드등 같은 것을 보여줄 때는 걷어찰 뻔했었다. 차라리 그런 걸 해줄 바에는 나처럼 지포라이터처럼 쓸모는 없지만 받으면 기분 좋은 걸 줘.

연필로 쓴다는 것.

 최근에는 연필로 쓰기를 읽고 있다. 그에게 연필은 검이다. 몽당연필을 든 무사, 한 인터뷰어가 붙였던 호칭처럼 잘 깎여진 연필을 날카롭게 벼린 검과 같이 휘두르고 원고지 위를 종횡무진하는 그의 글귀, 나는 글귀 속에서 답을 찾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물감 한 덩어리를 캔버스 위에 툭 던지고 이를 페인팅 나이프로 짓누르는 것처럼. 이야기는 둥글넓적하게 퍼져나간다. 동창의 장례식장에서 희로애락을 보고, 추억을 보고, 사랑, 그리고 결말을 보는 그의 눈에 세상은 어떤 색감일까.


 근래 들어 작가들이 사상적 색채에 대한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그도 다르지 않다. 더러는 그의 이름을 듣고 칼의 노래, 현의 노래를 떠올리지만 더러는 그의 이름 뒤에 정치를 붙여 버린다. 하지만 나는 정치 이전에 존경하는 문인 김훈을 떠올리고 싶다. 마치 군인 이전에 정비사라고 말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여담이지만 닉네임 카레맛곰돌이의 어원도 모롱 작가님의 이모티콘에서 시작되었다. 카레맛 노랑말랑 곰을 보고 카레맛곰돌이라고 이름을 지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옛날 중학교 당시의 내 별명이 곰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모티콘+옛 별명에서 영감을 받아 지금 쓰고 있는 닉네임이 만들어졌다.


 참고로 곰이라는 별명은 내게 생일선물을 준 친구가 아직도 나를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나 이 별명이 많이 쓰였는지 지금도 그의 어머니는 내 이름을 말하면 누군지 모르지만 곰이라는 별명을 들으면 바로 알아차리신다나......


 그리고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도 서평을 쓰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찔려서 못 쓰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하는 생각으로는 젊은 작가상 단편선을 지우고 다시 쓰기 시작할까 하고 있다. 괜스레 어렵게, 폼나게 쓰지 말고 담백하게 쓰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괜히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뒤에 써야 하는 작품들에 대한 서평이 쉽게 문장으로 짜이지 않는다. 어떤 작품인지, 생각을 무덤덤하게 쓰고 싶은데 이게 말로 설명하는 것처럼 쉽게 쓰이지 않는다. 음... 일단은 시간을 좀 둬야겠다. 무엇보다 이번 주 내내 일정이 꼬일 예정이라 여유가 없으니, 그 사이에 머리를 정리해도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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