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horism 7 // 교사일기
맹자는 공자와 함께 유교를 대표하는 사상가입니다. 맹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인에게서 배웠다고 하며, 송나라 시대의 성리학자 주희는 맹자가 공자의 적통을 이은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유교 사상과 유교 사상가들을 좋아하지 않고 사상적, 철학적으로도 유교 사상이 엄밀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유교 사상을 포함하여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 사상가들의 주장은 실천적인 부분이 강하여 현대인들이 보아도 삶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삶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제자백가 사상가들의 주장 중에서 말[言]에 관한 맹자의 주장을 다루어보려 합니다.
맹자는 부동심, 즉 일에 임하여 두려워하고 의혹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부동심을 지니기 위해서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지언(知言)을 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지언은 어떠한 말이 세상의 도와 사람의 마음을 해치지 않는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맹자는 지언을 통해 세상의 도와 사람의 마음을 해치는 말이 4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맹자가 제시한 이 4가지는 우리가 현대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서도 말할 때 조심하고 경계하여 범하지 말아야 할 요소이기도 합니다.
맹자가 주장한 말할 때 조심해야 할 요소 4가지를 제가 교사로서 직면했던 상황에 빗대어 쉽게 설명해보려 합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담임교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 중에는 어떤 말과 행동이 선하고 바람직한 것이고, 어떤 말과 행동이 악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개념이 없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개념이 없는 정도가 심하고 장난기가 과한 남학생이 한 명 있는데, 이 학생이 제대로 씻지 않고 학교에 등교하는 경우가 많아 머리에 비듬이 많고 악취도 심합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자기 머리를 긁어서 나온 비듬을 여학생이 마시는 물통에 묻혔고, 이에 대해서 여학생이 사과를 요구하자 "어쩌라고~"라고 말하면서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주변에 목격자 학생이 많았고 심지어 목격자 중에는 동료 선생님도 계셨으며 여학생이 이 일에 대해서 매우 불쾌해했고, 혐오스러움을 표현하는 여학생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여 가해자 학생 및 가해자 학생의 부모와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아무리 이타적인 삶을 살고 배려가 충만한 사람이어도 전 생애를 걸쳐 자기보다 타인에게 관심을 더 쏟지는 않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이타적인 삶을 살고 배려가 충만한 사람은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 자기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며 따라서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도 곧 이기적인 동기에서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고 보는 이론도 있습니다.
인간은 보통 관심의 초점이 타인보다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말을 할 때에도 자기의 관점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부모는 보통 자기 자식의 관점에서 생각을 하지 타인 혹은 다른 학생의 관점에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여학생의 물통에 비듬을 묻힌 남학생의 부모와 상담을 진행하였는데 듣자마자 저에게 화를 내더군요. 저는 누가 봐도 누가 들어도 자기 자식이 가해자이고, 자기 자식이 피해자 학생의 입장에서 충분히 화낼 만하고 혐오스러워할 만한 행동을 했는데 왜 화를 내는 것인지 의아했습니다. 그 학부모는 "왜 자꾸 피해자 학생이 당한 것만 이야기하시나요? 우리 아이의 마음은 알아주지 않으시나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평소에도 비위생적이고 잘 씻지도 않는 학생이 성별이 다른 친구에게 자기의 비듬을 묻히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고, 이러한 행동을 다시는 하지 못하도록 교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가해자 학생의 어떤 마음을 알아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어떤 부모이든 남의 자식보다 자기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당연히 더 클 수밖에 없지만, 자기 자식을 더 올바른 존재로 교육하기 위해서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에는 자기 자식을 더 크게 질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이 상황을 목격한 학생들이 많았고 그 학생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이 사건을 조사했기 때문에 제가 과장하거나 오해했을 가능성도 없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학생이 받은 피해와 상처, 당황스러웠을 감정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담임교사가 피해 상황을 과장하고 가해자 학생을 편파적으로 미워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가해자 학생이 전적으로 잘못했고 피해자 학생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가해자인 자기 자식을 편드는 가해자 학생의 부모의 말은 전형적으로 맹자가 말하는 피사에 해당합니다.
인간은 말을 할 때 자기가 처한 상황, 겪었던 상황을 조금씩 과장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자기가 불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대부분 정직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거짓으로 변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은 하루에도 수십 개의 과장된 말이나 거짓말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이 어떠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거나 곤궁한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학생의 물통에 비듬을 묻힌 가해자 학생은 처음에 피해 여학생에게 사과를 했다고 거짓말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학생은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하였고 이 상황을 목격한 학생들도 사과는 없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목격자들의 진술과 너무 다르다고 말하니 결국 가해자 학생은 사과한 적이 없었고 "어쩌라고~"라는 말로 오히려 피해자 학생을 도발했음을 인정했습니다. 평소 가해자 학생은 잘못을 했다가 적발되면 거짓말로 둘러댄 적이 많아서 이를 가해자 학생의 부모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 학생의 부모에게 돌아온 대답은 "왜 우리 아이를 추궁하셨어요? 선생님의 추궁이 우리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을 텐데, 교육자라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였습니다. 추궁의 사전적 의미는 '잘못한 일에 대하여 엄하게 따져서 밝힘'입니다. 즉, 추궁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닌 용어가 아니며, 평소에 씻지도 않은 상태로 등교하면서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비듬을 다른 학생의 물통에 묻힌 비위생적이고 비상식적이고 비사회적인 행동을 했으면서도 거짓말로 변명하는 학생에게 교사가 할 수 있는 합당한 지도입니다. 그럼에도 가해자 학생의 부모는 추궁의 의미를 왜곡하고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진 것으로 과장하여 교사가 학생에게 추궁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그러한 추궁이 자기 자식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이라고 과장함으로써 저의 생활지도를 폄하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사가 비행을 한 학생을 생활지도하면서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기 위해 쩔쩔매야 하는 것일까요? 교사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학생들이 교사의 생활지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일까요? 자기 자식은 절대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 학부모의 생각이 매우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면서 상처를 주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상처를 받았다는 것의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기도 하고 정당한 훈계와 지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상처도 있기 마련입니다. 또한 자기 자식이 직접 자기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저도 담임교사로서 직 사안 조사를 했다는 것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근거로 자기 자식이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고 과장된 판단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가해자 학생이 피해자 학생에게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도발했으면서 사과했다고 교사에게 거짓말하는 것, 교사가 사안 조사를 하고 정당한 생활지도를 했을 뿐인데 이것이 자기 자식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이라고 과장하고 왜곡하는 것은 맹자가 말하는 음사에 해당합니다.
사실 이 학부모는 이전에도 저에게 거짓말을 했다가 사과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가해자 학생은 평소에도 늦잠으로 인해 지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어느 날은 등교 시간보다 1시간 늦게 왔는데, 엄마가 술 마시고 계단에서 넘어져 응급실을 가게 되어서 자기가 보호자 자격으로 응급실 차에 함께 탑승하느라 늦었다고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이 학교도 안 오고 보호자 자격으로 응급실 차에 탑승했다는 것이 의심스러웠으나 처음에는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으로 넘어갔습니다. 며칠 후에 이 학생은 또 등교 시간보다 1시간 늦게 왔는데, 아파서 병원을 갔다 오느라 늦게 왔다고 했습니다. 아파서 병원을 갔다 오느라 학교에 늦게 등교하게 되면, 학교 규정상 담임교사에게 휴대폰으로 연락을 한 후에 갔다 오게 되어 있는데 저는 이 학생으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왜 담임교사에게 말도 안 하고 병원을 갔다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학생은 사실 병원을 갔다 오지 않았고, 늦잠을 자서 학교에 늦었는데 선생님에게 혼나는 것을 막기 위해 병원을 갔다 왔다고 거짓말하라고 엄마가 조언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시에 바로 학부모에게 전화를 해서 이러한 비상식적인 조언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 학부모는 자기 자식이 혼나는 것이 너무 싫어서 그렇게 했다고 실토했습니다. 늦잠을 자서 지각을 했으면 교사의 정당한 훈계와 지도를 받으면 됩니다. 자기 자식이 그러한 최소한의 훈계와 지도조차 받는 것도 싫어서 직접 교사에게 거짓말하라고 이야기한 사람의 자식을 저도 더 이상 지도하고 싶지 않더군요. 맹자는 말을 함에 있어서 이러한 음사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음사는 습관이고 이를 자기 수양을 통해서 고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그래서 허언증이라는 말이 유행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비록 동물이나 식물과 달리 사유하는 이성을 지닌 존재이지만, 사악하고 옳지 않은 생각, 사악하고 옳지 않은 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악하고 옳지 않은 생각과 말은 아직 행동 혹은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았고, 따라서 그러한 생각과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책임감 혹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직접적인 행동 혹은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았더라도 옳지 않은 생각과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쾌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해자 학생에게 잘못을 했을 때에는 사과를 하고 본인의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러한 잘못을 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가해자 학생은 "돈을 물어줘야 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돈이 없으면?"이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가해자 학생은 "감옥을 가면 돼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잘못이 뭔지, 자기 행동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제 앞에서 직접 자기 머리에 있는 비듬을 먹는 시범을 보였습니다. 얘는 얼마나 가정교육을 형편없게 받았길래 이 모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막힌 상황을 가해자 학생의 부모에게 이야기하니 그 부모는 "우리 애가 그런 말과 행동을 했을 리가 없다.", "집에서는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나 선생님이 잘못 본 거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이런 말과 행동을 한 것이 전부 사실이고, 가정과 학교에서 같이 교육해야 교정이 이루어질 수 있으니 집에서 지도를 해달라고 이야기하였으나 그 부모는 "물통에 비듬을 묻힌 행위는 통상적인 장난의 범위에 속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사실상 지도를 거부하였고, "오늘이 금요일인데, 나는 이런 일로 우리 아이의 주말을 망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자식을 제대로 교육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피해자 학생 혹은 피해자 학생의 부모가 들었으면 매우 상처가 되었을 만한 말만 골라서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과할 생각 없이 돈을 물어주고 감옥을 가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가해자 학생의 뻔뻔한 태도, 물통에 비듬을 묻힌 행위는 통상적인 장난이라고 주장하면서 사회의 상식적 도덕과 어긋나는 말을 하고 자기 자식의 주말 시간 따위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자 학생의 기분이나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는 비도덕적 태도와 언행을 취하는 것은 맹자가 말하는 사사에 해당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이성을 지니고 사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동물, 식물 등을 포함한 다른 존재들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지만, 인간이라고 해서 항상 논리적인 사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도 수많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억지로 논리를 끼워 맞추면서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러한 상황은 주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잘못을 회피하는 과정에서 거짓말이 많아지고, 이러한 거짓말들 간에 앞뒤가 맞지 않아 논리성이 떨어져 거짓말임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어떤 행동이든 그 행동의 동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해자 학생에게 다른 학생의 물통에 비듬을 의도적으로 묻힌 행동을 한 이유와 동기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가해자 학생은 피해자 학생과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한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질문을 하기 몇 분 전에 가해자 학생이 작성했던 진술서에는 "이름은 잘 모르지만 그 여학생의 물통에 비듬을 묻혀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라고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즉, 가해자 학생은 피해자 학생과 한 학기 동안 같은 학급에서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도 모를 정도로 평소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피해자 학생의 이름을 한 글자도 모를 정도로 관심이 없는데, 게다가 성별이 다른 학생에게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한 장난을 했다는 것은 매우 앞뒤가 맞지 않는 비논리적인 말입니다. 그래서 확인차 가해자 학생에게 피해자 학생의 이름을 물어봤으나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이름도 모르는데 친해지고 싶어서 이런 비위생적인 장난을 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이야기했고, 몇 번 이야기하자 결국 가해자 학생은 장난을 치고 싶은 기분을 참지 못해서 그러한 행동을 했다고 실토했습니다. 가해자 학생이 처음에는 친해지고 싶어서 비듬을 묻히는 장난을 했다고 거짓으로 변명했다는 이야기를 가해자 학생에게 하니 가해자 학생이 매우 어이없고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군요. 이처럼 가해자 학생이 자기의 잘못을 최대한 작은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한 것은 전형적으로 맹자가 말하는 둔사에 해당합니다.
맹자는 비록 기원전에 태어나고 활동했던 매우 오래 전의 사상가이지만, 맹자의 주장 중 일부는 현대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지언(知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어떤 말을 하기 전에 내가 뱉어내는 말이 편파적이고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과장되거나 거짓되지는 않았는지, 옳지 못하거나 그 자체로 그른 것이 포함되지는 않았는지, 비논리적이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인지를 곱씹고 되짚어보면서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고 피사, 음사, 사사, 둔사를 범하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말은 제가 위에서 언급한 가해자 학생이나 가해자 학생의 부모의 말처럼 정도가 심하여 피사이면서 음사일 수도 있고, 사사이면서 둔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점차 이러한 말들을 줄여나가려는 태도가 중요하며, 그러한 태도로 인해 언어 습관이 올바르게 자리 잡혔을 때 다른 사람의 피사, 음사, 사사, 둔사에도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가해자 학생과 그 학부모의 피사, 음사, 사사, 둔사에 매우 감정적으로 분노하고 혐오스러운 감정을 느꼈으니 부동심에 이르지 못한 인간이겠네요. 하지만 이러한 눈에 띄는 비정상적 언행에 대해서도 제대로 지적하고 지도할 수 없는 교권 추락의 현실이 안타까워서 분노와 혐오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하고 싶습니다. 뉴스를 보면 어떤 사람의 물건에 자기의 정액을 묻혔다가 성범죄로 형사 처벌을 받는 기사를 가끔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부모의 태도가 위의 예시처럼 형편없다면 이 학생이 나중에 뉴스에 나오는 성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행동이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고, 사과는 전혀 안중에도 없이 잘못을 했어도 감옥 가면 해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생각을 가정에서 바로잡아줄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요. 학부모가 "우리 아이가 집에서 그런 언행을 하지 않으니 학교에서 그랬을 리가 없다."라고 말했을 때에는, 뉴스에 흔히 나오는 "우리 애가 그랬을 리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흉악범죄자들의 부모가 떠올랐습니다. 서양의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어릴 때부터 동식물을 함부로 다루면 인간의 도덕성에 이로운 동정심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러한 어릴 때의 행동이 성인이 되어서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파괴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학생이라고 칸트의 말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요?
하지만 교권이 심하게 추락한 요즘, 어차피 이런 학생들을 합당하고 상식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권한조차 없으니 제 자신을 잘 지키고 보전하는 것에나 신경 쓰는 것이 제 삶에 이로운 태도일 수 있을 것 같네요. 꼭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주변 상황이나 사태에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는 부동심은 다양한 상황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대 사회에서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사회의 상식적인 사람들이 지언을 실천하여 부동심을 얻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