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horism 5
학교 현장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학벌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 그 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학부모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 속에서 반대되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생기곤 합니다. 우선, 저는 꾸준하고 지속적인 노력의 가치를 매우 중시하는 편이기 때문에 본인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긍정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목표 없는 삶은 무기력하고, 인간의 삶은 태어나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동시에 노력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부정적인 감정도 느낍니다. 왜냐하면 노력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학부모들이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이유는 십중팔구 학생의 내적인 학습 능력의 향상, 다양한 분야의 지식 습득, 회복탄력성과 문제해결능력 신장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학벌 혹은 스펙의 취득에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수많은 어른들에게 학벌이 중요하다고 교육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학생으로서의 삶을 살고 사회 생활을 경험하면서 학벌의 중요성을 체감한 적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학벌의 중요성을 체감한 이유는 학벌 그 자체가 인간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가 인간의 가치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학벌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경향이 강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벌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높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이 존중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학창시절 동안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그 학벌을 취득했고, 따라서 그들이 학창시절을 성실하게 공부하면서 보냈다는 증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벌은 딱 그 정도의 가치밖에 지니지 못합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학벌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그 사람의 능력과 인성(성품)입니다. 그리고 능력과 인성은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서 발전하고 쇠퇴합니다. 즉, 우리는 낮은 학벌을 취득한 이후에 그러한 학벌로 인해 능력과 인성이 절대 발전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낮은 학벌의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꾸준한 노력의 태도를 기울임으로써 자신의 능력과 인성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이러한 태도를 지님에 있어서 낮은 학벌은 전혀 장애 요소가 되지 않습니다. 혹자들은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더 우수한 교수들로부터 질 높은 교육을 받아서 더 뛰어난 능력과 인성을 지닐 수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교수들은 사실 학생들을 어떻게 잘 가르쳐야 할까를 고민하지 않고 개인의 학문적 연구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므로, 대학에 진학하여 받는 교육이 학생의 능력과 인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학벌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보는 극단적인 현대 한국 사회의 가치관은 대학 진학 이후에 인간은 전혀 발전할 수 없다고 보거나 혹은 거의 발전할 수 없다고 보는 관점이므로 반드시 없어져야 할 잘못된 관점입니다.
학벌은 절대 그 사람의 능력과 인성을 보증하는 증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TV만 틀어도 높은 학벌을 취득한 유명 인사들이 사건사고에 연루되어 뉴스에 나오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좋은 학벌을 취득한 사람들이 학창시절에서의 성실성을 기반으로 높은 능력을 지니게 된 경우는 꽤 있지만, 좋은 학벌을 지녔다고 해서 반드시 필연적으로 높은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며, 좋은 학벌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 높은 능력으로 성공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학벌은 인성과는 더더욱 관련이 없습니다. 좋은 학벌을 취득했다는 것은 경쟁에서 이겼다는 것이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건전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릇된 질투심과 시기심,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허영심을 동기로 삼아 경쟁에서 이긴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능이나 학습 능력은 어떤 사람의 도덕적 판단 능력과 아예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증표'라고 부를 만큼의 연관성은 없습니다.
저는 높은 학벌을 취득한 사람들 중에서 능력과 인성이 전혀 비례하지 않는 사례를 주변에서 수없이 목격했는데, 인상적인 몇 가지 사례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제가 수업을 들었던 어떤 교수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알만한 대학교를 졸업하고 외국에서 공부도 했지만, 강의 능력이 너무 부족하여 학생들이 수강 신청도 많이 하지 않고, 수강 신청을 하는 학생들도 수업 시간에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또한, 학생들이 어려운 질문을 하면 그 질문은 생각을 좀 더 해봐야겠다고 이야기하면서 답변을 회피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연구 능력도 형편없어서 따르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고 항상 제게 이해할 수 없는 피드백을 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교수의 수업을 듣던 어느 날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습니다. 그 교수는 매우 많은 분량의 과제를 매주 해오라고 시켰는데, 그 교수는 저에게 과제를 해왔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할머니 장례식으로 인해 시간이 없어서 과제를 조금밖에 해오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실제로 저는 장례식장에 계속 머물면서 모든 장례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치루었다는 이야기를 수업 며칠 전에 교수에게 이미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가 저에게 한 말은 "힘들었겠다.", "고생 많았다."와 같은 것이 아니라(사실 그 교수의 인성을 좋게 보지 않아서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발인이 언제였냐?"는 것이었습니다(발인은 보통 장례식의 마지막 절차입니다). 즉, 이 교수는 장례식이 언제 끝났길래 과제를 못해왔냐고 물어봤습니다. 할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온 사람에게 저 말이 과연 적절한 말인지, 게다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한 말이 맞는지 귀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 교수는 이전에도 같은 대학 같은 과의 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성추행 및 성희롱 행위를 해서 학생들이 그 교수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서명을 받을 때, 그 과의 교수들 중 유일하게 서명에 참여하지 않은 교수였다고 합니다. 그 교수는 자기 핸드폰의 배경 화면을 딸 사진으로 해놓았는데, 아마 자기 딸은 소중하고 자기가 가르치는 여학생들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작년 12월에는 대통령의 비상 계엄령 선포가 있었습니다. 그 교수가 속한 대학에서 대통령의 비상 계엄령 선포를 비판하고 대통령의 하야 및 탄핵을 요구하는 시국 선언에 대부분의 교수들이 참여했을 때 그 교수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는 개인의 정치적 신념에 따른 행동일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는 느닷없이 자기가 진행하는 강의의 기말고사 문제로 대통령의 비상 계엄령 선포를 비판하는 내용의 문항을 출제했다고 합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높은 학벌을 취득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 사람이 이렇게 티가 나는 모순적 행위를 범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높은 학벌을 지닌 교수가 능력과 인성 측면에서 매우 형편없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네요.
2. 할머니 장례식을 떠올려보니 다른 사례도 생각이 납니다. 당시 할머니 장례식 일정이 안내된 모바일 부고장을 친한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전달했습니다. 당시 친한 친구 중에 국어 교사인 친구가 2명이 있었는데, 친구 A는 중학교 때 사귀었던 친구로, 우리나라에서 탑클래스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친구 B는 처음에 직장 동료로 만났는데, 학창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했던 친구도 아니고, 높은 학벌과는 거리가 있는 친구였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들이라도 조부모 장례식은 직접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딱히 친구들에게 꼭 와달라고 모바일 부고장을 전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명복을 빌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전달했습니다.
친구 B는 당시에 차가 없었고 장례식장이 매우 외진 곳에 있어서 직접 조문을 오기 매우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바로 택시를 타고 달려와 짧은 시간이나마 저를 만나고 할머니를 조문했습니다. 평소에도 인사성이 밝고 사회성이 높은 친구였는데, 차가 없으니 직접 오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음에도 일이 끝나자마자 달려와 준 정성을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퇴근하자마자 비싼 택시 요금을 지불하고 달려와 조문해 주었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반면 친구 A는 모바일 부고장을 바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3일 동안 아무런 답장을 하지 않다가, 학교에서 어떤 일 때문에 바빠서 답장을 못했다며 뜬금없이 조의금을 보냈습니다. 이 친구는 저를 정말 바보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저도 교사이기 때문에 그 친구가 언급한 업무로 3일 동안 아무런 답장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말도 안 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교사가 하는 업무 중에는 3일 동안 카톡에 짧은 답장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고 바쁜 업무가 없습니다. 또한, 친구 할머니의 명복을 빌어주는 짧은 카톡도차 전송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고 힘든 업무가 없습니다. 평소에도 연락에 성의없이 답변하는 경우가 많고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기는 친구였기 때문에, 본인의 인성적인 결함을 업무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조의금을 받지 않았고, 앞으로 그 친구와 만나거나 연락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친구 A는 평소에도 본인이 남들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저에게 "너가 뉴스를 안 보고 정치에 관심도 없으니 이상한 당을 찍고 이상한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뽑는 거다."라고 말하던 놈이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이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왔기 때문에 그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대꾸도 하지 않았는데요. 저는 그 친구보다 제가 더 뉴스도 많이 보고 사회나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훨씬 더 객관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고 다닐 것을 생각하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에서는 친구 B보다 친구 A가 높은 학벌로 인해 더 잘 나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현상은 현대 한국 사회가 학벌이 그 사람의 전체를 대표 및 상징한다고 생각하는 비합리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서이지, 친구 A가 더 뛰어난 능력과 훌륭한 인성을 지니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사교육비를 매우 많이 지출하면서 자녀들이 어떻게든 높은 학벌을 취득하게끔 만들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현재 비정상적으로 폭등한 집값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학군'이기도 할 정도로 현대 한국 사회는 학벌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풍토에서는 학벌로 그 사람의 전체, 그 사람의 능력과 인성을 평가하는 경향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학벌이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학벌이 그 사람의 능력과 인성을 대변한다는 망상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학벌이 높은 사람은 높은 학벌로 인한 자만심에 도취하여 능력과 인성을 훈련하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가 뒤처지고 악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학벌이 낮은 사람은 낮은 학벌로 인한 열등감에 빠져 무기력하고 우울한 삶을 살지 말고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훌륭하고 선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입 성적, 대입 성적, 취업 준비할 때의 성적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은 다양한 개성과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학벌이 낮음에도 열등감을 느끼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기가 잘 하는 것을 꾸준히 연습하여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면, 학벌이 높음에도 그 학벌에 집착하여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학벌로 무시 및 조롱하면서(그 무시와 조롱을 다른 사람들은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도태된 삶을 살고 형편없는 결과물을 내놓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학벌에 집착하고 학벌을 절대시하는 태도는 꾸준히 노력하고 자기 자신을 갈고닦는 태도를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