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성품의 탁월성은 악덕의 중용인가?

aporia // EBS 연계교재 오류 돌아보기

by cusp

EBS는 매년 수능 연계교재로 수능특강, 수능완성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재들에서 학문적, 논리적 오류가 심심찮게 발견됩니다. 저도 직업 생활을 하고, 다른 책들도 읽고, 취미생활도 하느라 EBS 연계교재에 있는 오류들을 모두 언급할 수는 없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하나하나 오류를 점검하는 글을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EBS 연계교재는 전국의 수험생들이 참고하는 교재이고 그 내용이 수능에 간접적으로 반영되므로 학문적, 논리적 오류가 없이 깔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올해 출판된 2026학년도 수능특강 윤리와사상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묻는 다음과 같은 선지가 출제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용기는 비겁과 만용의 중용에 해당하는 덕이다.(O)
- <2026학년도 수능특강 윤리와사상> -


이 선지가 맞는 이유로 해설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는 비겁과 만용 사이에 존재하는 덕이라고 보았다.
- <2026학년도 수능특강 윤리와사상 해설> -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선지와 해설 간에 어떤 불일치가 있는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철학적 지식이 풍부하고 언어적 감각이 있으신 분이라면, 선지는 '비겁과 만용의 중용에~'라고 서술되어 있고 해설은 '비겁과 만용 사이에~'라고 서술되어 있어서 철학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음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해설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 혹은 탁월성을 지적인 탁월성(지적인 덕)과 성품의 탁월성(도덕적 덕)으로 나누는데, 위 선지에서 이야기하는 용기는 성품의 탁월성에 해당하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성품의 탁월성을 악덕과 악덕 사이에 있는 중용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해서 성격적 탁월성(성품의 탁월성)이 중용이라는 것과 또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지에 대해, 그리고 중용은 두 악덕, 즉 지나침에 따른 악덕과 모자람에 따른 악덕 사이의 중용이라는 점을, 또 탁월성이 이러한 것인 까닭은 감정과 행위 안에 있는 중간을 겨냥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충분히 논의했다. 이런 까닭에 신실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


비겁은 대담함이 모자란 것이므로 '모자람에 따른 악덕'이며, 만용은 대담함이 지나친 것이므로 '지나침에 따른 악덕'입니다. 이러한 두 악덕 사이에 존재하는 중용이 바로 용기이며, 이 용기는 대담함이라는 감정 및 행위와 관련된 성품의 탁월성에 해당합니다. 아마도 EBS 연계교재의 해설은 이 점을 출제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전 내용과 EBS 연계교재의 해설 내용은 선지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용기는 비겁과 만용 사이에 존재하는 중용이며 덕일뿐, 비겁과 만용의 중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에 지나침과 모자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나침에 따른 악덕과 모자람에 따른 악덕에는 중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논리에서, 지나침에 따른 악덕에는 지나침과 모자람이 존재하지 않고, 모자람에 따른 악덕에도 지나침과 모자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런 것들에도 중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정의한 행위, 비겁한 행위, 무절제한 행위와 관련해서도 중용과 지나침과 모자람이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가면 지나침과 모자람의 중용도 있고 지나침의 지나침, 모자람의 모자람도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간적인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극단이기 때문에) 절제와 용기의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앞에서 언급한 것들의 중용도 없고, 지나침이나 모자람도 없으며,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그렇게 행위를 하기만 하면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지나침과 모자람의 중용도 없고, 중용의 지나침이나 모자람도 없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서 중용은 곧 덕으로, 지나침과 모자람은 곧 악덕으로 연결됩니다. 중용이 악덕이 될 수 없고 지나침과 모자람이 덕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용에는 악덕으로 연결되는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으며, 지나침과 모자람에는 덕으로 연결되는 중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모자람에 따른 악덕에 해당하는 비겁에 지나침을 첨가한다고 하여 중용에 해당하는 용기가 되지 않으며, 지나침에 따른 악덕에 해당하는 만용에 모자람을 첨가한다고 하여 중용에 해당하는 용기가 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중용의 지나침과 모자람은 존재하지 않고, 지나침에 따른 악덕과 모자람에 따른 악덕의 중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EBS 연계교재의 선지, 즉 "용기는 비겁과 만용의 중용에 해당하는 덕이다."라는 내용의 선지는 EBS의 주장에 의하면 맞는 선지이지만, 학술적으로 보았을 때는 틀린 선지입니다. 따라서 EBS가 오류인 선지를 출제한 것입니다.


지나침, 모자람, 중용은 성품의 탁월성, 모자람에 따른 악덕, 지나침에 따른 악덕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비겁과 만용에는 중용이 없습니다. 지나침, 모자람, 중용은 성품의 탁월성, 모자람에 따른 악덕, 지나침에 따른 악덕에 존재하지 않고 감정과 행동 속에 존재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담함이라는 감정 및 행동이 지나치면 만용, 적절하면 용기, 모자라면 비겁이 됩니다. 즐거움이라는 감정 및 행동이 지나치면 무절제, 적절하면 절제, 모자라면 목석같음이 됩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지나침에 따른 악덕의 중용', '모자람에 따른 악덕의 중용'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담함의 중용', '즐거움의 중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는 EBS 연계교재의 명백한 오류로 보이지만, 제가 따로 EBS에 이의신청을 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EBS 교재 집필진이 지극히 방어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지닌 조직이라(오류 이의신청이 통과되면 페널티를 받는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네요) 종종 비논리적이고 해괴한 논리로 정당한 이의신청을 반려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의신청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EBS 연계교재의 공공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은데 종종 오류가 발생한다는 사실, 그 오류를 이의신청하면 꽤 자주 궤변에 의거하여 반려한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말할 때 조심해야 할 요소 4가지(feat. 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