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ria
맹자의 이름을 들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맹자 사상의 내용이 바로 성선설입니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선천적인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맹자가 성선설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하였고, 순자가 맹자에 반대하여 성악설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했다고 알고 있지만, 단순히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여러 오류를 낳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맹자와 순자를 비교하는 내용은 다루지 않고, 맹자의 성선설에 관련된 내용을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였고, 따라서 맹자가 인간의 본성을 완전히 순선한 것으로만 간주했다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즉, 맹자의 본성 개념에는 오직 도덕성만이 포함되며, 감각적 욕구는 악한 행위의 원인일 뿐 본성 개념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고등학교 윤리와사상 교육과정도 이러한 관점에서 맹자의 성선설을 서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맹자가 인간의 감각적 욕구를 악행의 원인으로 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과연 맹자의 본성 개념에는 오직 도덕성만이 포함될까요? 인간의 감각적 욕구 또한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인데, 감각적 욕구를 본성 개념에 포함시킬 수 있는 여지는 없을까요?
우선 고등학교 윤리와사상 교육과정에서 맹자의 성선설에서의 본성 개념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위 내용은 미래엔 윤리와사상 교과서에 있는 내용입니다. 미래엔 교과서에서는 "맹자는 인간이 선한 마음 외에도 고자가 주장한 바의 식욕이나 색욕과 같은 욕구를 타고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자신의 주체적 노력이 아닌 외부적인 명(命)에 달린 것이므로 성(性)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보았다."라고 서술하면서, 맹자의 성선설에서의 본성 개념에는 식욕이나 색욕과 같은 감각적 욕구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위 내용은 비상교육 윤리와사상 교과서에 있는 내용입니다. 비상교육 교과서에서는 "맹자는 생리적 본능이 아니라 인간만이 지니고 잇는 인의예지를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다."라고 서술하면서, 미래엔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맹자의 성선설에서의 본성 개념에는 감각적 욕구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미래엔, 비상교육 교과서 외에 다른 3종의 윤리와사상 교과서에서는 맹자가 감각적 욕구를 본성 개념에 포함시켰는지 아닌지에 대한 내용을 별도로 서술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재 고등학교 윤리와사상 교육과정에서는 맹자의 본성 개념에 감각적 욕구가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이러한 교육과정 및 교과서의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해설서들이나 문헌도 존재합니다.
순자와 맹자의 상이한 인성론은 선진 시대 이래 2천여 년 동안 인성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 줄곧 영향을 미쳐, 성선론과 성악론은 고대에서 완결되지 않고 판정 짓지도 못한 논쟁이 되었다. 순자와 맹자의 인성론이 갈라지는 매듭은 인성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맹자는 사회적 도덕 속성을 인성이라 보았고 …
- 방입천, 『중국철학과 인성의 문제』-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性無善惡]고 주장한 고자와 여러 차례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성선설(性善說)을 수립하였다. 고자는 식욕이나 색욕과 같이 인간이나 동물이 다 함께 가지고 있는 생리적 욕망을 본성으로 간주하고 이 생리적 욕망 자체는 선하거나 악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맹자는 생리적 본능을 본성으로 보지 않고 인간만이 독특하게 가지고 있는 인의예지(仁義禮智)만을 본성으로 간주하였다.
- 김교빈 外, 『함께 읽는 동양철학』-
성선설에서 말하고 있는 본성은 먹고, 쉬고, 자야 한다는 동물적 본능이 아니라 사람의 본성입니다. 곧 사람다움은 동물적 본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본성에 있습니다. 인간적 본성은 도덕적 본성이고, 그 내용이 바로 측은⦁수오⦁사양⦁시비의 사단(四端)과 인⦁의⦁예⦁지의 사덕(四德)입니다. 사단과 사덕이야말로 자연(自然)과 구분되는 인문(人文)입니다.
- 황광욱, 『젊은 지성을 위한 맹자』-
‘어떤 사람이든 선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는 맹자의 말은 본성은 그냥 있는 그대로라는 고자의 논의에 대한 적절한 반격이 아니다. 외부의 힘을 배제하고 인간에게 본래 존재하는 것이 본성이란 얘기다. 그러니까 맹자는 동물과는 달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질로 본성을 이해하고 있고, 고자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상관없이 거기 존재하는 본성 그 자체를 얘기한 것이다.
- 장현근, 『맹자(바른 정치가 인간을 바로 세운다)』-
지금까지 인용한 책들은 모두 맹자의 인간 본성 개념에 감각적 욕구가 포함되지 않다고 보거나, 맹자의 인간 본성 개념을 동물은 소유하지 못한 인간의 고유한 선천적 특질, 즉 도덕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맹자의 인간 본성 개념에는 오직 도덕성만이 포함되고 감각적 욕구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위에서 살펴보았던 미래엔 윤리와사상 교과서는 맹자 <진심 하> 편에 있는 구절을 직접 인용하면서 맹자의 본성 개념에 감각적 욕구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미래엔 교과서의 자의적 해석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미래엔 교과서가 인용한 구절의 어느 곳에서도 감각적 욕구가 본성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엔 교과서가 인용한 구절에는 단지 "감각적 욕구는 본성에 속하지만 군자는 그것을 본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있을 뿐입니다. 이 구절에서 맹자는 분명히 "감각적 욕구는 본성에 속한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이 구절을 맹자의 본성 개념에 감각적 욕구가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큰 오류가 있습니다.
입이 좋은 맛을 추구하고 눈이 좋은 색을 추구하고 귀가 좋은 소리를 추구하고 코가 좋은 냄새를 추구하고 사지가 안일함을 추구하는 것은 본성[性]에 속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명(命)에 달려 있으므로 군자는 그것을 본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부자간에 인(仁)이 있고 군신 간에 의(義)가 있고 손님과 주인 간에 예(禮)가 있고 지혜가 현자에게 갖추어지고 성인이 천도와 하나가 되는 것은 모두 명에 속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본성에 달려 있으므로 군자는 그것을 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 『맹자』<진심 하> -
사실 <진심 하> 편에 있는 이 구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우선 위에 있는 미래엔 교과서처럼 맹자가 인간의 본성에 감각적 욕구가 포함되지 않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주장한 이야기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또한, 맹자가 감각적 욕구가 아니라 도덕성을 인간의 본성으로 강조하기 위해 감각적 욕구와 도덕성을 대비시켜서 설명했다는 해석도 있고, 맹자가 감각적 욕구는 필연성에 달려있을 뿐 인간이 주체적으로 실현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도덕성은 인간의 노력 여부에 따라 주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성만을 진정한 인간의 본성으로 간주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성(性)이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이 구절에 대한 해석 없이 인간의 본성에는 감각적 욕구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간단하게 이야기한 책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들에는 뚜렷한 근거가 없고 다소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본다면 감각적 욕망은 명백하게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것입니다. “군자는 그것을 본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맹자의 본의라고 주장하는 해석도 있지만, 이 문장은 단지 도덕성을 실현한 군자가 감각적 욕구가 본성임에도 불구하고 본성처럼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맹자는 <고자 상> 편에서 감각적 욕구를 소체(小體)로, 도덕성을 대체(大體)로 구분하며, 소체를 하찮은 부분으로 간주하고 대체를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하찮은 부분이라고 하여 맹자가 그것을 인간의 본성 개념에서 제외시켰을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인간만의 진정한 본성’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소체를 제외시키는 것이 맞겠지만, 단순히 ‘인간의 본성’이라고 이야기했을 때는 소체를 제외시키기 어려워 보입니다. 맹자가 소체와 대체를 구분한 이유는 대체를 따라야 하는 규범적인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이지 소체가 하찮은 부분이므로 인간 본성 개념에서 제외됨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입니다.
공도자가 물었다. "다 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대인이고 어떤 사람은 소인인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몸의 중요한 부분을 따르면 대인이고, 하찮은 부분을 따르면 소인이다." 공도자가 물었다. "다 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중요한 부분을 따르고 어떤 사람은 하찮은 부분을 따르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답했다. "귀와 눈의 기능은 사고할 수 없기 때문에 외부의 사물에 의해 가리어진다. 외부의 사물이 한 사물에 불과한 감각 기관과 접촉하면 감각 기관은 그것에 의해 이끌려가게 된다.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도리를 이해할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도리를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마음은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그 중요한 부분을 확고하게 세우면 하찮은 부분들이 그 중요한 부분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대인이 되는 까닭이다."
- 『맹자』<고자 상> -
오히려 맹자가 감각적 욕구를 인간 본성 개념에 포함시켰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몇 개의 구절이 있습니다. 그 구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의 입은 맛에 대해서 동일한 기호를 가지고 있는데, 미각이 뛰어난 요리사 역아(易牙)는 우리의 입이 좋아하는 바를 먼저 체득한 사람이다. 만일 입이 맛을 대함에 있어서 그 타고난 본성이 남과 다르기가 마치 개와 말이 나와 종류가 다른 것처럼 다르다면, 천하의 사람들이 어떻게 음식 맛을 좋아함에 있어서 한결같이 역아의 맛을 좇을 수 있겠는가? 맛의 경우에는 세상 사람이 모두 역아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데, 이는 세상 사람의 미각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귀도 또한 그러하다. 소리의 경우에는 세상 사람이 모두 청각이 뛰어난 음악가 사광(師曠)과 같이 되기를 바라는데, 이는 세상 사람의 청각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눈의 경우도 그러하다. 미녀 자도(子都)에 대해서는 천하 사람 누구도 그녀가 아름답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자도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이는 눈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입은 맛에 있어서 동일한 기호를 가지고 있고, 귀는 소리에 있어서 동일한 청각을 가지고 있으며, 눈은 색에 있어서 동일한 색감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의 경우에 있어서만 동일한 바가 없겠는가? 사람들의 마음에서 동일한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도리이며 의리이다. 성인이란 우리들의 마음에 동일한 바를 먼저 체득한 분이다. 그러므로 도리와 의리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동물의 고기가 우리들의 입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다.
- 『맹자』<고자 상> -
이 구절에서 맹자는 인간의 감각적 욕구가 서로 거의 동일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서로 거의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은 감각적 욕구와 도덕성이고, 이 구절에서의 강조점은 도덕성에 있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맹자가 인간의 감각적 욕구가 서로 거의 동일하다고 주장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공자 계승의 적통으로 인정받는 맹자가 공자의 “타고난 본성은 서로 비슷하다.”라는 입장을 충실하게 계승하였다면, 인간들 사이에 거의 동일한 감각적 욕구 또한 본성으로 간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구절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사람의 형체와 용모는 천성(天性)인데, 오직 성인이라야 타고난 형체와 용모를 그대로 실현시켜 낼 수 있다.
- 『맹자』<진심 상> -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했을 때 맹자는 사람의 형체와 용모를 천성, 즉 하늘이 부여한 본성 혹은 하늘로부터 유래한 본성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형체와 용모는 감각적 욕구, 즉 소체와 관련된 것 혹은 소체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는 감각적 욕구가 서로 거의 동일하다고 했지만, 인간의 형체와 용모는 제각기 다르다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맹자가 이 구절에서 인간의 형체와 용모가 천성이라고 언급한 이유는 인간의 형체와 용모가 제각기 다름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種)의 동물과 같은 형체와 용모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형체와 용모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서로 거의 동일하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맹자는 이 구절에서 인간의 도덕성뿐만 아니라 형체와 용모가 하늘이 부여한 혹은 하늘로부터 유래한 본성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을 도덕성으로 제한하는 것은 지나치게 좁은 해석입니다.
조선 시대 후기의 실학자인 정약용도 맹자의 본성 개념을 오직 도덕성으로 제한하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탐구하였습니다. 정약용은 맹자 <고자 하> 편에 있는 '마음을 움직이고 본성을 인내함[動心忍性]'이라는 구절을 근거로 인간의 본성에 감각적 욕구로서의 형구의 기호가 포함된다고 보았습니다. 정약용은 "성이란 기호이다. 형구의 기호도 있고 영지의 기호도 있는데 모두 성이다. 그러므로 「소고(召誥)」`에 ‘성을 절제함[節性]’이라 하고 「왕제(王制)」에 ‘백성의 성을 절제함[節民性]’이라 하고 『맹자』에 ‘마음을 움직이고 성을 참음[動心忍性]’이라 하여 이목구체(耳目口體)의 기호로 성(性)을 삼으니, 이는 형구의 기호이다. ‘천명지성(天命之性)’, ‘성(性)과 천도(天道)’, ‘성선(性善)과 진성(盡性)’에서의 성(性)은 영지의 기호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정약용이 맹자의 인간 본성 개념을 도덕성으로 제한하지 않고 감각적 욕구까지 포함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맹자의 주장과 다양한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여러 해설서와 문헌들은 맹자의 인간 본성 개념에는 분명히 감각적 욕구가 포함된다고 주장합니다.
맹자 당시에 인성론과 관련하여 나름의 이론을 정립하고 있었던 고자는 “타고난 것이 성”이며 “식색(食色)이 성”이라고 하였고, 이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인(仁)은 내(內)이고 의(義)는 외(外)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의 핵심은 의라는 도덕성이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본성은 도덕성이 아니라 식색이며, 이 식색의 성은 무선무불선(無善無不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맹자는 이러한 고자의 주장을 반박했지만 인간의 타고난 욕구를 본성이라고 보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인간이 타고난 욕구는 식색과 같은 욕구도 있지만 그것 외에 인의로 표현되는 더 가치있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 김도일, 『시대 속의 맹자, 주제 속의 맹자』-
또 다시 강조하지만, 악의 원천은 결코 감관들 자체가 아니다. 반대로, 감관들 자체도 또한 우리들의 하늘이 부여한 본성[天性]에 속한다. 이것들은 인간과 동물들이 공유하는 본성의 부분들이다. 입이 맛 좋은 것을 좋아하고, 귀가 아름다운 소리를 좋아하고, 눈이 아름다운 광경을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떻든 악은 감관들 그리고 외계의 사물들 간의 상호 작용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 벤자민 슈워츠, 『중국 고대사상의 세계』-
만일 맹자에게 '성'이 실제로 "옳고 그름의 느낌"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이것의 도덕적 선을 주장하는 그의 경우를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는 도덕적 성향 외에도 눈, 귀, 코, 입, 그리고 신체의 욕망도 우리의 본성에 속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 앵거스 그레이엄, 『도의 논쟁자들』-
맹자도 "부유함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고", "고귀한 신분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공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입이 좋은 맛을, 눈이 아름다운 용모를, 귀가 듣기 좋은 소리를, 코가 좋은 향기를, 몸이 편안함을 좋아하는 것이 모두 성이다"라고 함으로써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명확하게 지적하였다.
- 바이시, 『직하학 연구』-
위 책들은 주관적 관점을 최소화하고 맹자의 원전 내용에 근거하여 맹자의 인간 본성 개념을 논하면서, 맹자의 인간 본성 개념에는 눈, 귀, 코, 입 등의 감각 기관들을 통해서 지각할 수 있는 감각적 욕구가 포함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맹자의 인간 본성 개념은 오직 도덕성으로 제한되며 감각적 욕구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서술하는 고등학교 윤리와사상 교육과정의 내용은 수정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