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ria
안녕하세요. 이번 글에서는 공자가 과연 군자를 인(仁)한 사람, 즉 인을 구현하고 실현한 사람으로 보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및 윤리와 사상 교육과정에서 군자는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으로 소개되어 있고, 특히 공자가 군자를 인한 사람, 인을 구현하고 실현한 사람으로 보았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과연 이러한 서술이나 의견이 공자의 <논어> 원전 내용 및 주장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인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들은 공자가 군자를 인한 사람, 인을 구현하고 실현한 사람으로 규정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은 미래엔 윤리와사상 교과서에 있는 것입니다. 공자가 규정한 군자에 대해서 '인과 예를 바탕으로 덕을 갖춘 도덕적 인간', '인과 예를 두루 갖춘 인물'이라고 서술하면서 그 근거로 <논어>의 원전 내용까지 인용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은 비상교육 윤리와사상 교과서에 있는 것입니다. 공자가 규정한 군자에 대해서 '인을 갖추고 예를 실천하는 이상적 인간'이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은 씨마스 윤리와사상 교과서에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는 특정한 사상가를 언급하지는 않고 유교 사상이라고 폭넓게 언급하고 있지만, 어쨌든 유교 사상에서 규정하는 군자에 대해서 '어진 사람[仁人]'이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윤리 교과서들의 이러한 서술을 고려할 때, 현재 고등학교 윤리 교육과정에서는 공자가 규정한 군자를 인한 사람, 인을 구현하고 실현한 사람으로 가르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육과정에서 공자 사상에서의 군자를 이렇게 파악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 <논어>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군자가 인을 버리고 어찌 군자로서의 명성을 이루겠는가? 군자는 밥 먹는 순간에도 인을 어기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급한 때라도 반드시 인에 근거해야 하고, 위태로운 순간일지라도 반드시 인에 근거해야 한다.
바탕이 겉모습을 넘으면 촌스럽고, 겉모습이 바탕을 넘어서면 형식적이게 된다. 겉모습과 바탕이 잘 어울린 후에야 군자다운 것이다.
군자의 도가 세 가지 있는데, 나는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인한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위 세 가지 원전 내용을 볼 때, 군자와 인(仁) 사이에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위에 제시된 미래엔 윤리와사상 교과서는 2번의 원전 내용을 인용하여 공자가 군자를 인한 사람으로 규정했다고 서술하였습니다.
하지만, 위 원전 내용들만으로 공자가 군자를 인한 사람으로 규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논어> 헌문 편에서 공자가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군자로서 인하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소인으로서 인한 사람은 없다.
-『논어』-
이 구절은 군자가 반드시 인한 사람이거나 인을 구현 및 실현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논어>에 대한 대표적인 주석서로는 중국 위나라 하안의 <논어집해>에 송나라 형병이 주석을 기록한 <논어주소>와 주희가 저술한 <논어집주>가 있습니다. <논어주소>와 <논어집주>에서는 이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논어주소>: 이 장은 仁의 도는 완비하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비록 군자라 하더라도 오히려 완비할 수는 없어서 때로 不仁함이 있다.
<논어집주>: 군자가 仁에 뜻을 두었으나 그러나 잠깐 사이에 마음이 있지 않으면 不仁을 면하지 못한다.
<논어>에서 仁은 다른 모든 덕들을 포괄하는 덕이면서 공자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도덕적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공자에 따르면 인을 실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공자가 인을 추구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함을 강조한 것은 맞지만, 공자가 규정한 군자가 인을 구현하고 실현했다고 언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논어주소>와 <논어집주>의 설명도 인을 완전히 구현하고 실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위 1번(리인 편)에 언급된 원전 내용은 군자가 반드시 인을 구현하고 실현한 인한 사람임을 의미하는 구절이라기보다는 군자가 되기 위해서 인을 행하는 방법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논어주소>에서도 1번 구절에 대해 "이 장은 仁을 행하는 방법을 광범위하게 밝힌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군자가 되기 위해서 인을 행하는 방법[仁道]을 충실하게 따라야 함을 지적한 것이지 군자는 반드시 인한 사람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위 2번(옹야 편)에 언급된 원전 내용은 흔히 바탕을 仁으로, 겉모습을 禮로 해석하여 군자가 바탕과 겉모습이 잘 어울린 사람이기 때문에 인과 예를 모두 갖추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논어주소>와 <논어집주>는 이 구절에 대해 해석할 때 군자의 인과 예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군자는 내면적인 질박함과 외면적인 문화 및 문채가 어우러진 사람이며 이 둘 중 하나가 없거나 부족하면 군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언급합니다.
위 3번(헌문 편)에 언급된 원전 내용은 군자의 세 가지 도를 인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 용감한 사람과 연결 지어 설명함으로써 군자가 곧 인한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이고 용감한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구절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군자 중에는 불인한 사람이 있다는 구절의 내용을 고려할 때, 군자의 세 가지 도는 군자가 자기 내면에 실현한 특성이라기보다는 군자가 실천하는 도덕적 행동이고 이러한 도덕적 행동을 통해 인한 사람, 용감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지향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즉, 군자는 인을 완전하게 구현 및 실현한 사람이 아니라 인에 뜻을 두고 인을 지향점으로 삼아 꾸준히 수양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논어>에는 여러 의미의 구절이 뒤죽박죽 섞여 있고, 따라서 내용의 체계성이 다소 부족한 고전이라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논어>에서는 이 구절이 과연 진짜 공자의 사상을 의미하는 것인지 의심받는 구절이 있으며, 만약 제가 제시한 "군자로서 인하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소인으로서 인한 사람은 없다."라는 구절이 공자의 사상을 의미하는 구절이 아닌 거짓된 구절이라면 군자는 인한 사람이라는 교과서의 설명은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 구절이 공자의 사상을 의미하지 않는 거짓된 구절이라고 밝혀진 근거는 없습니다. 따라서 교과서의 설명처럼 공자 사상에서의 군자를 인한 사람 혹은 인을 구현하고 실현한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오류로 판별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ebs 수능특강에서는 공자가 규정하는 군자에 대해 '인의 구현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사람'이라고 언급하고, 유교 사상에서 말하는 군자에 대해 '인의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임'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공자나 유교 사상에서의 군자를 '인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기보다는 수능특강의 내용처럼 규정하는 것이 오류가 없고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