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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Jun 12. 2023

친구의 전역

36. 사회생활하는 대학생 이야기

 내겐 죽마고우라 할만한 친구가 둘 있다. 한 명은 나보다 한 살 어린 후배니까 정확히는 한 명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꼭 똑같은 생각을 하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어쨌든 둘이 있다고 적은 이상 여기서는 둘이라고 말해두겠다.


  오늘의 주인공은 그중 하나인 법학과를 나온 나이가 같은 친구다. 이 녀석과 했던 일들을 나열하기 시작하면 중학교 시절까지 올라가야 하기에 오늘 밤 하루 만에 모든 이야기를 다 적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녀석은 오늘 적으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6월 5일 전역자, 훈련소의 스윙스, 입담뿐만 아니라 미담으로도 유명한 병사.


 1년 반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며 떠나는 병사가 또 있을까. 내 기억 속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에는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절반 정도 차 있다. 왜냐하면 커뮤니티에 올라온 미담은 전부 내가 알던 그 녀석의 평소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다.


 최근 병사들에게도 데이는 일이 많아지면서 조직에 대한 애정이 식어감과 동시에 사람에 대한 애정도 식어가고 있다. 교육장에 들어올 때 옷도 대충 걸치고 들어오는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하는 정비 업무에 관련해 이야기할 때 '나는 병사인데 내가 그것까지 알 필요가 있냐?'라고 대놓고 말하는 병사까지.


  솔직히 땅 파는 일에 대해 저렇게 이야기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군인이면서 동시에 정비사다. 분명 밖에서 정비, 혹은 기계를 전공한 인재들이고 전역을 한 후 비슷한 진로로 나가게 된다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해 알거나, 혹은 알려고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 알려줄 때 배워야 할 텐데. 왜 내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곤조곤 친절하게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줘야 할까. 그것도 타 부대 소속에 이미 다른 간부들에게 배웠을 병장, 상병들에게, 신고당하지 않게끔 조심해서 말이다.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을 때 친구가 전역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아니 사실은 꽤 예전부터 전역 전 휴가를 자주 나오면서 게임하자고 밤마다 부르고는 했기에 알고 있었다. 그 후 우리는 전역한 후 한 주가 지난 주말에 만났다. 쓸모없는 이야깃거리들과 같이 말이다.


간월암 앞의 파이브 스타 버거, 아마 예전에도 올라온 적이 있을 것이다.

 서산에 무작정 내려온다는 녀석을 맞이한 후 일단은 점심을 먹기 위해 차를 돌렸다. 남정네들의 식사에 중요한 것은 화려함보다 맛이라고 하던가. 제일 처음 먹은 음식은 해미 읍성 근처의 돈가스였다. 오후 2시가 되도록 배를 곪은 아저씨들에게 사진은 사치였는지 그때는 사진 찍을 생각도 못한 채 허겁지겁 나온 돈가스를 배에 넣었다.


 그 후로는 서산의 명물 PC방에서 소환사의 협곡 구경을 하고 저녁으로 고기를 먹으면서 전역한 후의 이야기를 나눴다. 드디어 전역을 했다는 허심탄회한 소리, 같이 일하는 급양병들 중 밖에서 전문적으로 요리를 하던 친구들에게 많이 배웠지만 반대로 설탕, 소금도 헷갈리고 국 간도 맞출 줄 모르는 애들이 있어 힘들었다는 탄식, 후배들이 거하게 사고를 친 이야기와 수습하기 위해 맨 발로 뛰어다닌 이야기들, 그리고 전역하면서 가장 마지막까지 떠올랐다는 전 반장님의 이야기. 나도 전역을 하게 되면 저렇게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될까. 녀석의 이야기에 멀게만 느껴졌던 전역이 문득 코 앞까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던 녀석은 갑자기 내게 빨리 나오라는 이야기를 던졌다. 자신이 2년간 봐온 이 조직은 답이 없다고. 마음대로 굴던 병사들 때문에 고통받던 전 반장의 모습만 봐도 간부는 할만한 일이 아니라고. 그리고 10년 전 중학생 시절부터 군인에 뜻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나는 그 이야기에 확답 대신 내 이야기를 덧붙여줬다.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과의 즐거운 이야기, 위에서 이야기했던 어이없는 이야기, 내 역할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 아마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녀석은 어렴풋하게 내 답을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우린 척하면 척하는 관계였으니까.


 그 후로는 숙소에서 짧은 밤을 보내고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떴을 때쯤에 간월암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점심으로 파이브 스타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역시 올 때마다 생각이 들지만 사악한 가격만큼 손님 접대용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비주얼이다. 녀석은 점심부터 맥주가 당겼는지 저 햄버거에 샐린저 호밀 IPA인가 뭔가 하는 맥주를 시켰다. 솔직히 햄버거에 늘 콜라만 마시는 내 입장에서는 저 음식이 햄버거와 어울리나...... 싶었는데 시원하게 목구멍에 부어 넣는 녀석을 보고서는 차만 끌고 오지 않았다면 나도 그 자리에서 맥주 한 잔을 시키지 않았을까 싶었다.


 식사가 끝나고는 갈 곳을 찾지 못해 어딜 가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긴 드라이브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간월암에서 저두 해수욕장까지, 그리고 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서산으로. 대충 2시간 넘는 거리를 나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흔쾌히 콜을 외치면서 달렸다. 뭐, 이게 우리 만남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무계획, 계획 없이 가장 즐거워 보이는 길로. 나는 쓸모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길을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녀석은 나와 쓸모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길을 보는 것을 좋아하니 이보다 완벽한 무계획이 어디 있을까.


 짧은 1박 2일은 이렇게 서산에 데려다준 후 녀석이 버스터미널에 내리는 것으로 끝났다. 그 후에 녀석이 지갑을 잃어버리고, 내가 그 지갑을 내일 택배로 붙여 줘야 하고 이런 쓰잘 때기 없고 쓸모없으며 귀찮은 일들이 남았지만 아무려면 좋은가. 어쨌든 즐거웠으니.


 다음에 만나면 글램핑을 가자고 한다. 같이 근무했던 급양병들에게 이 요리 저 요리 다양하게 배웠는데 나랑 여자친구에게 해주고 싶다나. 특히 편백나무찜기를 이용한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데 자기가 최근에 배운 것을 빨리 사용해보고 싶다고 한다. 음, 역시 내가 알던 그 녀석은 변하지 않았다. 순수히 남에게 해주는 것이 즐거워 선뜻 다가가는 녀석,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녀석,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의 즐거움을 아는 녀석. 그때와의 차이가 있다면 일부 상종하지 못할 사람들과 선 긋는 방법을 익혔다는 점 정도일까. 하지만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것처럼 여전히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감정을 낭비하고 힘들어하고 있으니, 나도 그 녀석도 어른이 되기는 요원한 모양이다.


 브런치 특성상 제목이 부각되고 부제목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 같아 이번부터 제목과 부제목의 위치를 바꿔보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글을 못 올린 이유는 중간에 적힌 이야기처럼 최근 친구 녀석이 전역 전에 협곡으로 나를 부를 때 거절하지 못해서였다......


 서두에서는 오늘의 주인공만 이야기를 했다. 다른 한 명은 누구냐고 할 수도 있는데, 저기에서 나오는 설명되지 않은 다른 한 명은 예전에 글로 적었던 후배다. 지금은 공익으로 일하고 있고 그 친구도 아마 올해 가을쯤이면 전역을 할 것이다. 그때는 또 다른 의미로 축하를 해주기 위해 올라가야지. 좋아하는 이들이 하나의 숙제를 마무리하는 것은 나로서도 기쁜 일이다.


 사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군대에 갈 때마다 많은 걱정을 하고는 했다. 15년에 내가 마주했던 군대는 악폐습이 적지 않았고, 선임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후임을 감정 쓰레기통 취급하거나 혹은 자신의 장난감 취급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간부와 병사의 인식 차이는 확실하게 있으니 걱정을 덜 수는 없는 일이다......


 벌써 6월이 되었다. 그들이 하나하나 목적을 이루고 있는 만큼 나도 힘내야 하는데. 내일도 다시 힘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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