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horism 2
자신의 신분이 높음을 내세워서 묻고, 자신의 재능을 내세워서 묻고, 자신의 나이 많음을 내세워서 묻고, 자신의 공로를 내세워서 묻고, 자신이 가르치는 이와 특별한 연고가 있음을 내세워서 묻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답을 하지 않는다.
- 『맹자』-
유명한 가수인 리쌍이 부른 노래 중에 '겸손은 힘들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겸손하게 행동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가사를 지니고 있는 노래입니다. 멜로디나 박자는 흥겨운데 가사는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곡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현대 한국 사회에서 겸손이라는 덕이 매우 하찮게 여겨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겸손이 어쩌다 현대 사회에서 이렇게 가볍게 취급받는 덕이 되었을까요? 저는 겸손이라는 미덕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미덕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겸손이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가볍게 여겨지는 이유를 크게 2가지로 진단합니다.
첫 번째로, 현대 한국 사회는 자기 PR이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현대 한국 사회는 자신의 노력과 의지에 따라 수입을 자유롭게 증가시킬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의 인구가 훨씬 더 많아졌고, 현대인들의 시야는 자기가 사는 지역, 자기가 속한 공동체, 자기가 사는 국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다른 인종, 다른 존재들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넓어졌습니다. 이렇게 범위가 넓어진 현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어 명예를 얻고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수입의 원천을 마련하기 위해서 자기 PR의 필요성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PR을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여 사소한 특징을 부풀리거나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는 일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어떤 재테크 유튜버는 자기 PR과 홍보를 위해 자기의 주식 투자 현황을 공개하면서 본인이 어떠한 특정 종목을 통해 큰 수익을 올리고 있음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종목에 투자하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유튜버의 말을 믿고 그 종목에 투자한 사람들이 크게 손실을 보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물론 주식 투자는 본인의 책임이므로 누구에게 잘못을 묻거나 책임을 전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재테크 유튜버들이 자기가 주식 투자를 통해 얻고 있는 수익을 과장하거나 허위로 조작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과장과 조작을 통해 순진한 사람들로부터 돈과 명예를 얻는 일이 꽤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몇 년 전에 저보다 주식 투자를 먼저 시작했고 수익도 좋았던 친구가 제가 보는 재테크 유튜브를 보지 말고 자기가 추천하는 제태크 유튜브를 보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 저보다 공부도 잘 했고 주식으로 수익을 얻고 있던 친구였기 때문에 넘어갈 뻔했지만, 저는 친구가 추천한 재테크 유튜브를 시청하지 않았습니다. 그 유튜버는 이후 수익 공개와 종목 추천을 통해 주가 조작을 모의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현재는 유튜브 운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에게 그 유튜브 채널을 추천한 친구도 만나면 주식 이야기만 늘어놓았는데, 몇 년째 주식 이야기를 하지 않네요. 어떤 사람이 자기 자랑을 지나치게 하지 않고 얼마나 겸손한지를 보면 그 사람이 거짓말을 적게 하고 진실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겸손하지 못하면 지나치게 거짓말을 하게 되고, 지나치게 거짓말을 하게 되면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저는 교사이기 때문에 공교육 정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사교육 시장이 크게 형성되어 수험생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나라를 찾기 어렵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이 교사를 무시하고 태블릿을 통해 인터넷 강사의 사교육 강의를 듣고, 인터넷 강사의 책을 들고 와서 시험 문제에 불손하게 항의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시험 문제에 항의하는 것 자체가 불손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 강사의 말이 무조건 맞다고 믿으면서 항의하는 것이 불손하다는 의미입니다). 공교육이 무시받는 이유 중에는 공교육 현장에 있는 학교 교사들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저도 교사로서 근무하면서 교재 연구, 수업 연구에 태만하여 학생들에게 무시받을 수밖에 없는 교사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의 화살을 공교육 현장에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인터넷 강사나 사교육 관련 종사자가 홍보와 자기 PR을 적극적으로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본인의 강의가 최고의 강의이고 본인이 집필한 교재가 최고의 교재이고 무결점이며 수능 문항 대부분을 적중했다고 과장해서 홍보하니 그런 것들의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세뇌당하고 사교육에 크게 의존하면서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사실입니다. 학생들은 지식뿐만 아니라 인성을 배워야 하는데,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한국 사회에서 사교육이 겸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태도로 학생들을 현혹하고 속이는 경우가 많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처럼 현대 사회는 자기 PR의 시대라고 하지만, 지나친 자기 PR은 수많은 거짓말을 낳게 되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은 절대 겸손할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로, 사회성을 잃고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현대 사회는 과거보다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 많이 확산되어 있습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 겸손을 통한 관계 형성을 중시하지 않고 자기애에 빠져 자기가 무조건 옳고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나르시시즘에 빠진 나르시시스트라고 이야기합니다. 최근 나르시시즘, 나르시시스트를 언급하는 인문학 도서나 자기 계발서들이 많아진 것에서 알 수 있듯,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잘못된 자기애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르시시즘, 나르시시스트가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겸손이 부족한 사람들, 그리고 겸손을 경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근무했던 고등학교에 범상치 않은 보건교사가 있었습니다. 항상 혼자 다니고 다른 교사들과 이야기도 잘 나누지 않아서 처음에는 '불쌍하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그 사람이 왜 혼자 다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강남 대치동에 사는 부유층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하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더군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교사들에게 "결혼하면 집은 어디에 마련할 거야? 당연히 강남에 마련해야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약 올리는 듯한 말투는 덤이었습니다). 이 교사와 같이 학교생활을 할 당시에는 코로나가 발병한 시기여서 제가 맡은 담임 학급 학생들이 해외로 출국하면 보건 교사에게 이야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맡은 반에 한국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고 학교도 거의 나오지 않는데 일본 대학의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있었고, 이 학생이 담임교사인 저에게 어떠한 언급도 없이 일본 대학 입시 시험을 보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습니다. 원래 학교를 잘 나오지 않아 해외 출국 사실을 담임선생님에게 알려야 한다는 개념이 없는 학생이었고, 그 학생의 부모도 새벽 3시~4시에 담임교사에게 카톡을 보내서 본인들의 궁금한 것을 물어볼 정도로 예의가 없고 자기들 일정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이가 왜 그렇게 자랐고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 보건 교사가 저도 몰랐던 우리 반 학생의 일본 출국 사실을 알자마자 그걸 왜 자기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냐며 노발대발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그 아이와 학부모에게 시달린 것도 억울한데 이런 일까지 겹쳐 더 화가 났지만 죄송하다고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그 보건 교사는 계속해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고, 저도 더 이상 참기 어려워서 그 보건 교사와 대면하여 서로 화를 내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 보건 교사는 "나는 유능하고 실수가 없는 사람인데, 자꾸 담임교사들이 실수를 해서 나에게 혼나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어이가 없어서 몇 번 화를 내다가 나왔습니다. 어떤 교사가 다른 교사들을 혼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황당한 경우를 처음 봤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이후에 보건 교사는 제가 남교사라서 때리려는 시늉을 하면서 자기를 협박하고 위협했다며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교장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시늉을 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교장과 교감이 동석하여 상호 사과를 위한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었고, 저는 이런 나르시시스트와 엮이고 싶지 않아서 그냥 "죄송합니다"라고 했지만, 그 보건 교사는 끝까지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고 "이런 일이 벌어져서 유감이네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유감'이라는 말을 매우 싫어합니다. 과거에 북한의 포격으로 인해 우리나라 장병들이 사망하거나 다쳤을 때 북한의 지도자가 사과하기 싫고 자존심 상해서 끝까지 사과를 회피하면서 하는 말이 '유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보건 교사는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 전혀 없이 '유감'이라는 말만 하면서 제 사과를 받은 것에 흡족해했습니다.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사과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유감'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겸손의 미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죠.
같이 근무한 1년 동안 저는 그 보건 교사가 유능하고 일을 잘 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오히려 일을 너무 못하는데 독선적이기까지 해서 엮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주변 교사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만 가득했던 사람이 저에게 사과를 받지 못하면 신고하겠다며 교장과 교감한테 난리를 치고, 교장과 교감이 설설 기면서 저에게 사과를 종용하는 모습을 보니 주변 사람들과 사회가 나르시시스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해주지 않고 고쳐주지 않은 채 주변 사람들의 인내만 요구하기 때문에 점점 나르시시스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행동은 부차적인 원인일 뿐 보건 교사가 그러한 행동을 근본적인 이유는 그 사람의 그릇된 인성과 겸손 부족입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자연적 우연성(타고난 재능 등)과 사회적 우연성(사회적 지위 등)에 대해서 개인이 응분의 자격을 지닐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의사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공부에 유리한 재능을 타고났을 가능성이 높고, 부모님이 의사라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지니고 있으므로 성장 과정에서 유복한 환경에서 존중받으면서 자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롤스는 그 요소들에 대한 응분의 자격이 없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세요. 내가 지닌 재능, 소유하고 있는 돈, 맛있는 식사, 편하게 살고 있는 집, 심지어 자기가 가진 원만한 성품과 인성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타고난 능력이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사회적 지위, 주변의 도움이나 환경의 영향 등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본인이 이룬 것에 대해서 "이건 순전히 내가 노력해서 얻은 거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은 본인의 노력 없이 이룰 수 없었던 것을 순전히 본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인간이 이루고 성취해 낸 것들은 100% 자기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의 영향과 도움을 받아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들입니다.
존 롤스가 겸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은 아니고 사회 정의를 논하는 차원에서 이야기한 내용이지만, 존 롤스의 주장에서 내가 소유한 것들에 대해서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보건 교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보건 교사의 월급으로는 절대 강남에 있는 집을 살 수가 없습니다. 본인이 강남에 있는 집에 살 수 있는 이유는 남편 덕분이었던 것인지, 남편 자랑과 아들 자랑을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본인이 남편 덕에 지금의 지위와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동등한 지위에 있는 교사를 혼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한 이 보건 교사는 나르시시스트이면서 겸손하지 못한 사람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가진 집, 차, 지위 등은 오로지 본인의 노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도움, 자연적 우연성과 사회적 우연성의 영향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보건 교사가 이를 알았다면 다른 교사들은 나한테 혼나야 한다며 소리 지르고 노발대발 화를 내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겸손은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합니다. 대화를 할 때 자기 자랑과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들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과는 서로 존중하는 인간관계를 만들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겸손을 매우 중시하였고, 발해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거나 우리나라에 유교가 깊이 뿌리 박힐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가 겸손을 중시한 것과 절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겸손은 못난 사람들이나 지니는 덕이 되어 버렸습니다. 많은 힙합 가수들은 온갖 욕설들을 사용하면서 자기가 가진 돈과 명품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을 자신의 가장 본질적인 정체성으로 간주합니다. 많은 격투기 선수들은 온갖 욕설과 인신공격으로 상대방을 도발하고 항상 자기가 이길 것이라고 과시하는 것을 대회 홍보의 수단으로 삼습니다. 자극적인 것을 선호하는 대중들을 타깃으로 삼아 겸손의 미덕을 저버리는 이러한 행위들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겸손의 미덕은 한 사람의 인성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지나치게 자기를 낮추고 비하하는 것은 옳지 않고 겸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감을 기반으로 형성됩니다. 자신감을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알리고 높이기 위해 자기 자랑이나 과시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내적인 자신감 때문에 외부에 자기 자랑과 과시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게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자기 비하와 자기부정을 겸손으로 착각하여 '죄송합니다' 혹은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거나 어떤 일에 직면해서든 희생하려고 하는 것은 겸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1. 지나친 자기 PR과 자기애는 반드시 거짓말을 수반한다.
겸손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거나 자기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
2.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은 주변의 도움이나 영향 덕분이다.
나의 노력만으로 현재의 내가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3. 지나친 자기 비하와 자기부정은 겸손이 아니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감으로부터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