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ria // 2023학년도 6평 윤사 7번
제목에 글자 수 제한이 있어서 제목이 이상하게 되어버렸네요...
이번 글에서는 2023학년도 6평 윤리와사상 7번 문항에 출제된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과 관련된 선지에 오류가 없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023학년도 6평 윤리와사상 7번 문항 ④번 선지에 정약용의 입장을 묻는 선지로 "사덕은 선을 좋아하는 기호를 실천하여 형성된다."가 출제되었고, 평가원은 이 선지를 정약용의 입장으로 맞는 것으로 출제했습니다. 아마 평가원은 교과서에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근거로 이 선지를 맞는 선지로 출제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약용은 사덕이 인간에게 본성적으로 주어진다는 기존의 성리학적 설명을 거부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선을 기호하기 때문에 사단과 같은 도덕적인 마음을 가진다. 그리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후천적으로 인의예지라는 덕목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당시 성리학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실천을 더욱 강조하는 새로운 도덕 이론을 세우고자 한 실학적 산물이었다.
- 비상교육 윤리와사상 교과서 -
비상교육 윤리와사상 교과서의 위 내용을 보면 "인간은 선을 기호하기 때문에 사단과 같은 도덕적인 마음을 가진다. 그리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후천적으로 인의예지라는 덕목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교과서의 서술은 인간이 선을 기호하는 바탕인 영지의 기호로 인해 영지의 기호의 구체적인 내용인 도덕적 마음(사단)을 선천적으로 지니고, 이러한 선천적인 사단을 실천함으로써 인의예지(사덕)를 후천적으로 형성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즉, 정약용의 단시설(사단은 사덕을 형성하는 시작점)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교과서의 서술, 그리고 이 서술을 바탕으로 출제된 평가원의 선지는 정약용의 원전 내용과 상충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약용이 인간의 본성으로서 강조하는 영지의 기호는 단순히 선을 좋아하는 기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약용이 강조하는 영지의 기호는 선을 좋아하는 특성만 지닌 것이 아니라 악을 미워하는 특성도 포함합니다.
영지의 기호란 우리가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미워하며 덕행을 좋아하고 더러움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지는 본성이며, 하늘이 명한 성품이다. 형구의 기호란 우리의 눈이 좋은 빛깔을 좋아하고 입이 맛있는 요리를 즐기며, 따뜻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이것은 동물도 가지는 성품이다.
- 정약용, <맹자요의> -
이제 인성을 논해 보면, 사람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음이 없으므로 하나의 선을 행하면 그 마음이 매우 기쁘고, 하나의 악을 행하면 그 마음이 시름에 겨워 기가 꺾인다. 내가 일찍이 선을 행하지 않았으나 사람들이 나를 악하다고 비방하면 화내게 된다. 이와 같은 것에서 선을 기뻐하고 악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선을 보고는 그를 좋아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악을 보고는 그를 미워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것에서 선을 사모하고 악을 증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릇 이러한 것들은 모두 기호가 눈앞에 드러난 것이다.
- 정약용, <심경밀험> -
정약용이 강조하는 영지의 기호가 선을 좋아하는 특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악을 미워하는 특성까지 지니고 있다는 것은 정약용 원전에만 제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서술에도 제시되어 있습니다.
정약용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의 경향성, 즉 기호(嗜好)를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도덕적인 행동을 지향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 미래엔 윤리와사상 교과서 -
정약용에 의하면 인간 본성에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육체적인 기호가 있고, 동시에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과 같은 정신적인 기호가 있다.
- 씨마스 윤리와사상 교과서 -
정약용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에 대해서 마음이 선을 좋아하거나 악을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성, 즉 기호(嗜好)라고 정의하였다.
- 교학사 윤리와사상 교과서 -
정약용은 공자, 맹자 등의 선진 유학자들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받는데(정약용이 선진 유학자를 계승했다는 설과 달리, 선진 유학자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지만 여기서는 그러한 설명까지 하지는 않겠습니다. 주제가 되는 내용을 설명하기에는 투머치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자 또한 "인(仁)한 사람만이 남을 좋아할 수도 있고, 남을 미워할 수도 있다."라고 주장하는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뿐만 아니라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일까지 적절하게 행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약용 또한 유교 사상가로서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따라서 정약용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합니다.
맹자는 사단을 논하면서 성선(性善)을 사단의 근본으로 삼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논하면서 모두 행사(行事)를 주로 하여 말하였다. 사람의 성은 단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 선을 좋아함으로 해서 측은(惻隱)과 사양(辭讓)의 마음이 있게 되며, 그 악을 싫어함으로 해서 수오(羞惡)와 시비(是非)의 마음이 있게 되며, 그 네 가지 마음이 있음으로 해서 인의예지의 덕을 이룰 수가 있다.
- 정약용, <맹자요의> -
정약용은 영지의 기호가 '선을 좋아함 + 악을 미워함'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선을 좋아함'의 부분으로 인해 측은지심과 사양지심이 있게 되고, '악을 미워함'의 부분으로 인해 수오지심과 시비지심이 있게 된다고 봅니다. 정약용에 따르면, 측은지심과 사양지심의 실천은 인(仁)과 예(禮)라는 덕의 형성으로 이어지고, 수오지심과 시비지심의 실천은 의(義)와 지(智)라는 덕의 형성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정약용의 설명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지의 기호 중 선을 좋아하는 기호 → 측은지심, 사양지심 → 인, 예
영지의 기호 중 악을 미워하는 기호 → 수오지심, 시비지심 → 의, 지
그렇다면 평가원 선지대로 사덕이 선을 좋아하는 기호를 실천하여 형성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덕(四德)은 인의예지를 의미하며, 인의예지는 선을 좋아하는 기호를 실천한 것만으로 형성될 수 없습니다. 정약용의 입장대로라면, 선을 좋아하는 기호를 실천했을 때 인과 예라는 2가지의 덕만이 형성되는 것이지 사덕이 모두 형성되지 않습니다. 선을 좋아하는 기호와 악을 미워하는 기호를 모두 실천해야 사덕이 형성되는 것이죠. 따라서 해당 선지는 오류일 가능성이 높고 출제에 있어서 디테일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