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 때는 대가 없이 베풀어야 한다.

aphorism 6

by cusp

인간은 고립된 곳에서 홀로 살아가거나 생존할 수 없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여러 생활용 장비만 잘 구비한다면 무인도에서도 홀로 생존할 수 있다는 반박을 할 수 있겠지만, 과학 기술의 발달 또한 그동안 인류가 축적한 수많은 연구들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집단을 형성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거나 피해를 주고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점은 고대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나 스토아학파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인정하는 인간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인간은 서로 도움과 피해를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보통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인간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은 곧잘 하지만,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인간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는 부정적인 것이고 도움은 긍정적인 것이니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인간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움을 주고받을 때에도 현명하게 행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때, 자기가 제공한 도움에 상당하는 대가를 상대방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도움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자기가 제공한 도움에 상당하는 대가나 도움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것으로 은혜를 갚거나, 아니면 상대방이 도움을 받았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내가 마음을 크게 먹고 도움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인해 도움을 받은 상대방에 대한 앙심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됩니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가 인간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도움을 받은 만큼 그에 상당한 가치의 도움을 상대방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등한 가치의 기브 앤 테이크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회는 이상일뿐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습니다. 도움을 받은 만큼 은혜를 갚는 것이 미덕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미덕을 갖고 있지 않고(이런 미덕을 지닌 사람들은 매우 소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돕고 싶다는 선한 마음에서 도움을 제공해도 상대방에게 그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했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지니게 되어 악한 행위(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언행,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언행 등)를 하게 되면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도움을 준 상대방을 미워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불교의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주상보시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 도움을 주었을 때 내가 받을 수 있는 대가에 집착하지 않는 베풂을 의미합니다. 아마 불교에서도 모든 사람이 도움을 받은 만큼 은혜를 갚지는 않는다는 비판적인 현실 인식을 함으로써 무주상보시를 주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무주상보시를 기억하면서 상대방에게 도움을 제공해야 합니다. 만약 도움을 받은 상대방이 내가 제공한 도움에 상당하는 가치의 대가로 나에게 은혜를 갚으려 한다면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도움을 받은 상대방이 내가 제공한 도움에 감사하지 않거나 그에 맞는 도움 및 대가를 나에게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면 그 사람이 기브 앤 테이크의 미덕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라는 간단하고 짧은 평가만 한 후 그 사람과 더 깊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지표로만 삼고 그 사람에게 기대를 갖거나 앙심을 품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우리가 도움을 제공한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어도 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지속적으로 여러 번 나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여 도움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합니다"라는 간단한 감사 인사 한 마디가 없고, 자기 이익을 위해 나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면서 나에게 어떤 도움도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다분히 이기적인 성품을 지닌 사람이므로 관계를 끊거나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도움'이나 '대가'는 공적인 관계에서 주고받는 금품 및 물질적인 선물, 차별적인 혜택(ex 자기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상대방에게 승진 점수를 차별적으로 더 많이 준 경우 등)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情)을 중시하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의 문화가 부정적으로 변질되어 우리나라에서는 뇌물, 청탁, 부패 등의 부정적인 요소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악습입니다. 청탁금지법이라는 법이 제정된 배경은 바로 한국에 깊게 스며든 부패 문화 때문일 것이며, 이러한 나쁜 문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뇌물, 청탁, 부패 행위들은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자기 이익을 편취하려는 악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도움이나 대가는 선한 동기에서 비롯된 도움이나 대가를 의미합니다. 가난으로 인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서 돈을 빌려주었다든지, 상대방이 갖고 있는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해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든지, 아픈 직장 동료를 위해서 일부 업무를 대신해주었다든지 등의 도움이나 대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베풀고 도움을 제공해야 함과 동시에 우리가 받은 도움에 대해서는 반드시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 중에서 당연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움을 받았으면 그에 상당하는 가치를 가진 것으로 은혜를 갚거나, 반드시 그에 상당하는 가치를 가지지는 못하더라도 작은 성의 표시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도움을 준 상대방이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고, 지속적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도움이나 대가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 도움을 제공한 후 상대방으로부터 도움이나 대가를 제공받지 못하여 부정적인 감정이나 앙심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필요할 때 제공받은 도움을 기억하지, 필요하지 않은 도움을 받은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하며, 기억을 하더라도 이러한 도움에 대해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데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오지랖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 도움을 제공하고 그에 상당하는 대가를 제공받기를 원하는 것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 상대방이 나에게 더 주고 내가 더 받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제가 함께 일했던 교사 중에 어느 누구도 원하거나 바라지 않았는데 주변 선생님들에게 음식 선물을 포함한 여러 선물을 자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많으신 선생님들께서는 맏며느리감이라며 자주 칭찬하셨지만, 저는 그 사람에게 도움을 제공한 적도 없고 제가 원하는 선물도 아닌데 이렇게 고가의 선물을 제공받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주변 선생님들에게 그렇게 선물을 뿌리고(?) 다닌 이유는 정교사가 아니라 기간제교사였기 때문에 학교에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채용되기 위해서 주변 선생님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고 좋은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사람도 아니었고,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 도움을 자기 이익을 위해 제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선물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 사람은 학교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켜서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1년 만에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사람들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처럼 보이지만, 도움을 주고받음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으며, 이런 요소들을 적절하게 고려해야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자기 자신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글 요약


1. 대가를 바라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

상대방이 대가를 줄 것이라는 기대가 나의 평정심을 해친다.


2.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면 은혜를 갚아야 한다.

반드시 동등한 가치가 아니더라도 작은 성의 표시라도 하는 것이 좋다.


3.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원하지 않는 도움을 제공하고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앙심과 갈등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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