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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Apr 04. 2024

5. 악의 - 현대출판

"어떠십니까, 아우님.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3대 명작이라고 칭한 작품 중 하나인 악의를 읽은 감상이?"


"아... 이 정도는 써야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이라고 불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즘 무엇이든 후기를 쓸 때 앞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써버리는 버릇이 생긴 모양이다. 하지만 이 대화는 실제로 나눈 대화고, 내가 악의를 덮은 후 느낀 감정은 이러했다. 추리소설이란 대체 얼마나 치밀해야 하는 장르인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올드스쿨의 추리소설과 악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다른가. 나는 앞으로 추리소설을 어떤 눈으로 보게 될까.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르리라.




이 책은 46판(알라딘에서는 136X195로 작성했는데 표지를 잰 것으로 보인다)에 356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소설이 구판 2017년 1월 16일 초판 33쇄 본이고 그 후 10주년 기념 개정판이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이 얼마나 한국에서 인기가 좋았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내가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부분은 책의 사이즈와 페이지, 읽을 때의 편안함과 내부 레이아웃이다. 출판편집스쿨을 다녀온 이후로 생긴 버릇인데, 예전에는 무거운 책을 읽을 때 '아, 불편하네.' 정도로 생각했다면 최근에는 '이 책이 만약 페이지를 줄이기 위해 판본 크기를 늘렸으면 어땠을까, 조금 더 두껍게 만들기 위해 판본 크기를 줄였으면 어땠을까.'정도까지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사실 내가 편집자가 되어서 일하게 된다면 앞으로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요즘에는 책 보다 그립감이 좋은 핸드폰도 많고, 무엇보다 핸드폰으로 모든 컨텐츠를 편안하게 보는 시대이다. 그런데 그 핸드폰조차 어떻게 하면 무게 중심을 다르게 배치할까, 200g 남짓의 무거운 무게를 최대한 무겁지 않게 느끼도록 만들까를 고민한다. 그렇다면 책은? 현대인들이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책을 들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책조차도 어떻게 하면 더 편안하게, 어떤 상황에서든 읽을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렇게 말하면 책의 내용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말은 아니다. 단지 저울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무게와 그립감 그 어디에서 최적화된 조화를 찾기 위한 저울질이.


 사실 악의는 지금 판본이 최적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장르소설일수록 46판 사이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이 상대적으로 두꺼워져도 필요 이상의 글자가 종이 한 장에 배치되어 독자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면 안 되니까. 장르소설에서 숨 쉴 구간은 작가가 고의적으로 만들지 않고서야 독자 스스로가 만들면 안 되는 부분이니까. 그래서 지난주에 읽었던 '그 개와 같은 말'(임현, 현대문학)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임현의 단편선은 국판의 형태를 띤다. 즉 스스로 숨 쉴 구간과 생각한 시간을 두라는 의미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쉴 부분은 없다. 오로지 챕터와 챕터 사이 그 한 페이지의 틈새에서만 겨우 머리를 내밀고 가쁜 숨을 헐떡일 수 있다.


 악의는 마치 오픈북 테스트처럼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야기를 깔아 놓고, 사건을 보기 좋게 테이블 위에 펼쳐 놓는다. 독자는 그 위에서 핀셋으로 한 챕터 한 챕터를 꽂으며 읽어나간다. 때로는 누군가의 입으로, 때로는 누군가의 글로. 여기서 독자는 한 가지 착각에 빠진다. 화자는 신뢰성을 가진 인물이고, 그의 말은 오로지 참이라는 것. 하지만 화자 또한 독자에게 이 상황을 다양한 방법으로, 또 자신만의 시선으로 이야기해 줄 뿐 신뢰성을 보장받은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신뢰에서 불신으로, 뒤에서 앞으로 넘어오면서 트릭을 하나씩 깨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과연 내가 지난 챕터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어디까지 진실일까. 지난 챕터에서 내게 이야기를 들려줬던 화자는 과연 진실된 인물일까. 나는 어디까지 이 이야기를 믿어야 하고 어디까지 이야기를 걸러 들으면서 전개를 따라가야 할까.


 나는 올드스쿨에 가까운 추리소설만 읽어왔다. 애거서 크리스티, 아서 코난 도일과 같은 이름만 들어도 알고, 오히려 읽어보지 않았다면 "너 추리소설은 제대로 읽어본 거 맞아?"라는 이야기를 들을법한 전설적인 문호들의 소설들만을 말이다. 그 외에는 지난번에 우연히 지원했던 리디에서 시행한 K 스토리 공모전 독자 심사위원당시 읽었던 추리 스릴러나 요네자와 호노부, 미야베 미유키와 같은 작가들의 청춘 추리소설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그렇기에 악의는 내게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의외로 살인 사건의 범인과 범행 방법, 범행 트릭은 책의 중반부쯤에 이미 전부 밝혀진다.


'이미 모든 게 다 밝혀졌는데 왜 150페이지나 남았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모든 범행이 밝혀졌을 때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남은 이야기는 이제 우리가 온 흔적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다. 나는 어디까지 의심하며 글을 읽었을까. 오픈북 테스트는 답이 모두 열려있는 시험이지만 반대로 책을 펼쳐도 틀리는 시험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남은 150페이지는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와 함께하는 답 맞추기 시간이다. 과연 화자가 가지는 신뢰성은 어디까지일까, 범인은 주인공 가가 형사와 우리를 속이기 위해 어디서부터 수를 썼을까, 인간의 밑바닥에서 나오는 감정은 과연 어떤 이유로 터져 나오는 것일까. 나머지는 이 책에서 찾았으면 좋겠다.




 사실 길고 장황하게 썼지만 재밌다는 이야기다.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 용의자 x의 헌신을 제일 좋아했는데 아마 그 1순위가 바뀔 정도로 이번 독서는 즐겁지 않았나 싶다. 이제 다음 책은 독서모임에서 이야기 나눌 책을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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