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무위(無爲)의 다스림은 바람직한가?

aporia

by cusp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윤리와사상 교육과정에서는 공자 및 유교와 노자 및 도가의 사상을 강하게 대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학생들이 공자 및 유교의 특징과 노자 및 도가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학습하는 데 있어서 좋은 방법일 수 있지만, 학술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엄밀한 내용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고등학교 윤리와사상 교육과정에는 무위(無爲)를 강조하는 노자가 유교의 인의(仁義)를 인위적인 덕이라고 비판하였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합니다. 노자가 사회 혼란의 원인으로 인위적인 규범 및 사회 제도를 제시하는데, 이러한 규범 및 사회 제도에는 유교가 강조하는 규범 및 사회 제도가 포함되어 있으며, 사실 노자의 주된 비판 대상은 유교가 강조하는 규범 및 사회 제도라고 서술하는 내용이 고등학교 윤리와사상 교육과정에 자주 보입니다.


도가는 춘추 전국 시대의 혼란 속에서 등장한 제자백가 중 하나이다. 당시 사회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인위적인 덕목을 강조한 유가와 달리, 도가는 자연의 도(道)에 따르는 삶과 정신적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 비상교육 윤리와사상 교과서 -


노자는 유가에서 당시 사회 혼란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인위적인 덕목이 오히려 혼란의 원인이 된다고 비판하였다.
- 비상교육 윤리와사상 교과서 -

노자는 도에 따르고 자연에 순응함으로써 혼란한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유가의 인위적 윤리를 비판하고, 무위의 덕을 강조하였다. 즉, 일체의 인위적인 것을 버리고 무위의 덕으로 행하면 다스리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無爲之治].
- 씨마스 윤리와사상 교과서 -


유교에서 주장하는 인(仁)과 같은 덕목도 유위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혼란의 원인이 된다. 왜냐하면 도의 무위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자는 인위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 천재교육 윤리와사상 교과서 -


노자는 유교에서 강조하는 인의(仁義)의 도덕이나 효의 윤리는 사회와 가정이 혼란하여 생겨난 인위적 규범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 미래엔 윤리와사상 교과서 -


여러 윤리와사상 교과서의 서술을 보면, 교과서들은 한결같이 노자에 대해 "무위를 강조하면서, 인위적인 덕목과 윤리를 강조한 유교를 비판한 사람"으로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서술에 큰 오류는 없습니다. 노자 연구가 진행되면서 노자 해석의 표본으로 여겨졌던 왕필본이 노자의 도가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고 여러 부분에 오류가 있으며, 1993년에 왕필본보다 더 노자 사상의 원류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죽간본이 발견되면서 노자 사상이 우리의 생각만큼 반유가적이지는 않다는 것이 밝혀지기는 했으나, 이러한 내용은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관련이 없고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크게 벗어나는 내용이기 때문에 다루지 않겠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노자가 유교를 인위적이고 무위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는 내용만 제시한다면 공자를 비롯한 유교 사상가들이 무위를 강조하지 않고 인위(人爲), 유위(有爲)만 강조하는 것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


노자가 공자에서 비롯된 유교 사상이 인위적이고, 무위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공자 또한 무위를 강조하는 주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위적인 작위가 없이 나라를 다스린[無爲而治] 사람이 순임금이로다! 어떻게 하였을까?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임금의 자리를 지키고 계셨을 뿐이다.
- <논어> -


순임금은 공자가 성인(聖人)으로 간주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공자는 위대한 성인인 순임금이 인위적인 작위 없이 무위의 다스림을 행했다고 함으로써 무위의 다스림이 이상적이고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주장하였습니다(공자가 무위의 다스림을 현실에서 실제로 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순임금이라는 위대한 성인이 무위의 다스림을 했다고 주장함으로써 무위의 다스림을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한 점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노자가 공자를 비롯한 유교 사상가들의 주장이 인위적이고 무위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는 것에만 주목하여 공자 및 유교 사상가들이 무위를 주장하지 않았거나 무위를 배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또한, 이 내용이 교과서에 없고 교과서의 내용과 다소 모순된다고 해서 교육과정 외적 내용이라고 간주하기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공자가 무위를 강조한다는 내용은 이미 2016년 10월 모의고사에 제시문으로 출제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위(無爲)로 다스린 사람은 순임금이시다. 덕(德)으로 다스리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되 뭇별들이 그를 향하는 것과 같다.
- 2016년 10월 모의고사 4번 문항 제시문(공자) -


따라서, 공자가 무위를 강조했다는 내용이 교육과정에 포함된다면, 학생들이 유교 사상과 도가 사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두 사상을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며 철학적으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자가 무위를 강조했음을 알려주는 해설서 내용들도 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들입니다.


이상적으로 말할 때, 군주는 오직 자신에게서 풍겨나는 덕을 믿을 뿐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일찍이 공자는 심지어 후대에 와서 도가의 특징이 되는 무위라는 용어마저 사용한다. (중략) 결코 이것으로 실제 정치를 의도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보편적 문명화의 위력으로서의 덕에 대한 공자의 자신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 앵거스 그레이엄, <도의 논쟁자들> -


『논어』에는 내가 아직 언급하지 않은 구절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그 분위기가 매우 도가적이어서 많은 학자들에 의해 후대의 첨삽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사실상 우리는 여기에서 무위라는 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말은 도가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말이다. (중략) 이 말이 정말로 공자의 것이었느냐의 여부를 떠나, 이것은 진실로 선한 사회에 대한 공자의 이상과 완전히 부합하는 것 같다.
- 벤자민 슈워츠, <중국 고대사상의 세계> -


반드시 공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유교 사상가들도 무위를 배격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인 송나라 시대의 성리학자 주희도 무위를 강조하였습니다(교육과정을 크게 벗어나는 행동이라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게다가 많은 측면에서 공자를 계승하기 위해 노력했고, 도덕적 인간과 질서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인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순자마저도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경지로서의 무위를 강조했습니다.


어진 사람이 도를 실천함에는 작위가 없으며[無爲], 성인이 도를 실천함에는 힘써 노력하는 것이 없다. 어진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공손하고, 성인이 생각하는 것은 즐겁다. 이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도이다.
- <순자> -

따라서, 도가 사상가이면서 무위를 강조한 노자가 유교를 인위적이고 무위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고 해서 공자를 비롯한 유교 사상사들이 무위를 배격하고 인위만 강조한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하고, 교과서를 포함한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도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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