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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Jan 29. 2023

06. 사회생활하는 대학생 이야기

낡은 게임, 그리고 대항해시대

 게임 시장은 과거 10년간 스타크래프트, 워 크래프트 3가 선두 했고, 현재 10년 동안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가 유행을 이끌고 있다. 이렇게만 정리하면 게임 시장은 굉장히 경직된 시장으로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게임 시장은 다양한 것들에 도전했다. 도전하고 시대를 흔들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런 게임들을 얕게나마 기억한다.


 혹시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알고 있는가? 이렇게만 화두를 던지면 각자 떠올리는 게임이 다를 것이다. 90년도, 00년도에 게임을 즐겼던 사람은 대항해시대 2, 3, 4를 떠올릴 것이고 00년도~10년도에 게임을 즐긴 사람은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모바일게임이 더 익숙한 20년도 게이머들은 최근에 나온 대항해시대 오리진을 떠올릴 것이다.


 대항해시대는 정말 오래된 ip이다. 전 세계를 탐험하고 신대륙을 발견하는, 그리고 동서양의 문화충돌을 가져왔던 그 시대를 로망으로 풀어낸 게임, 나는 대항해시대를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실 꽤나 단순하다. 내가 작년 1년간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꾸준히 즐겼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다른 함선들과 싸우고, 신대륙을 발견하고...... 이렇게 말하면 멋진 게임처럼 들리지만 내가 대항해시대를 작년에 처음 시작했을 때 내가 기억하는 그 추억의 게임은 이미 많이 변해 있었다.


 대다수의 배들은 현대의 순양함마냥 26노트가 넘는 속도로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고 게임 재화의 인플레이션은 가속화되어 게임을 해서 벌어들이는 수입만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배를 구하지 못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는 내가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에도 똑같았는데, 길드원들이 편하게 시작하고 싶으면 2만 원~3만 원 정도 들여서 게임머니를 사고 시작하면 원하는 일정 수준의 배, 일정 수준의 장비를 모두 풀세팅하고 편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이미 어느 정도 수준까지 게임 재화의 가치가 떨어졌는지를 이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 2만 원~3만 원이라는 초기 비용의 이야기를 들으면 "대체 재미가 보장되지도 않은 낡은 게임에 누가 돈부터 쓰고 시작해?"라고 이야기하며 손사래를 칠 것이다. 하지만 난 그 돈을 쓰고 게임에 입문했다. 어린 시절부터 몇 번이나 이 게임을 하면서 전 세계의 바다를 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고, 이미 어른이 된 내게 그 정도 돈은 딱히 큰돈이 아니었으니까. 패키지게임 사듯 추억을 산다고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게임은 어느 순간 추억이 되어 약 1년간 내 여가시간을 담당해주는 게임이 되었다.


 길드원들과 함께한 길드 행사, 밤늦게까지 무역하며 이야기하던 밤들, 때로는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위로가 되었던 날들, 지난 1년은 내 게임 경험에서 행복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게임은 시작이 있다면 끝맺어야 하는 때도 온다. 작년과 올해는 다르다. 언제까지나 군생활을 할 거 같았던 내게도 전역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지금은 전역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매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불안으로 마음은 흔들리지만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시 강하게 잡고 있다. 그리고 시작을 위해서는 잠시 즐겨왔던 것들을 내려놔야 한다.


 매번 여자친구에게 "이 게임 이제 정리하려고."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완전하게 정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깔아놓은 게임을 지우고 새로운 목표에 몰두해보려고 한다. 내가 모든 목표를 이루고 돌아오는 날에도 이 게임이 온전히 살아있기를, 매번 다운로드 받을 때마다 수십 번씩 껐다 켰다를 반복하면서 사람 속을 썩이던 클라이언트가 고쳐지기를, 함께 했던 길드원들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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