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그림자

감정 02.

by 진민경

어릴 때는 미처 알 수가 없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 절대적인 사실이 있다. 시간이 지나는 체감 속도란 숫자의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무르익어가는 나이만큼이나 마음의 근육이 탄탄해졌느냐 물어본다면, 이 부분은 여기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환되어야만 한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절대로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며, 상대적으로 젊은 시기일수록 감정의 크기는 훨씬 더 거대하게 다가갈지도 모를 일이다. 나름의 방식으로 이를 표현하자면 "애초에 타고난 마음의 근육이란, 그 형태나 생김새가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사람의 마음이 우리 눈에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란 지극히 드물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마음의 그림자를 알아채는 것이 그렇게 어렵기만 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세상의 이치를 한 번 떠올려 보자. 이는 우리의 몸뚱이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비교해 보아도 애초에 타고난 이치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우리가 평소에 쓰는 말과 행동이야 말로 내 마음의 형태에서 비롯된 그림자의 이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의 글을 쓰는 입장에서 진심으로 더할 나위가 없을 듯하다. 사실 이 글은 스스로에게 되뇌는 독백과도 같은 것인데, 지금보다 조금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하는 마음을 깨우치길 바라며 지금까지의 문장들을 써내려 가고 있었다. 나를 위해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마음의 그림자에서 비롯된 감정의 태초 형태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처음부터 되짚어 보며 이 과정을 유추해 보고자 하는 노력과도 같다.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서는 보통의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마음의 형태란 크게 세 가지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을 듯하다. 마음(心)이란 생각하는 행위 그 자체를 뜻하며, 의식(意識)은 그 마음이 향하는 대상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되는 찰나의 순간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의 정의가 서로 부딪히게 되는 순간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우리는 감정(感情)이라고 표현하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행동으로서 표출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를 두고 정신(精神)의 상태와 고귀함의 높낮이를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과 의식, 그리고 정신이라는 세 가지의 정의를 천천히 곱씹어 본다면 스스로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과거와 미래라는 개념은 전부 다 허상일 뿐, 지금 이곳에서는 우리가 마주하는 찰나의 매 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는 단 하나의 진실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란, 사실은 이처럼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주어진 현실을 있는 힘껏 끌어안으며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후가 될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선택이라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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