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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Apr 05. 2024

6.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 작가정신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출판편집스쿨을 다니다 한 학우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책 써서는 먹고살기도 힘들어요."


 소설가는 아니었지만 이미 3편가량의 책을 내셨던 분인데. 지금도 한 권 계획되어 있고, 한 권은 저자는 아니어도 집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계신다는데. 글을 동경했던 이들에게 선망의 눈길을 받을만한 위치에 계신 분인데. 나는 한편으로 그를 동경했고, 한편으로 내가 공학을 전공하지 않았을 다른 평행우주의 미래를 생각했다.


 그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29살(정확히 이제는 27살이지만)의 나이에 공학을 배웠고, 군생활을 꽤 오래 하면서 사회성이 증명되었고, 꾸준히 돈을 모았을 테니. 립서비스였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나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어땠을까. 이 순간 그와 나는 같으면서도 다르리라. 나는 그를 동경한다. 동경은 이해에서 가장 먼 감정이라고, 그렇기에 나는 글로 자신을 증명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책은 한국 문단에서 한 번은 들어봤을, 혹은 한 번만 들어봤다고 말하면 실례일법한 작가들의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이다. 양장본에 260페이지, 113X188, 46판에서 가로로 종이를 10mm 넘게 자른 이 책을 들자마자 든 생각. '아, 이 녀석 컴펙트하다.' 정말로 컴펙트하다. 작은 판형과 적은 페이지, 그리고 소설에 비해 한 사이즈는 큰 폰트, 거기에 후술 할 작가의 이야기 배치까지. 이 책에서 정성이 느껴졌다. 편집자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책의 독자층은 이 현대 작가들의 이름을 들어본 이들, 혹은 그들의 팬들일테니 만족도를 위해 양장본으로 만들어야지. 바쁜 일상 중 어디에서든 읽을 수 있게 판본의 크기는 줄이고, 글자 크기는 키워야지.'


 사실 글자 크기를 키우고 판본의 크기를 줄인 이유는 컴펙트함도 있지만 그 외에 많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에세이집에 싣기에는 다른 이들에 비해 너무 적은 양을 보내준 작가님들의 내용물의 양을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 시와 소설, 그 어딘가처럼 보이게끔 쓴 작가님들을 위해, 에세이인 만큼 부담감을 줄이고 호흡을 늘리기 위해. 사실 이유를 붙이자면 끝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느끼기에 편집자는 이 책에 담긴 에세이를 나름의 주제를 가지고 순서대로 실었다. 개인에서 가족, 삶에서 소설 순으로 말이다. 실제로 처음에는 개인적인 작업과 삶의 의식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된다. 여행과 젊음, 일상 속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그 후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다. 소설가이자 어머니, 아버지가 된 소설가의 이야기. 그리고는 시간과 삶, 늙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마지막은 결국 소설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그래서 마진이 얼마나 남았을까, 이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는 않다. 뭣하면 광화문에 찾아가서 이 책을 볼 수도 있겠지만... 멋진 에세이였으니 꿈은 그대로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의 나는 예술을 위해서라면 자본의 가치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였다. 더 자란 후에는 돈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살아도 납득해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고 싶은 어린아이가 되었고, 이제는 꿈과 돈을 저울에 올렸을 때 꿈에 조금 더 무게를 주는 머리만 큰 아이가 되었다. 변한 건 없지만 많은 것이 변했다. 예전에는 예술이 지고한 가치인양 떠드는 얼간이었고, 그보다 조금 미래에는 돈이 삶의 전부인 거렁뱅이였지만, 이제는 이야기를 돈으로 환산해서 보는 눈이 생긴 멍청이가 되었으니까.


 책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결국 이 책의 완성은 시작과 끝에 있다. 마치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를 쏘듯 난잡하게 이야기를 던지다가 단숨에 분위기를 압도, 그리고 차분하게 정리하는 김사과 작가님. 그리고 개인과 가족, 삶과 그 속에서 찾는 소설. 책의 주제의식을 자신의 삶으로 담아준 함정임 작가님. 이 두 분이 책을 시작하고 끝맺어주셨기에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23명의 이야기 속에서도 갈피를 잡고 끝까지 모두와 바다를 갈랐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개인적인 감상평이지만 팬이었기에 기대했던 정지돈 작가님의 에세이는... 솔직히 성에 차지 않았다. SNS를 잘 활용하고, 한국 문단에서 해외에서 적용된 사례를 잘 가져와 로컬라이징하는 작가님인 것은 알고 있지만 여기서까지 SNS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SNS라면 10년 전에 썼던 페이스북을 마지막으로 담을 쌓고 살고 있다. 내 삶에 필요한 요소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일까, SNS를 통해 이야기의 화두를 던진건 알지만 굳이 SNS여야 했을까, 때로는 핸드폰 없는 삶을 담아주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 이야기와 이어지게 인스타그램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북스타그램이라고 하던가. 솔직히 인스타를 한 번도 안써봐서 모르는데 여기에 쓰는 서평을 거기에다가도 옮겨적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시작하려는 것이다. 이 계획을 들은 친구의 말로는 아마도 자기 주변에서 가장 인스타그램을 올바르게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 말했는데... 나는 작은 사회에서 살았고, 지금도 사회에 적응중이니까. 새롭게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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