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01. 괴로움을 회피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
미리 말해두지만, 타고난 생김새와 다르게 나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상처가 제법 두려운 편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면 확실히 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가 몹시 두렵다.
생각만으로도 피곤하고, 또 지친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기억을 떠 올려 본다.
나름 사업을 한답시고 제법 분주하게 뛰어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의 나는 우연한 계기로 분수에 맞지 않는 큰 규모의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는데, 어떻게든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기억이 난다.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과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투자하였다. 평소에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어울리지 않는 명함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한 껏 사업가의 향기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계기가 지극히 단순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의 권유로 행사를 기획하게 된 것이었는데, 그때는 나 스스로도 왜 그런 선택을 했었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당시의 내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상대방의 기대를 저버릴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내 나름의 그럴싸한 핑곗거리가 존재한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는 상태였다. 정확히는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 당최 알 길이 없었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듯했고, 직장을 다니던 상황도 아니었기에 이렇다 할 소속감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누군가의 인정을 통해서 스스로의 부족한 존재감을 충족시키길 내심 기대했었나 보다. 주변의 상황과 나 자신을 끝없이 비교해가며 알량한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즈음, 나를 한껏 치켜세우는 몇 마디의 말에 기대어 내가 가진 능력을 넘어선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된 셈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게 된 것은 행사가 끝나고 난 직후부터다.
그렇게 열심히 사람을 만나고 다녔었지만, 인맥이라고 생각했던 잠깐의 만남은 내 삶에서 그렇게 큰 의미를 차지할 만큼의 성격이 되질 못했다.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와는 별개로 투자한 원금의 절반도 회수하지 못했으며, 표면적으로 행사의 주최는 내가 아니었기에 이다음의 기회를 도모할 입장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실리와 명분 어느 하나도 거머쥐지 못하며 당시에 내가 느꼈던 감정은 허망함이었다. 지금에서야 당시의 과정들이 좋은 경험으로 남았다고는 하지만, 가뜩이나 스스로의 정체성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던 나로선 그렇게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리라 짐작할 따름이다.
이때부터 정확히 1년가량을 지독한 우울감에 빠져 살았다.
주변의 연락과 외부 활동을 모조리 멈춰 버리며 겨우 숨만 붙은 채로 살아가는 일상을 보내게 된 것이다. 어쩌다 다른 사람들의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어차피 나는 뭘 해도 안될 텐데"였다. 태어난 환경이 좋아서, 가지고 있는 능력치가 다르니까, 원래부터 돈이 많던 사람이다, 등등 상대방이 성공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버티고 인내해온 노력의 과정들을 티끌만큼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은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이런 생각에 빗대어 스스로의 현재 상황을 부정하기 바빴다는 것이 지금의 내가 내릴 수 있는 냉정한 결론이다. 애초부터 타인의 인정에 기대는 마음으로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으려 했다는 시작부터가 잘못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러한 사실을 깨우칠 만큼 몸과 마음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고 싶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은 스스로의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절대로 완벽할 수 없는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최근이다. 예상치 못한 행운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준비되지 않은 실패는 빠르게 떨쳐내며 내일을 위한 희망을 발판 삼아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나는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또 감사하다. 이제는 매일같이 글을 쓰면서 희미했던 나의 정체성이 조금씩 선명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여태껏 내가 경험했던 괴로움의 순간들을 무시하고, 부정하며, 덮어버리고, 잊기 위해 소모된 감정의 편린들이 기억 속 신기루처럼 그렇게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은 마음일 따름이다. 그것이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