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03.
매일 같이 글을 쓰는 삶이란, 사실 그렇게 녹록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어느 유명 작가의 경우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하루에 원고지 5매는 써야 한다는 것을 평생의 소명쯤으로 여기고 있다 하더라. 원고지 5매 정도의 분량이라면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겠다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새하얀 종이 위에 스스로가 발가 벗겨진 순간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 기분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일 테니.. 도대체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골머리를 썩여 가며 글을 써야만 하는 것인가. 이런 회의감이 느껴지는 순간을 슬기롭게 잘 넘겨내는 것, 이것이 지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인생 최대의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을 쓰는 일의 하찮음이란, 바로 이런 순간을 의미한다. 남들이 굳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어떻게든 꾸준히 이어가는 것, 당장에 눈에 띄는 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는 것, 내게 주어진 기록하는 삶의 사명을 애써 거부하지 않은 채 덤덤이 받아들일 줄 아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되자, 글을 쓰는 일의 하찮음을 온몸으로 버텨내며 최선을 다하는 지금이 그렇게 썩 나쁘지는 않게 되었다. 하찮게 여겼던 일을 의미 있게 만드는 순간, 내 삶이 풍요롭게 채워지는 것은 에누리 없이 만끽해도 될 일종의 덤인 셈이다. 그리고 지금의 글이 어떤 식으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게 될지는 오직 신께서 결정하실 문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