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컬하다 : cynical+하다, 냉소적이다, 부정적이다.
체념하다 :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하다.
우리는 시니컬하다는 말을 냉철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던지지만 사태의 논점을 찌르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멋지다는 느낌과 조금의 동경을 담아 건네고는 한다. 그리고 우리는 체념이라는 말을 모든 걸 포기하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던지고는 한다.
둘은 굉장히 멀리 있는 단어 같지만 실제로는 벽 하나만 넘으면 닿을 수 있는 옆집 이웃 같은 단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떠올린 단어는 체념이었다. 시니컬이 아닌 체념. 멋들어지게 눌러쓴 글에는 '그럼에도'라는 일어설 수 있는 단어가 아닌 '어쩔 수 없이'라는 주저앉는 단어가 숨겨진 것처럼 보였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를 떠올렸다.
내가 군생활을 하면서 던졌던 말, 보였던 행동은 시니컬함이었나 체념이었나. 나는 군 정비사, 작가는 경찰 과학수사관. 둘의 공통점이라고는 공무원이라는 점밖에 없는데 왜 나는 글에서 내가 풍겼던 짙은 체념의 냄새를 맡게 되는가. 월급, 식사, 사회적 인식과 현실, 괴로움과 고독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서일까.
처음에는 재밌으리라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몇 권 빌릴 때 '7월 여름 기념, 스산한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이라는 키워드로 이 책을 소개하는 스탠딩 팝을 봤고 관심이 생겨 책장에서 이 책을 찾아 앞부분을 읽었다. 연재 제의를 받았고 즐겁게 연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 1장에서 언덕을 오르며 달동네의 변사체 검식을 위해 돌아다니고, 그 과정에서 들었던 생각들에 대한 이야기. 과연 이 이야기가 스산한 이야기인가, 라는 주제는 둘째 치고도 첫 이야기는 이 책을 들고 갈 이유가 충분했던 이야기였다.
115x200, 핸디북 수준의 크기에 부담이 되는 두께도 아니고, 독서모임 전에 잠깐 짬 내서 읽기에 부담되지 않는 크기여서 이 책도 많은 다른 책들과 함께 집에 입성했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단 하나. 과연 이게 스산한 이야기인가? 오히려 불쾌한 이야기가 아닌가?
어째서 불쾌함이 올라올까 생각했다. 업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공무원이면 하지 말아야 할 생각까지 하고 있어서? 불법 유턴을 하는 차량을 단속할 때 이걸 그냥 봐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같은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이면 해선 안 될 소리를 하면서 나사 빠진 착한 말이나 하고 있어서? 월급, 짬밥, 사회적 인식과 같은 이야기를 꺼내면서 불편하고 슬픈 이야기를 꺼내고 있어서?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이건 동족혐오다. 아니 정확히는 동족이었던 인간을 향한 혐오다. 나도 저런 인간이었어서. 이게 정확한 정답이었다. 내가 군생활을 하면서 병사 때 느꼈던 감정, 하사 때 느꼈던 감정들이 저런 감정들이어서. 그리고 나도 불평을 하면서도 꾸역꾸역 그 생활을 유지해 나가서.
처음 챕터를 읽을 때만 해도 그는 시니컬한 과학수사관으로 비춰진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시니컬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과학수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겠지. 쉽게 상상을 한다. 왜냐하면 프롤로그에서조차 경찰관인 자신을 비추며 이야기를 시작하니까. 하지만 그 시니컬함은 오래가지 못한다. 곧 시니컬함은 체념의 감정으로 바뀌고 자신이 과연 진짜 경찰관인가? 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 만큼 내려놓는 것이 눈에 보이게 된다. 그 감정을 느끼는 순간부터 이 작고 짧은 책은 읽기가 거북해지고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첫 챕터에 비하면 배의 속도로 빨라지게 된다.
경찰관으로 쓰는 마지막 책이라는 광고가 있었다는 리뷰를 본 적이 있다. 아마 다시는 경찰 이야기를 쓰지 않겠다는 문구겠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에 과연 작가는 경찰관을 그만뒀을까? 하고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참고로 나는 군생활을 그만뒀다. 왜냐하면 위에서 이야기했던 월급, 식사, 사회적 인식, 내가 겪는 직업적 고통과 외로움, 시니컬함이 체념으로 바뀌는 과정과 그 사이에서 느끼는 직업적 괴리감까지. 모든 걸 느끼고 내려놨으니까.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궁금증을 더 가지지는 않겠다. 그리고 고맙다는 감정을 느끼지도 않겠다. 작가가 남긴 글을 보면 그 또한 나와 같은 회의감 속에서 살고 있고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해 본질적인 의구심을 품고 있으며 그 역할에 대해서 가끔 혼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하지만 안타깝다는 말은 남길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안타까운 삶을 살았고, 후배들은 안타깝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휘관들과의 소통 시간이면 먼저 머리로 들이박던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후배들은 안타까운 삶을 여전히 살고 있고 결국 모두 군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고 있다. 안타깝지만 경찰도 군인도 소방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모두 이런 괴리감을 품고 사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재미없고 불쾌했다는 점이다. 스산한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 아닌 불쾌함이 담긴 작품이었고 아마 앞으로 읽을 몇 권의 책도 불쾌하고 안타까운 이야기가 담긴 책들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만약 이 서평을 읽게 된다면 어떤 감정을 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불쾌함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기에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는 않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도서관은 스탠드 팝을 만들 때 조금 더 고민하고 고려해서 만들기를 바라고.
무언가 화를 내듯 풀어냈지만 나도 이 책에서 공무원으로 느꼈던 불쾌함을 읽어냈기에 이런 전혀 다른 방향의 공감을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나는 FM에 가까울 정도로 군인이라는 역할에 대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기에 그 불쾌함은 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연재물의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처음과 마지막 이야기는 색채가 전혀 달랐다. 방향성을 잃었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과학수사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5주 주기로 이뤄지는 연재에서 방향성을 찾지 못했는지 나중에는 과학수사관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과학수사관의 이야기를 읽고 싶었던 독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한 실망감으로 올 법한 내용 전개가 아니었을까.
작가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확인해 보니 서울 국제도서전에 북토크로 참가했다고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글을 보는 당시에만 해도 북토크에 참가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책을 덮은 후에는 오히려 그 사실을 몰라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북토크는 커녕 북토크 근처도 가지 않았을 거고 북토크 시간을 고의적으로 피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은 동족혐오에서 나온 원초적인 감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