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퀴나스: 동물은 신의 영원법에 참여할 수 있는가?

윤리와사상 2024년 10월 모의고사 문항과 인강 강사 문항의 충돌

by cusp

안녕하세요. 이 글에서는 윤리 과목의 어떤 인터넷 강의 강사가 출제한 문항과 충돌하는 2024년 10월 교육청 모의고사 윤리와사상 문항의 내용을 살펴보고, 인터넷 강의 강사가 출제한 문항과 교육청 모의고사 문항 중에 어떤 문항이 오류가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윤리 인강 강사 중 인지도가 높은 어떤 강사가 출제한 중세 스콜라철학 사상가 아퀴나스 문항 중에 "비이성적 피조물은 영원법에 참여하지도 법을 갖지도 않는다."라는 선지가 있는데, 이 선지는 2024년 10월 교육청 모의고사에서 아퀴나스의 입장으로 출제된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신의 영원법에 참여할 수 있다."라는 선지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2024년 10월 교육청 모의고사 윤리와사상 7번 문항의 ③번 선지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신의 영원법에 참여할 수 있다."라는 선지가 출제되었으며, 이 선지가 아퀴나스의 입장에서 맞는 선지로 출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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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이 작성한 해설에도 아퀴나스는 동식물이 신의 영원법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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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어떤 윤리 인강 강사는 "비이성적 피조물은 영원법에 참여하지도 법을 갖지도 않는다."라는 선지를 출제하고, 이 선지를 아퀴나스의 입장으로 맞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인강 강사는 해설에서 "아퀴나스는 비이성적 피조물은 영원법에 참여한다기보다 유사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아퀴나스는 비이성적 피조물은 영원법에 참여한다고 하지 않고, 또 법을 갖는다고 하지도 않는다고 보았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저작권법 준수를 위해 공적으로 공개된 모의고사 문항처럼 캡처 이미지를 올리지 않고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아퀴나스는 영원법에 대해 '신의 예지와 의지로 창조되고 정립된 영원불변하는 질서와 법칙', '피조물에 대한 신의 영원한 계획'으로 규정합니다. 또한 아퀴나스는 이러한 신의 영원법이 모든 사물의 본성과 인간의 자연적 성향에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이러한 신의 영원법은 그 자체로 세계를 지배하는 신의 섭리이고 세계는 영원법에 의해 다스려집니다. 이러한 영원법에 의해 동물은 자기 보존의 성향과 종족 보존의 성향이라는 본능을 갖게 되죠. 그렇다면 아퀴나스의 입장에서 과연 이성적 피조물인 인간뿐만 아니라 비이성적 피조물인 동물도 영원법에 참여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원전을 잘 찾아보면 교육청 모의고사 문항과 인강 강사가 출제한 문항의 충돌이 쉽게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인강 강사는 아퀴나스가 저술한 가장 대표적인 저작인 <신학 대전>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고 문항을 출제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Even irrational animals partake in their own way of the Eternal Reason, just as the rational creature does. But because the rational creature partakes thereof in an intellectual and rational manner, therefore the participation of the eternal law in the rational creature is properly called a law, since a law is something pertaining to reason, as stated above. Irrational creatures, however, do not partake thereof in a rational manner, wherefore there is no participation of the eternal law in them, except by way of similitude.


- 아퀴나스, <신학 대전> 영문판 -


마지막 문장을 보면 "Irrational creatures, however, do not partake thereof in a rational manner, wherefore there is no participation of the eternal law in them, except by way of similitude."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아마 인강 강사는 이 문장을 동물과 같은 비이성적 피조물(Irrational creatures)이 영원법에 참여할 수 없다(wherefore there is no participation of the eternal law in them)고 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인강 강사는 비이성적 피조물이 영원법에 참여한다기보다 유사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except by way of similitude)고 해설을 작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에는 다소 오류가 있습니다. 이 구절은 동물을 포함한 비이성적 피조물이 아예 영원법에 참여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방식으로 영원법에 참여할 수는 없어도 유사한 방식으로는 영원법에 참여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심지어 아퀴나스는 방금 소개한 구절의 바로 앞에서 영원법의 지배를 받는 모든 사물이 영원법에 일정한 방식으로 참여한다고 명확하게 주장합니다.


I answer that, As stated above, law, being a rule and measure, can be in a person in two ways: in one way, as in him that rules and measures; in another way, as in that which is ruled and measured, since a thing is ruled and measured, in so far as it partakes of the rule or measure. Wherefore, since all things subject to Divine providence are ruled and measured by the eternal law, as was stated above; it is evident that all things partake somewhat of the eternal law, in so far as, namely, from its being imprinted on them, they derive their respective inclinations to their proper acts and ends. Now among all others, the rational creature is subject to Divine providence in the most excellent way, in so far as it partakes of a share of providence, by being provident both for itself and for others. Wherefore it has a share of the Eternal Reason, whereby it has a natural inclination to its proper act and end: and this participation of the eternal law in the rational creature is called the natural law.
- 아퀴나스, <신학 대전> 영문판 -


이 구절은 아까 소개한 구절의 바로 앞에 있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영원법과 자연법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아퀴나스가 언급하는 문장인데요. 이 구절에서 아퀴나스는 모든 사물이 영원법에 참여한다(it is evident that all things partake somewhat of the eternal law)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마 교육청 모의고사를 출제한 분들은 아퀴나스의 이러한 주장을 참고하여 문항을 출제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리하면, 아퀴나스는 인간과 같은 이성적 피조물뿐만 아니라 동물을 포함한 비이성적 피조물 또한 영원법에 일정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보며, 다만 비이성적 피조물은 영원법에 이성적인 방식으로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비이성적 피조물의 영원법에 대한 참여를 '법'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즉, 영원법에 대한 인간 이성의 참여는 '자연법'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영원법에 대한 비이성적 피조물의 참여는 어떠한 법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2024년 10월 교육청 모의고사의 아퀴나스 문항은 오류가 없고 인강 강사가 출제한 아퀴나스 문항은 명백하게 오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오류 없이 올바른 지식을 갖고 문항을 풀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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