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ria // 2023학년도 9평 윤사 12번
이번 글에서는 이이의 사단(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개념과 칠정(희, 노, 애, 구, 애, 오, 욕)개념의 관계 및 이에 대한 평가원과 ebs의 입장을 알아보고, 평가원과 ebs의 입장에 오류는 없는지 탐구해 보겠습니다.
이이는 칠포사(七包四), 즉 사단과 칠정의 관계에 있어서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고 설명합니다. 칠포사는 이이가 사단은 이가 발하여 생기는 감정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생기는 감정이라는 이황의 주장을 비판하고, 오직 기만이 발할 수 있으며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가 발하여 생기는 감정임을 강조하기 위해 주장한 이론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사단에 해당하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각각 칠정 중 어떤 감정에 대응되는지에 대한 이이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이이의 입장을 평가원은 제시문으로 한 번 출제한 적이 있습니다. 아래는 2023학년도 9평 윤리와사상에 출제된 이이 제시문입니다.
2023학년도 9평 윤리와사상 12번 문항에 출제된 이이 제시문에 의하면, 이이는 사단인 측은지심이 애(愛: 사랑)에 속하고 다른 사단인 수오지심은 오(惡: 미워함)에 속하므로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과연 이이가 측은지심이 愛에 속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 맞는지입니다. 왜냐하면 평가원 모의고사가 아닌 교육청 모의고사에서 측은지심이 애(哀: 슬픔)에 속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제시문이 출제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2021년 10월 윤리와사상 모의고사에 출제된 제시문입니다.
2021년 10월 교육청 모의고사에서는 이이가 측은지심을 愛가 아닌 哀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다는 제시문이 출제되었습니다. 그렇다면 2023학년도 9평 모의고사의 제시문과 2021년 10월 교육청 모의고사의 제시문 사이에는 내용상의 충돌이 발생합니다. 평가원 모의고사의 제시문에 오류가 있는 것인지, 교육청 모의고사의 제시문에 오류가 있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내용은 <율곡전서> 제10권, <우계집> 제4권에 있는 내용입니다. 아래는 이 내용에 해당하는 한문 원전의 스캔본입니다.
맨 오른쪽을 보면 <우계집> 4권이라고 서술되어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빨간색으로 표시해 놓은 부분을 보면 측은속애(惻隱屬哀)라고 서술되어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즉, 이이는 칠포사 개념을 설명할 때 측은지심이 슬픔[哀]에 속한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2023학년도 9평에 출제된 평가원 모의고사 기출 제시문은 오류이며, 교육청 모의고사의 제시문이 올바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bs도 평가원의 기출 제시문을 그대로 활용해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ebs가 발간한 교재인 2024학년도 수능완성 윤리와사상에서 128p에서 이이 제시문으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출제되었습니다.
칠정은 사단을 포함한다[칠정포사단]. 측은은 사랑[愛]에 속하고 수오는 미움[惡]에 속하고 공경은 두려움[懼]에 속하고 시비는 기쁨[喜]과 노여움[怒]의 마땅함과 마땅하지 않음을 아는 것에 속하니, 칠정 밖에 사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 2024학년도 수능완성 윤리와사상 128p -
하지만 ebs의 이 제시문도 측은지심을 슬픔[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랑[愛]에 속한 것으로 서술함으로써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슬픔을 의미하는 한자어와 사랑을 의미하는 한자어가 '애'라는 동일한 음을 갖고 있어서 혼동을 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내용과 관련하여 ebs는 2025학년도 수능완성 윤리와사상 25p에서 다음과 같은 선지를 출제하기도 했습니다.
이이 : 측은지심은 칠정의 애(愛)에 속하고 수오지심은 칠정의 오(惡)에 속한다.(O)
- 2025학년도 수능완성 윤리와사상 25p -
위에서 논의한 대로 이이가 측은지심을 슬픔[哀]에 속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ebs가 출제한 이 선지는 오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살펴본 <우계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칠정이 사단을 포함하는 것을 형은 아직도 터득하지 못하였습니까? 사람의 정이 기뻐해야 할 때를 기뻐하고, 상을 당하여 슬퍼하고, 친한 사람을 사랑하고, 이치를 보고 궁구하려 하고 어진 이를 보고 그와 같이 되려고 하는 것은 인(仁)의 단서입니다.
- 이이, <우계집> -
<우계집>의 이 내용을 살펴보면, '인의 단서'는 사단 중의 하나인 측은지심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이는 이 측은지심이 기뻐함[喜], 슬퍼함[哀], 사랑함[愛], 되려고 함[欲]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에 근거한다면 ebs가 출제한 위 선지가 명확하게 오류라고 판단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ebs가 과연 <우계집>의 이 부분을 참고하여 선지를 출제했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ebs의 선지는 '속한다'라는 서술어를 사용하고 있고, <우계집>에서 '속한다'라는 서술어가 나오는 부분은 바로 위에서 제시한 '인의 단서'와 관련된 구절이 아니라 더 위에서 제시한 '측은속애'와 관련된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즉, ebs는 평가원 기출 제시문의 오류와 2024학년도 수능완성 기출 제시문의 오류를 그대로 2025학년도 수능완성에 출제했지만, <우계집>의 다른 구절에 근거하여 해당 선지가 오류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어 보입니다.
2025학년도 수능완성 윤리와사상에 있는 선지가 오류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2023학년도 9평에 출제된 평가원 제시문과 2024학년도 수능완성에 출제된 제시문은 명확하게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계집>의 원본에서는 명백하게 측은속애(惻隱屬哀)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평가원과 ebs에서 제시문을 인용할 때 조금 더 유의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