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아타락시아는 신체의 고통이 없는 상태인가?

aporia

by cusp

현재 고등학교 윤리와사상 교육과정에서 고대 쾌락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에피쿠로스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에피쿠로스가 주장한 여러 가지 개념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교육과정에서도 크게 강조하고 있는 개념이 바로 아타락시아(ataraxia)입니다. 대부분의 윤리와사상 교과서에는 에피쿠로스가 주장한 아타락시아가 신체의 고통이 없고 마음의 불안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아타락시아에 대한 윤리와사상 교과서들의 서술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해보려 합니다.


우선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 개념을 신체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불안이 없는 상태로 제시한 윤리와사상 교과서 및 지도서의 서술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에피쿠로스는 몸의 고통과 마음의 불안이 모두 소멸한 상태가 지속됨으로써 주어지는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였다. 그러한 상태가 평정심(平靜心), 즉 아타락시아(ataraxia)이다.
- 미래엔 윤리와사상 교과서 -


이처럼 지혜를 통해 마음에 불안이 없고 육체에 고통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에피쿠로스학파가 지향한 쾌락주의의 이상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평정심의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불렀다.
- 비상교육 윤리와사상 교과서 -


아타락시아(ataraxia): 마음속에 혼란이나 고통이 없는 평정심을 말한다. 에피쿠로스학파에서 신체의 고통이나 영혼의 혼란은 불행의 원인이다. 이것으로부터의 자유가 행복을 만들어내고 행복은 인간의 최고의 목표이다.
- 씨마스 윤리와사상 교과서 -


에피쿠로스학파가 중시하는 쾌락은 몸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불안이 없는 평온함이다. 이러한 상태를 평정심, 즉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한다.
- 천재교육 윤리와사상 교과서 -

평정심(아타락시아): 몸의 고통과 마음의 불안이 모두 소멸한 상태가 지속됨으로써 주어지는 정신적 쾌락
- 미래엔 윤리와사상 지도서 -

아타락시아: 에피쿠로스학파가 지향한 쾌락주의의 이상으로, 이성과 지혜를 통해 마음과 육체의 고통을 제거한 평정심 상태
- 비상교육 윤리와사상 지도서 -


아타락시아: 내면의 욕구를 절제하여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불안이 없는 평온한 마음의 상태(평정심)
- 씨마스 윤리와사상 지도서 -


아타락시아(평정심): 몸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불안이 없는 평온함
- 천재교육 윤리와사상 지도서 -


현재 윤리와사상 교과서 및 지도서 5종 중 4종은 모두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 개념이 육체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불안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에피쿠로스가 제시하는 아타락시아 개념이 마음에 불안이 없는 평정심의 상태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육체에 고통이 없는 상태까지 포함하는지는 더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원전을 보면, 에피쿠로스는 마음에 불안이 없는 상태로서의 평정심[ataraxia]와 육체에 고통이 없는 상태[aponia]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이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타락시아뿐만 아니라 아포니아가 필요하며, 신체에 고통이 없는 상태는 아포니아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즉, 아타락시아는 신체에 고통이 없는 상태를 포함하는 개념이 아니라, 아타락시아는 마음에 불안이 없음을 가리키고, 아포니아는 신체에 고통이 없음을 가리킵니다. 에피쿠로스 원전(<쾌락>, 오유석 옮김) 및 이 원전에 있는 주석에서 아타락시아와 아포니아의 분명한 구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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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인용한 원전 부분을 보면, 에피쿠로스는 마음의 동요가 없음(ataraxia)과 몸의 고통이 없음(aponia)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과서에서 아타락시아를 마음에 불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신체에 고통까지 없는 것이라고 서술한 부분은 오류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인용한 원전 부분을 보면, 주석에 에피쿠로스가 인간의 인생의 목적을 아포니아와 아타락시아 2가지로 제시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아포니아가 단순히 아타락시아에 포함되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 인생의 목적으로서 동등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마 에피쿠로스는 아타락시아의 상태를 삶의 목적으로 추구했고, 이러한 아타락시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불안이 없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신체에 고통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교과서의 아타락시아 의미 규정은 큰 문제가 없다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에피쿠로스가 아타락시아와 아포니아를 원전에서 명확하게 구분하면서 제시한 것은 사실이며, 우리는 어떤 철학자가 하지도 않은 말이나 제시하지도 않은 해석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철학자의 사상을 해석할 것이 아니라, 철학자가 직접 한 말이나 기록한 내용을 사실에 기반하여 해석함으로써 학생들에게 교육과정으로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쉽게 설명한 해설서나 논문도 아포니아와 아타락시아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 개념과 관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각적으로 즐기는 삶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왜냐하면 에피쿠로스는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메노이케우스는 에피쿠로스와 동시대의 철학자였다) "쾌락이 목적이라고 말할 때의 쾌락은 방탕한 사람의 쾌락이나 일상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의 쾌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아포니아, aponia)와 '영혼의 혼란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아타락시아, ataraxia)를 의미한다. (중략) 그러나 동적 쾌락과 정적 쾌락의 구별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 구별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정적 쾌락을 구성하고 있는 아타락시아와 아포니아를 최고선으로서 간주했다는 사실이다.
- 전재원, <쾌락에 대하여> -


셋째로, 쾌락의 목적은 무욕(無慾)이며, 고통이 없음(aponia)과 영혼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에 있다. 넷째로, 인간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야만 한다. 에피쿠로스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쾌락을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쾌락으로 구분한다.
- 임성철, [에피쿠로스 윤리 사상의 근간에 나타난 자기 추구의 윤리학으로서의 철학 실천에 관하여] -



에피쿠로스가 원전에서 아포니아와 아타락시아를 명확하게 구분했고, 아타락시아가 아포니아를 포함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는 점을 고려할 때, 교과서에서 아타락시아를 마음에 불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신체에 고통까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서술한 점은 오류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수정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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