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정치적 의무는 인간의 자연적 의무인가?

aporia // 2017학년도 6평 윤사 14번

by cusp

이 글은 2017학년도 6월 모의고사 윤리와사상 14번 문제 ⑤번 선지의 문제점을 논하는 내용입니다.


우선, 해당 선지가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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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의 갑 사상가는 아리스토텔레스, 을 사상가는 로크입니다.


⑤번 선지에 대한 대부분의 인강 강사 분들이나 EBS 해설지의 해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로크 모두 정치적 의무를 자연적 의무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로크는 국가를 인위적인 계약의 산물로 보기 때문에 정치적 의무를 자연적 의무로 간주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을 쉽게 납득할 수 있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보기 때문에 "정치적 의무를 자연적 의무로 간주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와 관련된 서적, 문헌들을 읽어 보았고, 시간이 없으신 분들을 위해서 우선 빠르게 결론만 보여드리자면,


결론: 이 선지는 로크에게는 명백히 틀린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명백히 틀린 것으로 볼 수 없는 선지이다.


입니다.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이 선지는 2016년에 출제된 내용이기 때문에, 현 교육과정이 아니라 이전 교육과정 내용에 근거하여 출제되었습니다. 현재 윤리와사상 교육과정은 정치적 의무의 도덕적 근거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챕터가 없고, 국가의 기원과 본질, 국가의 역할과 정당성을 설명하면서 시민이 국가의 권위에 복종하고 국가에 대한 의무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 윤리와사상 교육과정은 정치적 의무의 도덕적 근거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챕터가 있고, 그 챕터에서는 정치적 의무의 도덕적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전 윤리와사상 교육과정에서 ‘정치적 의무의 도덕적 근거’에 대한 설명>


인간 본성론

-인간의 본성에 따라 국가를 구성하고 구성원이 되었다면 정치적 의무를 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임

-대표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


동의론

-국가는 개인들의 동의에 의해 형성되며 국가 형성에 대한 동의로부터 정치적 의무가 발생함

-대표 사상가: 로크


혜택론

-국가가 제공하는 치안, 국방 등 공공재의 혜택이나 제도, 법률 등 관행의 혜택을 누리기 때문에 정치적 의무를 지게 됨

-대표 사상가: 흄


자연적 의무론

-생명을 보존하고 존중할 의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울 의무 등 인간이면 누구나 따라야 할 자연적 의무가 있음

-대표 사상가: 롤스


즉, 이전 교육과정에서는 갑 사상가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인간 본성론, 을 사상가인 로크를 동의론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두 사상가를 자연적 의무론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여 ‘자연적 의무’라는 용어를 두 사상가에게 적용시킬 수 없는 것으로 보고 문제를 출제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한 EBS 해설지에도 두 사상가에게 자연적 의무라는 개념을 적용시킬 수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선지는 로크에게는 명백히 틀린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명백히 틀린 것으로 볼 수 없는 선지입니다. 그 근거를 크게 3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겠습니다.


근거 1: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본성’과 ‘자연’이 의미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번역본마다 '본성', '지연'으로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두 용어를 같은 의미로 사용함). 따라서 ‘본성적 의무’를 ‘자연적 의무’로 치환하여 사용할 수 있다.


문제의 아리스토텔레스 제시문을 보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에 속하도록 되어 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즉,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에 대한 의무를 가집니다. 따라서 인간이 국가에 대해 갖는 정치적 의무는 ‘본성적 의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성적 의무’를 ‘자연적 의무’라는 용어로 대체할 수 있는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본성’과 ‘자연’이라는 말을 서로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의미의 유사성이 큰 것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정치학> 제1권 제2장에서 피력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자연주의에 기초하는 세 가지 기본 테제는 이런 것이다. 첫째, 인간은 자연적으로(본성적으로) 폴리스적 동물이다. 둘째, 폴리스는 자연적으로 존재한다. 셋째, 폴리스는 자연적으로 개인에 앞선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김재홍 역]


‘단적으로 알려진 것’은 ‘본성적으로 알려진 것(자연에 따라 알려진 것)’이고,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우리와 관련된 한에서 알려진 것’ 혹은 ‘우리의 견해에서 알려진 것’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강상진, 김재홍, 이창우 역]


어떤 것들은 자연적(본성적)으로 쾌락을 준다. 이런 것들 중 일부는 무조건적으로 쾌락을 주며, 일부는 특수한 사람이나 동물에게 쾌락을 주는 것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조대웅 역]


동물이나 식물의 생성과 같은 본성적인 생성의 경우, 세 가지 계기 모두 본성적인 것 또는 자연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작용인(causa effciens), 질료인(causa materialis), 형상인(causa formalis) 또는 목적인(causa finalis)이 모두 자연물이라는 말이다.
*physis: 본성, 자연, 자연적인 것
[조대호,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모든 자연적 존재자들의 변화/운동과 정지를 소재로 삼아 그 원리인 자연(본성, physis)을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자연학이다. 따라서 영혼에 관한 탐구는 자연학적 진리에 크게 기여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영혼에 관하여』, 오지은 역]


‘physis’는 문맥에 따라 ‘본성’, ‘자연’, ‘자연적 원리’, ‘자연물’, ‘자연적인 것’ 등 여러 가지 용어로 옮길 수 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physis tis’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 표현은 ‘on ti’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여서 ‘본성적 혹은 자연적으로 있는 것’을 가리킨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조대호 역]


수동적인 가능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영향을 입는 능력을 지니지 못한다. 이러한 가능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영향을 입는 능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표현은 본성적인(자연적인) 결핍을 뜻한다.
[아베로에스(이븐 루시드),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physis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으며, 이 용어를 본성이라고 해석할 뿐만 아니라 자연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 있어서 ‘본성=자연’이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책을 번역한 대부분의 교수님들께서 '본성=자연'으로 해석하심)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 책에 있는 어떤 구절을 보면 ‘본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다른 구절을 보면 ‘자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본성’과 ‘자연’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언어의 쓰임을 깊게 고려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오류입니다.


여기서 “자연적 존재”로 번역한 희랍어는 physei esti이다. 일반적으로 physis는 ‘본성’ 또는 ‘자연’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폴리스를 ‘본성적 존재’로 번역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폴리스의 실체성 규정과 관련해서는 ‘본성’이란 말보다는 ‘자연’이라는 번역이 ‘인위적 존재’와 더 잘 대비가 되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physei esti를 ‘자연적 존재’로 표현할 것이다. 그러나 주어진 대상에 따라 특히 인간과 관련해서 physis는 본성으로 번역될 것이다.
[손병석,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연구』]


위 문헌을 참고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본성’과 ‘자연’은 의미가 같지만, 언어의 쓰임에 따라서 ‘본성’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자연’으로 해석하기도 할 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ex1) 인간이 허기를 채우는 것은 본성스러운 현상이다.(X)

인간이 허기를 채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O)


ex2) 인간은 위험을 피하려는 자연이 있다.(X)

인간은 위험을 피하려는 본성이 있다.(O)


언어의 쓰임에 따라 ‘본성’이 적합하지 않거나 ‘자연’이 적합하지 않은 구절이 있지만, ‘본성’이 적합한 구절과 ‘자연’이 적합한 구절에서 ‘본성’과 ‘자연’의 의미는 다르지 않습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physis라는 개념을 번역할 때 언어의 쓰임의 적절성에 따라서 이를 ‘본성’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자연’으로 해석하기도 할 뿐 ‘본성’과 ‘자연’ 두 용어의 의미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성적 의무’를 ‘자연적 의무’라는 용어로 치환할 수 있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자연적 의무’가 틀린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근거 2: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의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했을 때, 국가에 대한 ‘자연적 의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문제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에 해당하는 저서인 『정치학』뿐만 아니라, 『니코마코스 윤리학』, 『형이상학』, 『자연학』 등 여러 저서에서 ‘자연’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저서들에서 사용하고 있는 ‘자연’의 의미를 분석하여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자연적 의무’라는 용어를 적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1.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자연적인 덕(본성적인 덕)’과 ‘엄밀한 의미에서의 덕(진정한 덕)’의 구분


미덕에서도 실천적 지혜가 영리함과 맺는 관계와 아주 비슷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둘은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그런데 자연적 미덕과 엄밀한 의미의 미덕의 관계도 그와 같다. 우리의 성격은 저마다 어떤 의미에서 타고난 것 같다. 우리는 정의나 절제나 용기나 그 밖의 다른 미덕을 타고나기 때문이다. … 그러나 행위자가 지성을 갖게 되면 그의 행위는 아주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가짐은 미덕과 비슷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미덕이 될 것이다. 의견을 갖는 혼의 부분에 영리함과 실천적 지혜라는 두 마음가짐이 있듯 혼의 도덕적 성격에도 본성적 미덕과 진정한 미덕이라는 두 자질이 있으며, 이중 진정한 미덕은 실천적 지혜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천병희 역]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적인 덕과 엄밀한 의미에서의 덕을 구분합니다. 자연적인 덕은 타고나는 덕이지만, 실천적 지혜와 선한 의지의 인도를 받지 못해 해롭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자연적인 덕이 엄밀한 의미의 덕으로 되기 위해서는 실천적 지혜와 선한 의지의 인도를 받고 이러한 과정을 습관화하는 ‘인공적인’ 과정이 필요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합니다.


2.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자연적 정의’와 ‘법적 정의’의 구분


정치적 정의의 한 부분은 자연적인 것이며 다른 한 부분은 법적인 것 혹은 관습적인 것이다. 자연적 정의는 사람들의 승인 여부와 관계없이 어디에서나 동일한 힘을 가진다. 반면 법적 정의 혹은 관습적 정의는 애초부터 이러한 방식으로 규정되든 저러한 방식으로 규정되든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일단 제정된 연후에는 차이를 갖는 것(=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강상진, 김재홍, 이창우 역]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적 정의와 법적 정의를 구분함으로써 소피스트의 상대주의를 비판하려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적 정의를 ‘사람들의 승인 여부와 관계없이’, 즉 ‘인공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정의 개념으로 규정한 반면 법적 정의를 ‘제정’이라는 ‘인공적인’ 과정을 거친 정의 개념으로 규정했다는 것입니다.


3. 『자연학』에서 physis의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


『자연학』 2권 1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에 의해서’ 또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과 ‘인간에 의해서’ 또는 ‘인위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 즉 자연물과 인조물이라는 두 종류의 사물들을 구분한다. 그는 자연을 ‘사물이 내부에 갖는 변화와 정지의 원리’로 규정하고, 그러한 자연물만이 ‘스스로’ 변화하거나 운동할 수 있는 사물이라고 말한다. 그가 사용하는 ‘자연(physis)’이라는 용어는 주로 ‘사물이 갖는 본래적인 성향 또는 힘’을 의미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후로는 그것을 ‘본성’이라고 번역하고, 그와 관련된 표현들을 ‘본성에 의해서’, ‘본성적으로’ 등으로 번역할 것이다. 그가 자연물과 인조물을 구분하는 기준을 세밀히 탐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본성의 자세한 의미와 역할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유원기, 『자연은 헛된 일을 하지 않는다(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자연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physis(자연, 본성)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규정합니다.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과정은 윤리와사상, 생활과윤리 교육과정과 전혀 관련이 없고 매우 난도가 높은 내용이기 때문에 수험생이 이해할 필요는 전혀 없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physis의 의미를 ‘변화의 원리를 내부에 갖는 사물들의 실체’로 규정하였습니다. 즉, physis는 변화의 원리가 내부에 있으므로 외부에서 ‘인공적인’ 작용을 가하지 않아도 스스로 변화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physis(자연, 본성)에 대한 의미 규정을 다각도로 분석해 보았을 때, 고등학교 교육과정 수준에서 살펴보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physis를 ‘인간 or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은’, 혹은 ‘인공적인 or 외부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의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인간의 본성이 자연스럽게 어떤 목적을 추구하도록 정해져 있으며, 이는 인간의 힘으로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 이성적 능력을 통해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여 정의와 부정의를 분별하고 공동체 안에서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는데, 이러한 인간의 이성적 능력이 공동체 안에서의 도덕적 삶 및 행복 추구라는 목적을 자연스럽게 설정해 주며, 이는 인간의 힘으로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국가는 자연적 공동체이며, 시민들이 도덕적 삶 및 행복 추구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에 대해 갖는 정치적 의무 또한 자연적 의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설명을 아리스토텔레스가 국가를 인간의 아무런 노력 없이 알아서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했다는 의미로 오해하는 수험생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가 전혀 아니며,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가 봤을 때 인간은 ‘생존’과 ‘잘 사는 삶’이라는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국가를 ‘형성’합니다. 하지만 이런 인공적인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국가를 자연적 공동체라고 설명하는 이유는, 생존 및 잘 사는 삶이라는 목적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가 국가이며(가정, 마을과 달리 법률을 제정하고 시민들을 규제하여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 이러한 목적은 인공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인간의 본성(자연)과 관련지어 정해지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인간이 국가에 대한 정치적 의무를 갖는 이유는 자신의 생존, 잘 사는 삶이라는 자연적 필요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국가는 인위적 계약이나 협약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그에 따른 목적에 의해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자연적 필요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에 복종할 의무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에 대한 정치적 의무’를 ‘자연적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거 3: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사상을 ‘정치적 자연주의’로 해석하는 견해들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국가를 자연적 공동체로 간주하였고, ‘자연’이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하면서 이 개념을 통해 이론을 전개하였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사상을 ‘정치적 자연주의’로 해석하는 견해들이 있습니다.


『정치학』에 나타나는 자연주의적 경향과 생물학에 대한 관심은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정치학』 제1권 제2장에서 피력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자연주의에 기초하는 3가지 기본 테제는 이런 것이다. 첫째, 인간은 자연적으로(본성적으로) 폴리스적 동물이다. 둘째, 폴리스는 자연적으로 존재한다. 셋째, 폴리스는 자연적으로 개인에 앞선다.
[김재홍,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최선의 공동체를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자연주의(political naturalism)의 관점에서 자연적 귀족정은 인간본성이 추구하는 목적을 가장 잘 실현한 완벽한 정체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자연은 (목적 없이) 헛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또한 “자연은 곧 목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자연적 목적론(natural teleology)이 인간과 폴리스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것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이 추구하는 목적이 폴리스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손병석,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연구(플라톤과의 대화)』]


‘자연’이라는 용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주변의 나무나 돌을 포함한 자연환경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인위적인 과정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짐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기도 하지만 다수의 생물학 도서를 저술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연’이라는 용어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공적인 작용 or 외부의 작용 없이 어떤 목적을 추구하도록 정해진 본성’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물학적인 규정을 참고하여 자신의 정치사상을 전개하였습니다. 인간과 국가의 관계를 생물학적인 자연 개념과 관련지어 설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자연주의 관점을 고려했을 때, 시민이 국가에 대해 갖는 정치적 의무를 자연적 의무로 해석할 여지는 충분합니다. ‘자연적 의무’라는 개념 자체가 롤스의 개념이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롤스가 생각하는 ‘자연’ 개념과 정치학을 생물학과 연관시키려 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자연’ 개념이 다를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은 견해입니다.


현재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적 의무론이 아니라 인간 본성론이다.’라고 설명하는 내용은 윤리와사상 교육과정에서는 전부 삭제됐으며, 생활과윤리 교육과정에서는 금성 출판사의 교과서에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적 의무론이 아니라고 간주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개념을 깊게 분석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오류로 보입니다.


평가원 모의평가 출제의 가장 중요한 근거라고 볼 수 있는 교과서와 EBS 연계교재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자연적 의무’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주장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국가관과 그 특징을 공유하는 시민적 공화주의자들은 인간의 자연적 사회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이 국가 안에서만 도덕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비상교육 윤리와사상 교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의무는 인간의 정치적 본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국가의 구성원이 된다는 사실로부터 자연적으로 파생되는 현상임
[이전 교육과정 수능완성 윤리와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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